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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 리들리 스콧의 일성, 이것이 미국의 자본주의다![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2.14 14:39

<올 더 머니>는 2월 13일 기준 6만이 겨우 넘은 상태다. 다양성 영화의 흥행 성적으로만 보아도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2월 12일 영진위 기준, 62,294명). 다양성 영화라도 몇 십만을 넘는 상황에서 심지어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라면 더더욱 아쉬운 성적이다. 하지만, <올 더 머니>는 오히려 그래서 더 주목해야만 할 영화이다. 

리들리 스콧은 최근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제작자로, 그리고 그 이전에 <블레이드 러너(1982)>, <에어리언(1979)>을 비롯하여 <글래디에이터(2000)>, <아메리칸 갱스터(2001)>, <마션(2015)>에 이르기까지 SF, 갱스터, 역사물까지 장르 불문 명장이다. 그 덕분에 2017년 미국 감독조합에서 수여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올 더 머니>는 바로 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평생' 영화감독으로 '공로'를 쌓은 명장 리들리 스콧이 정의를 내린 미국, 잊지 말아야 할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이다. 공로상에 갈음하는 가장 멋진 노감독의 수상 소감과도 같은 작품이다. 

공로상 수상 소감과도 같은 <올 더 머니> 

영화 <올 더 머니> 포스터

<올 더 머니> 개봉 당시 화제가 된 건 애초 주인공으로 분했던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 스캔들이었다. 불과 개봉을 한 달 앞둔 상황, 그 험로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한 사람의 행동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한 결과물에 영향을 주게 해선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에 따라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 결정을 내린다. 이후 한 달 여의 강행군, <올 더 머니>는 그런 잡음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명장의 명작으로 미국의 역사를 기억해 낸다. 

<올 더 머니>의 리들리 스콧을 말하기 위해서는, <마션>이라든가 <에러리언>, <글래디에이터> 등의 우리가 잘 아는 그의 흥행작들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1968년 미국이 암흑가를 실감나게 그려냈던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배경에, 최근 그가 제작하거나 기획하고 있는 <마크 펠트: 더 맨 후 브로우트 다운 더 화이트 하우스 (2017)>(이하 마크 펠트)>나, <클라이브 데이비스: 더 사운드트랙 오브 아워 라이브스(2017)>와 같은 '다큐'적 성격이 짙은 작품의 서사를 얹는다. 

<마크 펠트>는 2005년에서야 밝혀진 역사의 행간,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스로트(비밀 정보원) 마크 펠트를 통해 1972년에서 4년간의 미국 현대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에 반해, <올 더 머니>는 같은 시기였던 1973년에 벌어진 미국 최대 갑부 J. 폴 게티의 손자 유괴사건을 그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작품은 같은 시기이지만, 전혀 다른 '미국'을 다룬다. 한편에 미 연방 수사요원이었던 마크 펠트를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 미국이 있다면, 또 따른 한쪽에는 '오로지 돈' 이외에는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물신의 세계를 J. 폴 게티를 통해 그려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이 제작하고 직접 감독한 두 작품을 통해 이 양면성을 가진 미국을 실사화시켜낸다. 

영화 <올 더 머니> 스틸 이미지

이미 석유재벌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석유 임차권 매매'를 시작한 J.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 분). 그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보였던 중동의 석유 임차권 매매를 성공시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J. 폴 게티가 부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 재산을 헤아릴 길 없는 최고 갑부에 등극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한편, 아버지의 그늘에서 튕겨져 나와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네 자녀와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그의 아들네 가정을 대비시킨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이 화기애애한 가정에 단 한 가지가 없다면, 세계 최고의 부호를 아버지로 두었음에도 '돈'이다.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아들의 아내 게일 해리스(미셀 윌리암스 분)는 남편에게 아버지께 의탁할 것을 청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착한 답신, 그 답신과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들의 삶은 달라졌다. 

내가 도달한 일반적 결론, 그리고 일단 도달한 이상 나 자신의 연구에 계속해서 지도적 실마리로 쓰인 일반적 결론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관계들 속에 들어간다. 즉, 그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실제적인 기초인 바, 이 기초위에 하나의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한 이 기초에 대응하여 일정한 사회의식들의 형태가 존재하게 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칼 맑스, 자본론 


물신화된 돈에 헌신한 J. 폴 게티 

영화 <올 더 머니> 스틸 이미지

할아버지의 서류를 대신 읽어주고 답신을 써주기를 즐겨했던 소년 존 폴 게티 3세가 이탈리아의 사창가를 헤맬 정도로 커가는 시간. 그 시간은 J. 폴 게티의 돈에 의탁한 덕분(?)에 게일의 가정이 파괴되어 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미 전부터 알콜에 의존적이었던 아들은 자신에게 버거웠던 게티 집안의 사업에서 소외된 채 약에 젖어 살고, 그런 아버지에게 물들어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내 게일은 이혼의 조건으로 오로지 아이들의 양육권만을 겨우 얻어냈다. 하지만 그녀가 폴 게티의 돈으로부터 구제하고 싶었던 아이들마저, 그녀의 아들 존의 유괴사건으로 흔들려 버린다. 

아이들을 품안에 키우기 위해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던 게일은 게티 집안의 손자로 유괴된 아들의 몸값 1700만 달러를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 J. 폴 게티를 찾는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모성. 그 맞은편에 손주의 몸값보다, 보장된 한 작품의 명화에 기꺼이 투자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자신의 손자임에도, '이미 자신에게는 14명의 손주들이 있으며, 존의 몸값을 지불하면 나머지 손녀들도 유괴될 것'이라는 논리로 몸값 지불을 거절하는 할아버지. 대신 전직 CIA 요원을 고용하여 협상을 시도한다. 

영화는 '피보다 진한 돈'에 헌신하는 자본가 J. 폴 게티를 통해 석유 호황기 미국의 자본주의를 그린다. 사막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그 '협상'력은 자신의 혈육의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손주의 귀가 배달되어 올 때까지 이어진 협상, 아니 영화는 협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J. 폴 게티의 노골적인 방기를 묵묵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손주마저 포기한 그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모든 시간을 차지한 유가, 그리고 생명이 넘치는 손주 대신 돈으로 산 차가운 명화를 품에 안은 그의 마지막은 자본주의의 '비애'이다. 차라리 유괴범의 연민이 더 갸륵할 정도로. 

영화 <올 더 머니> 스틸 이미지

자식들을 얻기 위해 기꺼이 폴 게티 가문의 돈을 포기했던 엄마지만, 폴 게티 가문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지막지한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들 앞에 모성은 무기력했다. 손주의 목숨조차 시간을 끌며, 협상을 통해 에누리 했던 부호. 손주가 유괴됐다는 소식보다 오늘의 석유 시세가 더 중요했던 부호. 하지만 손주에게 사기를 친 건지 그 자신이 사기를 당한 건지 모를, 손주에게 전해준 이탈리아 조각상의 허상을 통해 영화는 '돈'의 헐값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평생에 매달렸던 돈, 그 돈으로 손주보다 먼저 달려가 영접했던 미술품들, 그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선 그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J. 폴 게티는 가고 돈은 남았다. 석유를 판 중동의 부족장은 그 석유를 판 돈이 자손들을 타락시켰다고 했듯이, 폴의 아들도, 그리고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후일담으로 전해진 손자 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가난했던 가족은 화목했지만, 돈만 있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던 그들의 꿈은 할아버지의 부 앞에 산산조각 났다. 

우리나라 속담에 죽을 때 짊어지고 가지도 못할 그 '부'의 주체는 과연 J. 폴 게티였을까? 물신화된 돈에 눈이 먼 J. 폴 게티는 현대의 또 다른 '미다스'이다. 과연 J. 폴 게티가 벌어들인 돈은 누구를 이롭게 했는가? 영화 속 그 누구도 J. 폴 게티의 돈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돈만이 확장하고 증식할 뿐. 인간의 문명은 진보했지만, 그 문명의 혜택이 개인을 영화롭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피언스> 유발 하라리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 거장 리들리 스콧이 1970년대의 J. 폴 게티를 통해 조감한 미국의 자본주의, 그곳에 '인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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