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노조의 파업이 2주를 넘겨 15일째를 맞고 있다. KBS 파업이 열흘을 넘긴 것은 9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KBS 전체 직원에 비하면 아주 적다고 할 수 있는 900명에서 시작한 파업이지만 광주총국 PD 15명이 집단으로 가입하는 등 파업에 대한 내부 가담이 늘고 있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KBS의 내부가 조금씩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거기다가 15일부터 정세진, 김윤지 등 아나운서들도 파업에 가담키로 했다는 소식까지 연이어 들리고 있다. 이토록 말 잘 듣는 KBS가 아니라 저항하고 싸우는 KBS 모습은 참 드문 모습이라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난 어느 파업 때에도 가담치 않았던 예능PD들까지도 일을 포기하고 나선 데서 KBS 구성원들이 느끼는 방송의 위기감의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즐겨 시청하는 1박2일, 남자의 자격 제작PD들이 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음은 매우 중요한 변화로 보인다. 담당PD들이 현장을 떠나기 전에 촬영해놓은 것들을 불법으로 편집해서 지난 주 방송을 정상(?)적으로 방송한 KBS는 계속해서 외부 인력을 투입해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현장의 예능PD들은 말하고 있다. 외부 대체인력으로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어도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입수도 마다 않던 버라이어티 정신만은 대체할 수 없다고. 분명 MBC가 파업할 때 재방송을 내던 것과는 달리 담당PD들의 제작권이 침해되고 있다. 이쯤 되면 사측이 불법적으로 제작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시청자는 거부해야 한다. 해피선데이 PD들과의 의리가 아니더라도 불법 제작된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으면 PD도 지고, 국민도 지게 된다.

보통은 파업현장에 외부인이 가담하면 안 된다. 그러나 문화제라면 얼마든지 구경 가도 문제될 일이 없다. 지난 7일 1차 개념탑재의 밤을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 문화제는 시종 웃다 볼 일 못 봤다고 한다. 파업이니 뭔가 투쟁적이고 살벌한 분위기일 것 같지만 사실은 개콘보다 웃긴 그러나 제한 없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난다고 한다. 비록 예능인은 아니지만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예능감도 무시 못 할 듯하다.

KBS 아나운서, PD들이 어떻게 사람을 웃기는지 궁금하다면 파업 지지하는 척 가서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대체 흔치 않은 KBS의 파업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제작만 하고 출연하지 못한 한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한 까닭이다. 그것을 보고 온다면 사측이 불법제작한 1박2일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유도 추가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을 보면 차마 의리상 못 볼 것도 같다.

KBS노조는 파업이니 웃어도 웃는 게 아닐 수 있겠지만 노조원이 아닌 당신이라면 그저 웃기만 해도 된다. 그 웃음이 단지 웃는 게 아니고 침해받고 있는 버라이어티 정신을 지키는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 1박2일을 보고 많이 웃었던 한 사람으로서 가서 한번 웃고 와야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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