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진작부터 밝혀온 반전이라는 점에서 그 실망감은 더욱 크다. 그렇지만 서우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 큰 것은 강숙이었다. 하느님, 부처님하고 맞짱을 떠서도 당당했던 강숙이 서우의 변화에 마치 대역이라도 쓰는 것처럼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강숙 능욕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무딘 동기 설정 때문이다.
물론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첫회로 돌아가 은조와 함께 도망치는 장면을 떠올릴 수가 있다. 억척스럽기는 세상 둘도 없는 강숙이지만 실상 못된 남자들만 만났고 그 관계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것이 악녀 강숙의 한계였다고 애써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렇게만 봐줄 수 있다면 효선이 준수와 노는 틈을 타서 몰래 짐을 싸서 도망치는 장면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전혀 송강숙답지 않은 대사였다. 신데렐라의 계모 강숙이 약해질 수 있었던 동기는 대성의 일기였다. 또 그러는 것이 강숙 캐릭터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그 일기를 효선이 봤다고 하더라도 효선의 반응을 저어하는 것은 그녀답지 않다. 그런데 실제의 강숙은 효선을 두려워한다. 그다지 두려울 것 없는데 자꾸만 무섭다고 한다. 마음을 감춘 효선의 앙칼진 말투는 급박한 후반부 촬영에서 피하기 어려운 상투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뒤쫓는 효선이나 도망쳐야 하는 강숙의 심리를 만족할 만큼 설명하지는 못했다.
뒷모습으로 해서 옆으로 이어지는 로우앵글이 심리적 접근을 도왔다. 그것을 통해 강숙과 효선이 주고받은 수많은 대사들이 접근하지 못한 두 여자의 실체적 감정을 더 잘 담아냈다. 효선의 강숙의 애증이 한 마디 말 없는 그 짧은 장면에서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녀들의 애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만에 네 식구가 모두 모여 먹는 아침밥상에서 사골국에 하염없이 소금을 치는 효선은 감기몸살로 입맛을 잃었다. 그리고 친척 한의사가 다녀가고 강숙은 효선의 잠꼬대를 듣는다. "도망가지 마, 도망가면 안돼"라는 효선의 잠꼬대를 들은 강숙은 자기방으로 돌아와 대성에게 혼잣말을 한다. "정말 지독하게 벌을 주시는구랴. 당신은. 나보다 훨씬 독한 사람들이야. 당신 부녀"
그런데 예고에 잠깐 비친 내용이라 더 봐야 알겠지만 효선의 입맛이 사라진 것이 감기몸살 때문이 아닌 듯하다. 신데렐라의 결말은 효선의 불치병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주는 대목이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란다. 어떻게든 잘 무마할 작가겠지만 그래도 결말에서만은 초반에 보여주었던 그 문학적 능력을 발휘해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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