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넘버원은 절대로 전투영화가 아니다. 컴뱃이나 그 옛날 전우에 익숙한 회고세대나 전쟁을 화려한 볼거리나 혹은 게임으로 간주하는 세대들 모두에게 로드넘버원은 아주 낯선 경험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 때문인지 로드넘버원은 한자리 시청률에 발이 묶여있다. 반면 전쟁을 이념의 푸닥거리로 생각하는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우는 그나마 나은 형편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로드넘버원이 선택한 시청률 유인책은 멜로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자체에 전쟁의 비극이라는 주제의식까지 더하고 있어 계획대로였다면 금상첨화인 기획이었다. 아직 초반에 불과하니 나중을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이준기의 히어로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드라마가 히트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로드넘버원은 그렇게 눈을 돌려버리기에는 힘든 아주 많은 관심거리가 존재한다. 줄줄이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치고 연기력 논란이 없는 아주 드문 예가 될 로드넘버원에는 전쟁만큼이나 치열한 배우들의 연기력 대결이 불꽃이 튀고 있다. 또한 전쟁멜로를 주요 모티브로 삼는 만큼 진한 애정신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물론 대역일 가능성이 높지만 4회 마지막을 장식한 김하늘의 상반신 누드는 분명히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이었다. 벗은 자기 여자를 그리며 눈물 흘리는 소지섭의 아픔 또한 만만치 않다. 전쟁에 무슨 행복과 기쁨이 있을까만은 이런 장면들은 지독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에 족하다. 로드넘버원은 결코 시청률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직 응집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와 함께 아주 짧은 등장으로 드라마 분위기를 강렬하게 살려주고 사라지는 카메오 열전이 흥미롭다. 이미 첫 회에 등장한 윤계상의 현재를 연기한 최불암과 나중에 소지섭의 현재 역으로 출연한 장민호 두 노배우의 열연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1,2회에는 워낙 준비된 전투신이 많았으나 3회부터 카메오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카메오만의 특별한 감동과 재미를 주고 있다.

후퇴 중이던 국군이 대전에서 부족한 전력을 충원하기 위해서 강제징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김여진의 촌부 연기는 짧았지만 황순원, 김남일, 송기숙 등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50년 그때의 가난하고 억척스런 여자상을 아주 잘 그려냈다. 앞으로 전장터에서 제2의 성동일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박달문의 아내로 등장한 김여진은 허름한 차림에 다 떨어진 고무신을 신은 다소 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국수 한 그릇 나눠먹다가 마누라 몰래 고무신 한 켤레 사주려고 길을 찾다가 징집된 박달문(민복기)의 아내 김여진은 뒤늦게 남편을 찾다가 군대트럭에 끌려가는 남편을 따라 간다. 한참을 쫓아가다가 남편이 던져준 전대를 한 손에 쥐고 서서 멀뚱히 멀어져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무지랭이 촌부의 연기를 통해서 전쟁의 또 다른 아픔을 표현했다.

4회에는 김여진보다는 훨씬 짧고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놓칠 수는 있었던 카메오가 등장했다. 바로 인간복사기 최병서. 최병서는 부산역 앞에서 약장사를 하면서 코메디언 서영춘 성대모사를 보였다. 아주 짧은 삽화 같은 등장이었지만 그 시대에 정말 서영춘이 부산역에서 그랬을까 싶은 순간적인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앞으로도 로드넘버원에는 이처럼 짧지만 놓칠 수 없는 진국의 카메오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오만석, 정경호, 이천희, 문채원, 황보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 존재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배우 장민호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과 흥분이 기다림을 자극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기다림은 김하늘의 벗은 뒷태를 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준다. 짧아서 아쉬움도 크고.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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