천안함 사태와 월드컵 단독 중계로 띄엄띄엄 방송되었던 강심장은 그 긴 휴식시간동안 확실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이전부터 쭉 이어져온 방향을 정리하고, 그 중에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판단한 장점들을 극대화시키면서 이제야 정형화된 틀을 만들어간 것이죠. 초반에는 인트로 토크로 주목받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주력하고 슈퍼주니어의 특기가요로 분위기를 전환한 뒤에 본 토크에 들어가 내용을 뽑아내는 2주 편성의 구성은 이제 게스트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기본적인 틀을 무기로 편집과 내용 구성을 용이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명력이 긴 토크쇼라면 필수적인 가장 적절한 구성의 정착, 이른바 장기화 체제에 들어선 것이죠.

아니. 어쩌면 여전히 복잡하고 노골적인 대형 토크쇼에게서 필요했던 것은 적응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행자에게나, 제작진에게나, 출연자에게나, 그리고 시청자에게나 모두 말이죠. 수많은 게스트를 통솔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던 강호동이나 첫 예능 프로그램 MC를 맡은 이승기에게나 중요했던 것은 그들의 호흡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의 선택과 그것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철저히 그의 장점인 1대 1 토크에 집중하면서 분배나 균형보다는 재미의 극대화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균형을 초보답지 않은 신입 MC 이승기가 특유의 선한 넉살과 유려함으로 커버하면서 조율을 하고 있죠. 이 둘의 조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울리고, 독특합니다. 강심장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묘한 어울림이에요.

제작진은 강심장에 SBS 예능의 모든 성격을 집합시켜 놓았습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말이죠. 그 당시 잘나가는 유행, 아이콘, 인물들을 가리지 않고 초빙하는 신속함, 혹은 다소 뻔뻔함이야 말로 강심장을 관통하는 코드입니다. 경쟁 방송사에서 성공몰이를 했던 이들이 되었던, 그 시기를 주름잡는 아이돌이 되었든, 개봉한 영화나 뮤지컬 홍보를 위해 나왔던 간에 강심장의 섭외에는 별다른 터부나 가림막이 없습니다. 그냥 잘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든 데려와 앉히고 민감한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은 매주 화제와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동시간대의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게 해주고 있어요. 긍정적이고 찬성할 수는 없는 노골적인 주워 먹기 방식이지만 이런 식의 토크쇼도 하나 있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죠.

참가하는 사람들도 이젠 강심장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어떤 이야기를 제공해야 20명이 넘는 게스트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터득해버렸습니다. 앉은 순서, 자리의 배치부터 이미 철저한 인기와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이들은 이른바 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것이 아무리 자극적인 소재들이 되었든 감동스러운 경험담이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편집을 피해 자신의 이야기가 방송 전파를 타느냐, 그 다음날 화제에 올라 한동안 신문과 인터넷상의 주인공으로 남느냐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이 마지막 적응의 순서는 시청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강심장은 여전히 게스트 분배의 미숙함과 특정 인물에 집중, 민망한 폭로들로 넘실거리지만 그런 불만과 논란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 자체의 수위조절이나 내용의 변경 때문이 아니에요. 이젠 그러려니, 이 프로그램은 원래 이런 것이거니 하는 익숙함과 적응, 그리고 약간의 체념 덕분이죠. 이제 강심장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가 어떤 구조에서 나와서 어떻게 흘러 갈 것임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그런 재미를 즐기겠다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는 말이에요.

심장을 울리는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익숙하게 모두에게 자리 잡았습니다. 매일 수요일 아침이면 이들의 고백과 폭로가 포털 사이트를 점령하고, 또 누군가는 자학에 가까운 고백을, 혹은 눈물 섞인 과거사를 토로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죠. 그런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 통편집의 굴욕을 당하는 이들도 여전히 적지는 않지만 그런 일들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아니에요. 즐기거나, 아애 외면하거나. 강심장은 그렇게 성장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굳히기와 함께 연말 SBS 연예대상은 자리는 점점 더 강호동 쪽으로 옮겨지고 있네요.

기존의 유재석, 강호동, 그리고 이경규라는 상수 외에도 KBS의 이수근, MBC의 박명수라는 새로운 1.5인자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올해 예능계에서 확실한 승자의 자리는 아직은 SBS밖에는 없어 보여요. 2년 연속 승자였던 유재석은 패떴2의 부진이 비워놓은 공백이 길었고, 그의 회심의 복귀작 런닝맨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지금, 스타킹에서의 꾸준한 성과와 강심장의 안정화를 만들어준 강호동의 견고한 위치를 넘볼 수 있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강심장이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에게 연말 트로피가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너무 일찍 승자가 정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2010년의 경쟁은 남은 두 자리를 두고 어떤 결과나 나올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만큼 강심장은 견고하고, 탄탄해졌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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