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좌파입니다. 인간의 노력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그 노력이 개개인의 노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걸어가는 이들의 손을 함께 잡아주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전통과 민족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보다는 우리가 인종과 문화를 넘어선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주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성장과 경쟁이 아니라 공정한 분배와 균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모든 성향을 굳이 좌와 우로 구분해서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면 전 확실히 왼쪽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일개 개인일 뿐인 저도 이런 정치적 성향을 공적인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껄끄러운 것이 현실입니다. 정권이 바뀐 이후로 부모님은 어디 가서 허튼 소리 하지 말라며 늘 걱정이시고(제가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을 아신 뒤에는 걱정이 더 느셨습니다.) 어떤 집회에 참가해서 서명 한 번 하는 것도 쉽게 하기 힘든 갑갑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조차 편하게 풀어놓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이고 그만큼 단단하지 못한 제 연약함입니다.

김제동씨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솔직히 그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남과는 다른 개성과 능력으로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빼어난 광대였으니까요. 웃음을 전달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의 여부가 아니라 단지 얼마나 그가 웃길 줄 아는 사람인가, 대중에게 즐거움을 전달할 줄 아는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만큼은 공인이라는 딱딱한 굴레가 아닌, 단지 진행자로서 좋은 MC로서 평가받았으면 했습니다. 전 그가 누구를 지지했건, 어떤 행보를 보여주었던 간에 김제동만이 전해줄 수 있는 따스한 웃음이, 그가 차곡차곡 쌓아가는 어록이 주는 감동이 좋았으니까요. 이전 포스팅에서 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식 사회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실었던 것도 이젠 조금 편안하게 그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더 이상 힘들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팬의 욕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옹졸한, 비겁한 팬의 바람을 정면으로 부인하며 한 발짝씩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워질수록, 정치색이 강한 연예인이라는, 아니 더 나아가 좌파 연예인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도 무거운 굴레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갈 것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죠.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직장인 MBC가 파업을 하는 것에 다른 연예인들 모두가 입을 다무는 상황에서 공공연히 그들을 지지한다며 작은 선물을 보내고 각종 이슈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한없이 가벼워진 그의 마음에 이제 어떤 주홍글씨도 단순한 낙서일 뿐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그동안의 무수한 억측과 왜곡, 억울한 처우를 불러온 출발점인 노제 사회에 대해 말하면서 또 하나의 어록을 추가시킵니다. ‘노제 사회 본 것 때문에 좌파면 난 좌파하겠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정부를 가진 적은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조국을 가진 적은 없다.’ 말의 아름다움, 발언의 적합성을 따지기 이전에 우선 그가 이런 말을 털어놓는 용기가, 그 솔직함과 진실함이 먼저 다가오는 이 말들은 이제 그의 모습에서 웃음보다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그리고 고마움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안으로 움츠러들었던 동안, 그는 보다 단단해지고 훨씬 더 당당해지고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만 못내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웠던 말을 대언해주었으니까요.

그는 여전히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그럴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불러왔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김제동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그 진정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겠죠. 네. 그것이 김제동 어록의 생명력이고 그의 웃음이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부디 그가 이런 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저 편안하게 웃음을 주고받으며 그것으로 행복해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감정이 지켜주고 싶은, 힘을 내라고 하는 말이 아닌, 늘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었으면 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주었으면,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제동의 어록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저는 그의 영원한 팬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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