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 퇴진’과 ‘MBC 장악 진상 규명’을 주장하며 시작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근행)의 총파업이 오늘(4일)로 한 달을 맞았다. 이번 파업은 52일 동안 파업을 이어갔던 지난 1992년 파업에 이은, MBC 역사 상 두 번째로 긴 파업이다. MBC 총파업은 천안함 정국과 맞물리고,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의 철저한 외면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MBC노조에 전달된 지지 성금이 1억이 넘는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또 5주 동안, <무한도전> <황금어장>과 같은 대표 예능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고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등이 축소 편성되고 있음에도 시청자들의 원성과 비난은 적다.

▲ 김재철 MBC 사장ⓒ미디어스
예고됐던 파업

MBC의 이번 파업은 예고됐던 파업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재철 사장이 노조와의 합의를 깨고 황희만 전 보도본부장을 부사장에 임명하면서 시작한 파업이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MBC를 둘러싼 안팎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행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정권을 비롯한 보수 쪽에서는 <PD수첩>과 같은 시사보도프로그램을 문제 삼으며 MBC를 향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지난해 8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뉴라이트 쪽 인사들로 대거 채워지면서 MBC를 향한 간섭은 노골화 됐다. 당시 엄기영 사장은 방문진 회의 때마다 참석해 김우룡 전 이사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이사들에게 ‘뉴MBC플랜’ 등 추진 중인 사안을 사사건건 보고해야 했다. 엄 사장과 방문진의 갈등은 ‘인사권’을 둘러싸고 더욱 심화됐다. 엄 사장이 추진하려던 인사안에 대해 김우룡 전 이사장은 매번 ‘반기’를 들고 나섰으며, 결국 엄 사장은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말인지”라는 말을 남긴 채 지난 2월,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지난 2월, 김재철 신임 사장이 취임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 사장은 지난 3월4일, 노조와 합의하면서 당시 황희만 보도본부장, 윤혁 TV제작본부장 교체를 약속했으나, 이후 황희만 본부장을 부사장에 임명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이런 가운데 김우룡 전 이사장이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큰 집 쪼인트’ 발언을 하면서 MBC가 방문진, 청와대의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MBC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과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MBC노조의 총파업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들끓고 있는 MBC내부

MBC에서 파악한 파업 첫날인 지난 4월5일, 총파업 참여 인원은 507명이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이 ‘업무복귀 시한’으로 못 박은 지난달 27일에는 661명이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소한 다음날인 28일에는 665명이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지난 3일, 파업 돌입 이후 최대 인원인 673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이에 MBC내부에서는 “오히려 MBC사쪽의 ‘강수’가 총파업에 대한 참여를 이끄는 것이 아니냐” “김재철 사장이 총파업 열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MBC노조는 오늘 발행한 총파업 특보를 통해 “김재철의 분열과 탄압 책동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며 “김을 빼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무책임한 사장과 경영진에 대한 분노로 하나가 됐고, 업무복귀 명령에는 가장 많은 파업 참여자로 단결된 힘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 1995년, 1996년에 입사한 MBC노조원들이 3일 오전 MBC본사 1층 현관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송선영
지난 1984년, 1985년, 1987년에 입사한 간부급 사원들은 성명을 통해 현 MBC사태에 대한 결단을 촉구했다. 김 사장의 후배들이기도 한 보도국 소속 기자회와 보도영상협의회 구성원 252명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사장 퇴진 성명을 발표하며 “더 이상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기자 173명은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을 고소하기도 했다. 자발적인 단식도 이어지고 있다. 이근행 본부장이 오늘로 9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1993년, 1995년, 1996년, 2004년에 입사한 노조원들이 자발적인 단식을 시작했다.

이 뿐이 아니다. 현재 파업에 참여하는 노조원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편성 제작 부문 노조원들은 각종 인터넷 카페,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총파업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으며, UCC 제작, 편집을 통해 총파업을 알리는 데 나섰다. 취재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보도 부문 노조원들은 <파업 뉴스데스크>를 통해 총파업을 알리고 있다. MBC노조가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리포트로 제작한 뉴스데스크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조회 건수가 15 만건을 기록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이 밖에 영상 미술 부문 노조원들은 매일 파업의 현장을 기록하는가 하면, 파업 사진전을 준비해 MBC 1층을 장식했다.

지지하고 나선 시민들

3일 현재까지, 노조에 전달된 파업 지지 성금은 1억 1천813만원이다. 파업 초반,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일부 간부들이 “마음으로 응원한다”며 내기 시작한 성금은 일반 시민들, 네티즌,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노조, 일반 기업체 노조까지 확산됐다. 현재 MBC노조 사무실에는 시민들이 보내준 쌀, 라면, 음료수, 김, 과자와 같은 먹을거리도 넘쳐난다.

구체적으로, 공공운수연맹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금융감독원 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철도노조, 기업은행 노조, LIG 손해보험 노조를 비롯해 SBS노조, OBS노조, KBS노조, YTN노조 등이 후원 물품 또는 지지 성금을 보냈다.

시민들도 나섰다. 만원, 2만원, 3만원에서부터 많게는 50만원까지, 시민들은 “MBC의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지지 성금을 보냈다. 이 밖에 ‘MBC를 사랑하는 여의도 주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강남촛불 등 시민들도 자발적인 후원에 나섰다. 방송인 김제동씨도 “MBC를 응원한다”며 바나나 3상자를 노조에 전달했다.

▲ 4월30일 저녁 서울 여의도 MBC본사 남문광장에서 개최된 촛불문화제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공영방송 MBC를 사수하자"고 외쳤다.ⓒ 미디어스
MBC사태, 청문회 국정조사 열어야

MBC사태에 대한 청문회, 국정조사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균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늘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에서는 지속적으로 MBC 사태와 관련해 국회에서 청문회·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를 거절했다”며 “신임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민들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하루 속히 MBC 사태와 관련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 또는 국정조사를 열어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 단체들도 오늘 성명을 통해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미국 도피에서 돌아온 바로 이 시점이 청문회가 열려야 하는 시점”이라며 “국회는 이러한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하지 말고 조속하게 청문회를 개최하여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강경한 MBC, 강경 진압 준비?

김재철 사장은 총파업 초반부터 “불법 파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노조원들을 향해 “정치 투쟁”을 하고 있다며, 업무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원들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적용을 비롯해 노조 간부 13명에 대한 형사 고소, 노조 간부 18명에 대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등 잇단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 MBC는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992년, 1996년 파업 사례 분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MBC노조는 이에 대해 “정권의 채널이 되길 거부하는 자발적 결의와 참여, 노조를 뛰어넘는 사원들의 선도적인 투쟁과 전국민적 성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싸우는 동안 이미 승리했다”며 “공영방송 MBC가 권력의 품에 안기는 비극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92년 MBC노조는 52일 동안 파업을 이어간 바 있다. MBC노조는 9월4일 오전 총회를 시작으로 파업에 들어갔으며, 19일 MBC 회사 쪽은 노조 간부와 노조원 등 15명을 업무방해 및 노동쟁의조정법 등 위반으로 고소했다. 또 21일 한 일간지에 광고를 내 파업의 도덕성을 왜곡하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조의 파업 31일째인 10월2일, 검찰과 경찰은 MBC 사내에 전경 8개 중대 1천여명의 경찰을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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