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원 162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언론장악방지법'에 찬성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일 때는 침묵하던 조선일보가 갑자기 언론장악방지법을 찬성하고 나섰다.

▲31일자 조선일보 6면.

정부여당 편향적인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대한 지적은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KBS 사장을 선출하는 KBS 이사회는 여당이 추천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4명으로 구성되고 MBC 사장을 뽑는 방송문화진흥회는 정부여당 추천 이사 6명(대통령 3명, 여당 3명),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법률에도 기재돼 있지 않은 이 내용은 관례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 19대 국회 방송공정성특위에서 당시 여야는 최소한의 합의할 수 있는 공영방송 공정성 제고 방안을 내놨다. 이를 모아 법안으로 만든 것이 바로 '언론장악방지법'이다. 언론장악방지법은 여당 편향적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7대6 구조로 바꾸고, 사장 추천시 이사 2/3 이상의 동의를 받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사용자 측과 종사자 측이 '동수'로 참여하는 노사동수 편성위원회와 공영방송 이사회 회의록 공개안을 담고 있다.

31일자 조선일보는 6면에 방송법 개정 이슈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조선일보는 <與, 방송법 개정에 침묵…MBC 경영진 교체에만 관심>기사에서 "민주당은 야당 시절 '정권 차원의 방송장악을 막아야 한다'며 당론으로 방송법 개정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여당이 된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야당은 '정권을 잡으니까 마음이 변한 것 아니겠냐'며 '당장 논의를 시작하자'고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바로 '언론장악방지법'이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정작 방송법 개정을 추진해온 민주당은 미지근한 반응"이라면서 "우원식 원내대표는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원내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방송법 개정 문제가 나오자 '충분히 논의해보자'고만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비공개 업무 보고에서 방송법 개정에 대해 재검토하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 알려진 뒤 우리도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일단 당내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31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방송을 政爭서 떼어내는 법안 처리가 방송 정상화다> 사설에서 언론장악방지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검찰이 어제 MBC를 관할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 김재철 전 MBC 사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정치 도구화가 도를 넘었다"면서 "이처럼 KBS, MBC 경영진 교체에 노조, 방통위, 검찰, 국정원이 총동원된 가운데 정부는 정작 공영방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송법 개정은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정권을 잡은 뒤인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말한 후 민주당 입장이 바뀌었다"면서 "정권을 잡았으니 자신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후 방송법 개정은 아예 잊어버린 듯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는 "지금 우리 공영방송은 '공영'이 아니라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강요받는 기관이다 그러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면서 "더 이상은 이대로 갈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곪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당이 만든 방송법 개정안대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정권 측이 손대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면 이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7월 언론장악방지법이 발의됐을 당시부터 최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조선일보는 이 법안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언론장악방지법 발의 초창기부터 '무조건 안 된다'며 강하게 막아섰다. 당시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결국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의 언론장악방지법 반대에 부딪혀 20대 국회 개원 첫해 법안 처리수 '0건'을 기록, '식물상임위'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지난 1월 과방위는 여야가 추천한 언론 관련 교수들을 국회로 불러 '공청회'를 진행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교수까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해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자유한국당은 또 다시 이를 묵살했다.

▲지난 2월 14일 언론장악방지법 안건조정위 회부 여부를 두고 당시 여야가 설전을 벌이는 모습. 민주당 신경민, 박홍근 의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과 박대출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나온 주장이 언론장악방지법은 '노조의 방송장악'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문제삼으며 언론장악방지법을 반대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이 또한 터무니 없는 논리다. 직군별로 대표성을 가진 종사자를 뽑아서 편성위원회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을 노조의 방송장악이라고 주장한 게 자유한국당이다.

또한 언론장악방지법에 담긴 부칙에도 반대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공영방송 이사진, 경영진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언론장악방지법에는 법안 통과 후 3개월 안에 공영방송 이사회, 경영진을 새롭게 구성하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여기도 속내가 있다. 자신들이 박근혜 정권 시절 임명한 인사들의 임기를 보장해 방송장악을 이어나가겠다는 의도다. KBS 고대영 사장의 임기는 내년 11월까지이고, MBC 김장겸 사장의 임기는 2020년 2월까지다.

조선일보는 이 모든 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제와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후 마음이 바뀌어 언론장악방지법을 통과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이 역시 사실관계 확인을 명확히 하지 않은 주장이다. 민주당 과방위의 한 관계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언론장악방지법은 우리당의 당론"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이 편성위원회, 부칙에 합의할 준비만 돼 있다면 언제든지 협상이 가능한 상태라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재의 언론장악방지법에 대해 '최선의 법안은 아니다'고 했던 것은 현재 언론장악방지법 논의의 틀을 깨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방통위는 고삼석 상임위원을 수장으로 하는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토론회와 사회적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정책 개선 방안을 담은 정책제안서를 제출한다고 한다. 언론장악방지법은 법 대로 가면서, 새로운 공영방송 개선 방안도 준비하겠다는 의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