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투'는 정의로운가?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의 칼럼(3월 17일 자) 제목이다. 이 물음은 미투 관련 기사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이퀄리즘’을 표방하는 자들의 단골 문제 제기다.

그래서, 모든 미투는 정의로운가? 당연히 아니다. 모든 남성이 정의롭지 않듯이. 명제 '모든 S는 ~하다'는 수학적 진리가 아닌 이상, S에 어떤 주장이 와도 거짓이다. 그래서 이 물음은 답변보다도 그 의도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같은 칼럼은 일종의 이퀄리즘이며, 그 의도는 ‘꽃뱀 단속’이다. 그리고 이는 미투를 위하는 척 방해한다.

조선닷컴 캡처화면

‘꽃뱀 포비아’라는 2차 가해

미투는 성폭력 신고의 사적 폭로 버전이다. 그래서 ‘모든 미투는 정의로운가?’는 ‘모든 성폭력 신고는 정의로운가?’의 연장선, 즉 ‘꽃뱀(무고)’을 저격하는 질문이기 쉽다. 물론 무고는 존재하며, 그래서 미투를 무조건 지지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범죄 무고율(0.5%)은 일반 범죄(2%)보다 훨씬 낮다. 무엇보다 성범죄 신고율은 10%이다.

미투도 박은주 씨(이하 필자)의 표현대로 동물과 빵까지 쓸어내는 해일이나 프랑스 혁명 수준은 아니고, 이제 막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상태다. 그래서 무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엄밀해야 한다. 김어준 씨의 ‘미투 공작설’ 처럼 피해자의 목소리를 막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미투를 오염시키는 여성도 나온다’, ‘남자들을 동지로 끌어들이는 미투였으면 좋겠다’라며 명백히 ‘꽃뱀’을 저격한다. 이는 필자의 미투에 대한 나이브한 이해 탓이다. 필자는 ‘(미투에는) 사적 보복, '린치' 성향도 있다. 그럼에도 세상이 미투를 지지하는 건, 그 피해가 너무 넓고 깊기 때문'이라며 미투를 여성 개인의 일로 환원했다.

페미니즘과 이퀄리즘(출처 페미위키)

하지만 미투 고발자들이 자신의 직장과 평판을 희생하면서까지 나서는 이유는 성폭력 해결에 대한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고발한 김지은 씨처럼 오히려 폭로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미투는 미숙한 성폭력 처벌 시스템과 문화에 문제 제기하고, 특히 꽃뱀 낙인이나 순결을 잃었다는 2차 가해에 침묵했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흐름이다.

필자는 미투 오염 여성의 사례로 '익명의 피해자 A 씨'를 다룬 기사를 읽다 보면, 최소한의 팩트 체크를 했나 의심스러울 때'를 든다. 하지만 모든 언론 제보에는 허위가 섞여 있고, 오보의 귀책사유는 팩트체크를 제대로 못 한 언론에 있다. 또 '(허위 미투 피해에 대해) 동시대 남성에게 과거의 감정까지 대속시키는 건 온당치 않다'라고 한다. 허위 미투가 과거의 감정을 대속시키는가는 둘째 치고, 미투는 명백히 동시대 남성이 저지른 가해에 대한 고발이다. 그것도 직장을 그만두거나, 서지현 검사처럼 오랜 세월 삭힌 뒤의 고발이다. 게다가 최근 밝혀진 허위 미투는 남성이었다. 필자의 이런 꾸짖음은 무엇을 향하는가?

직원이 ‘회장님 사모님’을 성추행하지 않는 진짜 이유

기울어진 운동장(출처 페미위키)

칼럼의 압권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비대칭성'을 이야기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역전하는 데 있다. 필자는 '익명의 피해자가 '호명'하는 순간 그는 바로 매장된다 (...) '피해자가 익명이면 가해자도 익명으로 처리되는 게 공평하다’라며 ‘힘의 대칭’을 주장한다. 역차별 논리다. 하지만 미투는 필자도 말했듯 자해에 가까운 행위다. 힘의 대칭은 실명 미투로 피해자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성폭력에 대한 법과 사회의 문화를 반성하고 재조성하는 것으로 맞춰야 한다.

필자는 성폭력은 남녀 문제가 아닌 권력 문제라고 한다. 맞다. 그런데 왜 그 권력이 남성에게 기울어진 것을 보지 못하는가? 미투와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것은 권력이 남성 일반에게 있음을 드러낸다. '직원이 '회장님 사모님'을 성추행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나’란 예시도 마찬가지다. 당장에 회사가 부도가 난다면? 성폭력이 일어난다면 사장님보다 사모님이 타깃일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왜 ‘여성 회장’이 아닌 ‘회장님 사모님’인가? 여성의 권력은 남성에게 의지해 있다는 사례에 불과하다.

그래서 '남자의 자구책은 '펜스룰' (...) '미투 운동'이 '남녀칠세부동석'을 부활시키는 이 아이러니'라는 주장 자체가 아이러니다. 미투와 펜스룰 모두 남성들이 여성을 제대로 대할 수 없다는 ‘무능’을 드러내는 데도, 미투에 책임을 두기 때문이다. 또 미투 고발자중에는 남성도 있다. 정작 남녀 편을 가르는 쪽은 누구인가?

이퀄리즘, ‘평등 코스프레’는 그만

“다른 피해 여성에게 본인의 잘못이 아님을 말해주려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밝힌 미투 고발의 동기다. 미투 운동은 자해적 '응징'이라기보다 강간 문화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다. 성적 자기결정권, 동의의 문제를 공론장에서 논의할 기회이기도 하다. 미투 고발자들이 ‘가해자 처단만으로 또 다른 가해자를 방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미투에 대한 관심은 세상이 '알아준다'기보다 늦게나마 '귀 기울이는' 상황이다. 꽃뱀 사례를 침소봉대하는 이퀄리스트들은 ‘평등 코스프레’하지 말고,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미투를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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