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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논의에서 드러난 기울어진 운동장예산안 처리 '키' 쥔 국민의당… 진보정치 무기력 돌아봐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7.12.04 09:20

지난 2일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가 실패했다. 여야는 4일 처리를 위한 협상을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별도 조찬회동을 가졌고 이후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의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도 진행된다.

예산안을 둘러싼 협상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자유한국당의 구도로 진행되지만 결국 ‘키’는 국민의당이 갖고 있는 상태이다. 국민의당과만 합의를 이루면 국회의장이 자동부의권을 행사해 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되도록 교섭단체 3당이 합의를 이뤄달라는 주문을 계속하고 있으나 여의도 정치의 생리상 그것이 매끄럽게 될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유한국당이 예산안 처리에 협조해서 얻을 게 많지 않다. 정당이 예산안 처리를 통한 정상적 정부 운영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려면 지지층이 그것을 원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바라는 중도적 합리적 유권자들은 더 이상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이 중도층 지지를 회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정부 여당에 각을 세워 자기 지지층의 단결을 모색하는 게 공학적으로도 유리할 수 있는 국면이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나오는 이런 저런 말들을 보아도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현재 경선 구도는 구 친박, 홍준표-김무성 연합, 중립의 3분구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애초 지배적 프레임은 ‘친박 심판’에 가까웠으나 홍준표 대표의 막말 및 경선 개입, 사당화 논란 등이 확대되자 ‘홍준표 견제론’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중립적 성향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 상황이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지향을 중도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심재철 국회 부의장이 내란을 운운하며 대여투쟁론을 설파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상식적 차원에서라도 정부 여당과 잘 협의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도록 만들겠다는 주장을 하는 인사는 없다. 당내 기류 자체가 대여투쟁론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재의 원내지도부가 예산안 처리 합의를 모색할 공간이 크지 않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개별 의원들의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본회의에 참여해 반대 표결을 하는 정도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비공개 조찬회동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 남는 문제는 국민의당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찬성 표결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위해 무안공항을 경유하는 KTX 노선 확정 등 호남예산을 고리로 한 우회전략까지 동원하고 있다. 국민의당 입장에선 ‘받을 것’을 최대한 받아 내고 찬성 표결을 통해 정부 운영에 협조해주는 게 가장 좋다.

실제 논의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년 예산안 논의에서 가장 큰 쟁점이 형성되고 있는 공무원 증원 문제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1만명 규모를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은 7천명 수준의 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9천명 수준에서 합의를 모색해볼 수 있다는 입장인데 결국 1만명 아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뜨거운 쟁점인 일자리 안정자금 지출 부분도 타협점이 형성되는 분위기가 보인다. 이미 최저임금 인상은 이뤄졌기 때문에 여당 입장에선 일자리 안정자금 지출 예산은 포기할 수 없다. 예산 자체의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기한이라는 점에서 타협점을 찾아봐야 한다. 내년 1년은 일자리 안정자금 지출을 용인하지만 이후 이를 유지할 것인지는 경기를 보면서 판단한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법인세 인상 부분도 마찬가지다. 정부 여당은 과표 2천억 초과 구간 신설과 세율 25%로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과표 2천억원 초과 구간 세율은 23%로 하고 과표 2억~200억원 이하 중소기업 세율은 1~2%포인트 인하안을 주장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국민의당의 입장은 과표구간 신설에 반대하지만 최고 구간 법인세율은 24%로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본다면 결국 국민의당이 주장하는 선에 가까운 부분에서 타협점이 모색되고 이게 예산안 표결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중심이 된 합의 모델이 유지될 것인지에도 변수가 있는데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중도보수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른정당은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 무산 사태의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는 입장이다. 유승민 대표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예산이 하루 이틀 늦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환상과 미망에 사로잡히는 게 문제”라면서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를 떠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증원과 일자리 안정자금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고리 중 하나다. 통합을 추진하는 안철수 대표로서는 유승민 대표 등 바른정당 내 인사들의 이런 주장에 그냥 눈을 감고 있기도 어렵다.

물론 원내 협상은 결국 원내지도부가 책임지는 것이고 안철수 대표가 명시적으로 예산안 처리에 반대한 일은 없으므로 국민의당 내 중도보수통합론이 예산안 처리 과정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종의 돌발변수로서 제기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통해 되짚어볼 것은 예산안 처리 국면 자체가 한국 정치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어쨌든 국민 다수의 지지를 획득해 정권교체를 이룬 세력이다. 대선 당시의 득표만을 놓고 보자면 이 세력이 중도를 넓게 형성하고 좌와 우 양쪽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치열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불거진 정책적 논의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개 정부 여당의 안을 오른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에 집중돼있다. 실제로 예산안의 아동수당이나 기초연금 관련 부분은 정부안보다 후퇴하리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돼있는 상태다. 일련의 과정에 소수에 불과한 진보정치세력은 제대로 된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와 관련된 정책 이슈는 진보정치세력이 가장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놓고 상황을 주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현재의 진보정치세력은 이 대목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도 최소한의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명확한 자기평가와 이를 통한 혁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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