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는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추노의 성공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스타덤에 올려놓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연출이었던 곽정환 PD는 물론이고 주연 장혁, 오지호의 존재감을 뛰어넘는 순간들을 자주 만들었던 천지호 성동일, 업복이 공형진 등 좋은 배우들의 진가를 드러내게 했던 드라마였다.

그런 중에서도 시청자 머리속에 가장 강하고 오랫동안 남은 것은 역시나 천지호가 아닐까 싶다. 그런 성동일이기에 곽정환 감독의 후속작인 도망자(정지훈, 이나영 주연)에서도 큰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아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천지호 성동일이 해피투게더에 개도둑으로 나왔다. 사실은 추노보다 먼저 촬영한 작품이라는 <마음이2>를 홍보키 위한 발걸음이었다.

사실은 무릎팍도사에 단독출연도 충분해 보일 정도로 추노에서의 성동일은 놀라운 연기와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박박 긁어 끌어올린 처절함, 그것이 비록 미남 주연의 연기처럼 근사한 것이 아닐지라도 추노라는 배경에서는 그 누구보다 공감을 끌어낸 명연기였다. 비슷한 시기의 고현정은 높은 신분에서 혹은 여자로서 가장 강한 카리스마 뽐냈다면 가장 낮은 신분에서의 카리스마 마왕으로 성동일을 꼽는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도망노비를 쫓던 천지호에서 이번에는 개를 쫓는 개도둑으로 변신했다.
감자탕 식당을 하는 누나 네에서 유효기간이 다된 막걸리를 처리하느라 숙취상태로 녹화에 왔다는 말도 성동일이기에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성동일이 아닌 다른 출연자가 숙취상태로 녹화했다면 아마도 불쾌감부터 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전에 그런 내색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동일은 아직도 천지호 이미지의 끝자락에 서있고, 그런 성동일이기에 숙취도 닭을 뼈 채로 씹어 먹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런 숙취 탓인지 아니면 송중기를 배려하려고 한 것인지 녹화 초반 성동일은 조용한 편이었다. 그러나 워낙에 빨간양말로 자신을 크게 알렸던 <은실이> 출연 때부터 성동일의 장점은 능글맞게 남을 웃기는 본능에 있다. 아직은 천지호의 절규하는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지만 성동일은 자기 장점을 그리 오래 감추지 못했다. 그것을 예능감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에 부족감이 있다.

자기 일화, 남의 일화를 동원해 시종 웃음을 선사한 성동일은 <웃지마 토크> 초반에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게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동일은 “인간적인 모임, 대화”에 애착을 갖는다고 했다. 물론 그 자리에 술이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가 애착을 갖는 술자리의 멤버는 놀랍게도 연예계의 누가 아니라 “동네 철공소하는 형님 통닭집하는 형님 스텐 가공업 하는 형님”들이다.

그 말에서 성동일이 천지호란 인물을 단순히 연기하는 것을 뛰어넘어 천지호로 살아 숨 쉬게 했던 명품연기의 비밀을 엿보게 됐다. 평소의 일상이 그렇게 동네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라면 그 속에서 연예계에서는 느끼지 못할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것이고, 그런 꾸미지 않은 삶의 모습이 그에게 켜켜이 쌓여 천지호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역시 세상은 거저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닭날개를 뼈까지 우걱우걱 씹어 먹던 모습처럼 성동일은 왈짜패, 개도둑 등 많은 껄끄러운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표현한다. 그런 성동일이 여심을 울리는 미남배우는 아니지만 꾸미지 않은 통속적인 모습 그대로의 연기는 보는 이에게 삶의 찌든 피곤을 덜게 해준다. 그것은 배우의 위대한 힘이다.

천지호의 명대사는 사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할 삶의 방식이다. 원수는 몰라도 은헤를 갚아야 잘 살 수 있는 것이 사회이다. 그러나 천지호의 역설은 그의 삶을 표현하는데 대단히 적절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자기 말인 것처럼 한 성동일이었기에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단지 연기하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성동일 연기의 비밀은 그의 사는 방식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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