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을 십자로, 혹은 교차로라고 한다. 좋게 말해서는 여러 학문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이 말은 종종 언론학을 비하하는 말로 쓰인다. 잡탕학문이라는 얘기다.

사실 학문의 교차로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언론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언론학은 세계 1/2차 대전 때 비로소 성립됐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 언론학은 전쟁 중에 자국민에 대한 선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매체를 통한 선전이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 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라디오를 통한 전쟁 선전은 대단히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고, 이를 연구한 언론학자들은 탄환이론, 피하주사이론과 같은 ‘매체 효과이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이와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의 매체 활용을 비판하는 ‘비판이론’이 성립하기도 했다.

매체 효과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로 심리학자이었으며 비판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사회학자들이었다. 심리학과 사회학이 만난 경계에서 성립한 학문이 언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3일, 경주에서는 언론학회와 방송학회가 봄철정기 학술대회가 열었다. 학문의 교차로인 만큼 다양한 분과와 다양한 학문들이 모였다. 언론학회만 13개 세션을 마련했으며 방송학회는 16개 세션을 진행했다. 언론학은 인문사회과학 가운데 현대학문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분화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학문이 아닐까한다.

짧은 역사의 언론학도 ‘전통’적인 학문과 새로운 학문으로 구분 가능하다. ‘전통’이라고 할 만한 언론학은 매체를 연구하는 ‘저널리즘’, '이론연구'와 사회적 언론현상을 연구하는 ‘비판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연구되는 학문은 모바일, IPTV 등 뉴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언론학회와 방송학회의 공동학술대회는 이러한 ‘전통’적 언론학의 퇴조(?)와 함께 뉴미디어에 대한 활성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언론학회 학술대회는 ‘방송과 뉴미디어’라는 분과를 두고, 뉴미디어 분야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자리를 만들었다. 또 인터렉션 분과에서는 웹과 모바일, IPTV 등에 대한 연구가 발표됐다. 미디어 경영분야에서도 하이테크 뉴미디어 채택모델 구축에 관한 연구가 발표됐으며 문화연구 분과에서 ‘온라인 문화매개자의 등장과 비판권력의 변화’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뉴미디어 ‘바람’과 반대로 신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연구 발표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단 하나 밖에 없었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에서 후원한 특별 세션 ‘신문의 원자력 보도 현황 및 제언’이다.

신문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다, 공공미디어연구원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신문에 관한 논문이 2003년 이후로는 거의 없느냐는 물음에 공공미디어연구원들은 신문연구가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문을 연구해서는 취직도 안 되고, 논문도 인기가 없으니 연구할 맛이 안 나겠죠.”

“연구자들 사이에서 신문에 대해 더 연구할 것이 있는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연구자 가운데는 신문이 곧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돈 되는 분야만 찾아 가는 거죠”

연구자들에겐 뉴미디어가 돈이 될 듯 보이고, 학문의 미개척지인 뉴미디어를 초반에 선점하면 자신이 가장 앞선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경향의 반영일 듯 하다.

▲ 경주 현대호텔 전경 ⓒ 현대호텔 블로그

경주 현대호텔에서의 정기학술대회

이번 언론학회와 방송학회의 정기학술대회는 경주의 같은 호텔에서 진행됐다. 발표를 위해 경주로 향하던 중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교수처럼 보이는 분들과 동행 아닌 동행을 하게 됐고 솔깃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스폰은 어디죠?” 한 분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옆자리에 앉은 다른 한분이 “아 김인규씨라던데”라고 말을 흐리자, 또 다른 분이 “현대가 김인규씨 사돈집이라고 해서 현대호텔에서 하나”하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제야 이들이 말하는 ‘김인규’가 KBS의 김인규 사장인지 알 수 있었다.

경주 현대호텔에서 진행된 이번 정기학술대회의 후원사는 언론학회, 방송학회 각 각 7개, 12개나 된다. 겹치는 후원사가 있다. 한국방송협회와 KT, 삼성이다. 또 KBS는 방송협회와 별도로 방송학회를 후원했다. 김인규 KBS 사장이 방송협회의 회장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KBS는 최다 후원사가 된 셈이다.

김인규 사장의 후원에 방송학회는 축사 자리를 내주었고 KBS관련 특별세션을 열었다.

십자로에선 언론학

프레스코 벽화로 유명한 디에고 리베라는 <십자로 남자>라는 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는 한 남자가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측면과 사회주의가 그려진 부분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는 그림이다.

학문의 교차로에 서 있는 언론학을 생각해 본다. 학회는 호텔에서 학술대회를 열개해 준 후원자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연구자들도 별다를 것 같지 않다.

초기 언론학은 통치수단으로 사고됐다. 전쟁 시기 국민여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죽어가는 병력을 충원하는 수단으로 언론이 활용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지금 언론학은 십자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과 학문의 사이의 십자로이다.

언론학회에서 발표했던 한 연구자를 만났다. 평소 친분이 있던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왜 그렇게 좋은 호텔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비싸 보이던데... 학술대회를 학교에서 하면 안되나? 학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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