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막론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이상한 법칙이 존재한다. 북한에 대한 공세는 곧 그 사람의 대북 의존도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근래 북한의 최고(?) 파트너인 트럼프가 그렇고, 아베 역시 그렇다.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어려울 때마다 북한을 끌어내 국면전환을 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미국과 일본은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수상 아베가 평창올림픽개회식 참가 차 방일해 보인 행보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베는 문재인 대통령 주최 리셉션에도 지각을 하는 등 결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는 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한미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고 아베의 말을 일축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단호하고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아베가 한국에 와서 이런저런 외교적 결례와 실수를 일삼는 것이 결코 심상치는 않다. 그 이유는 다른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는 남북 대화 국면이 국제 사회의 제재 효과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는 것이다.

아베는 또한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으며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진지한 의지와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한 것을 알려졌다. 이 역시 남북 평화 모드의 달콤함을 만끽하고 싶은 우리로서는 사실상 불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의도가 ‘대화를 위한 대화’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며, 이미 북한의 손을 잡은 우리를 향해 ‘대화를 위한 대화’ 운운하는 것 역시 무례한 발언인 것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희석하거나 국제 협력을 어둡게 한다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며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맞받아친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일본 아베 총리는 국내 정치를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은 북한과 손을 맞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과 일본 사이의 긴장은 이슈 없이 조성됐다.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뒤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국내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일본으로서는 북한이 사고를 치면 칠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다 전쟁이라도 발발한다면 일본은 또 다시 엄청난 전쟁특수를 누릴 수 있다. 남북의 화해가 일본으로서는 이래저래 반가울 리 없는 것이다. 남북의 평화 조성은 일본으로서는 기회비용의 박탈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평상시도 아니고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차기 올림픽 개최국 총리가 할 말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아베 총리가 남북 대화국면에 그만큼 당황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베의 말에 충격을 받기에는 국내적으로 이미 많은 내성이 쌓여 있었다. 뭔가 초조해 보이는 아베 총리의 막무가내 재촉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답한 것은 부드럽게 일침을 가한 노련한 대처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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