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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구, 작지만 쉽지 않은 행복[블로그와]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0.06.18 12:41

역시나 중단편의 참맛은 여운에 있다. 10회가 넘는 장편들은 온갖 감정과 사건들을 밀어 넣어서 복잡한 얼개를 구성해야 역시나 푸짐한 뷔페 식사를 한 포만감을 준다면 중단편은 아쉬운 감이 남을 정도로 의욕을 아낄 수밖에 없다. 런닝구는 착한 드라마답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렇다고 주인공 구대구가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걸거나 하지 않았다. 어떤 즉물적 결과 없이 대구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졌던 형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기 자신을 위해 달릴 수 있는 상황의 결말이다.

참 깔끔하다. 그럴 만한 시간 여유도 없었지만 대구의 목에 걸고 싶은 금메달 대신에 세 친구와 대구의 아버지 모두가 각자에게 결핍되거나 혹은 넘쳤던 감정들로부터 가벼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파급효과였다. 대구와 지만은 오랜 라이벌로서의 대립을 해소했고, 행주는 비록 서울서 오케스타라 단원모집 오디션을 보고 왔지만 그보다도 더 즐거운 작은 마을 축제에서 클래식 대신 뽕짝을 연주하면서 동네 노인들이 행복하게 만들었다.

지만에게 말했지만 꼭 교향악단 단원이 아니어도 자신에게 항상 있다는 그 음악의 실체를 작은 마을축제에서 깨달은 것이다. 물론 그런 결말이 모든 클래식 연주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행주가 찾은 길일뿐이다. 그렇지만 그 미소 속에 평범한 주변의 음악가들이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은 천재 음악가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작은 촌동네 노인들이 쇼팽이나 리스트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뽕짝을 연주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찾은 것이다. 동화 같지만, 그래서 이런 결말이 따뜻하고 행복하다.

   
 
거기다가 덤도 있다. 선수출신이 참가하면 안되는 일반인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상금을 차지해온 마파라치까지도 외곽에서 대구가 마라토너로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것 자체가 이미 마라파치를 그만둔다는 뜻이고 지만의 국가대표 선발 이후 마라톤을 그만둔 대구를 찾아서 계속 달리게끔 설득한다. 그리고 예전 마파라치로 뛰던 선수들과 함께 시청 마라톤부를 만들게 된다.

그 덤이 결과적으로 대구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더 이상 마파라치도 아니고, 누구의 페이스 메이커가 아닌 끝까지 달려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진정한 마라토너가 된 것이다. 물론 세상사와는 딴판이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일 따위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은 런닝구같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에 대해서 불만스러워야 하는데, 그 과정이 설득력이 있었다.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그랬다.

보통 영화는 사건을 중심으로 끌어가고 드라마는 감정선을 중시한다. 런닝구는 세 친구의 감정에 대한 시선을 흔들리지 않고 잘 끌어갔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을 위한 대구와 지만의 달리기는 영상적으로는 조금 미흡했지만 우리가 명작으로 기억하고 있는 우정에 대한 영화들의 엔딩을 연상케 해주었다. 이들이 성장기에 겪었던 우정의 위기는 달리기를 위해 벗어던지던 셔츠마냥 도로 어딘가로 버려졌다.

   
 
누가 누구를 위해 대인배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성공가도를 달리던 지만마저 국가대표가 된 이후로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답답한 마음에 태릉을 빠져나와 고향친구인 대구를 찾았다. 대구도 겨우 시청 공식선수가 되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대구는 자신의 질곡으로부터 겨우 한 발짝 나왔을 뿐이고, 지만 역시 잠시의 슬럼프일 따름이다. 그렇게 누군가와 만나고 싶은 가난한 마음들로 다시 벌거숭이 꼬마들처럼 달리고 장난치고 싶은 마음을 되찾았다.

행주가 아르바이트 하러 간 곳으로 가기로 한 대구와 지만은 정체가 심해지자 내려서 달리기로 한다. 마라톤 코스나 다름없는 먼 길을 달려갔으나 이미 축제는 끝났고, 행주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죽마고우 둘은 그렇게 달려오면서 아주 오랫동안 가져왔던 무거운 짐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경쟁심, 열등감 그리고 행주에 대한 각자의 마음까지. 결국 젊어서 누구나 빠질 법한 사랑에 셋 모두가 흔들렸으나 아무도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 원래 그들의 자리였던 친구로 돌아갔다.

우정, 얼마 전 차승원이 승승장구에 나와서 자기는 친구가 없다고 했다. 그런 그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단지 솔직하고 친구란 말에 대해서 엄격했을 뿐이다. 아는 사람, 직장 동료, 동호회 이런 구속을 모두 떼어내고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우정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골인점에는 잃을 뻔 했던 소중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런닝 구의 구는 어쩌면 친구의 구(舊)가 아닐까 싶다. 그 구는 옛 구자이다.

대구와 지만이 행주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끝무렵에 노래가 나왔다. 행주의 자전거에 달려있던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70년대 노래를 듣는 한가로운 행복을 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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