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취향은 4회를 마치면서 두 가지 상징 장치를 남겨두었다. 아마도 그 둘은 결국 하나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외모를 가진 손예진이 필요 이상으로 망가진 외모로 분장했는데, 마치 김아중이 뚱뚱한 여자로 나왔던 것을 간간히 떠올리게 한다. 대체로 왜 저럴까 의문을 가졌을 것인데, 그것은 술에 취해 개인을 찾은 창렬의 놀라운 고백과 그것으로 인한 개인의 변화를 시각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람둥이 창렬이 개인을 떠나 인희에게 간 결정적 계기가 참 놀랍다. 개인은 비 맞은 강아지에다가 소녀였고, 인희는 남자인 창렬에게 여자로서 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해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얘기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도 그렇고, 이 글도 꼭 성인만 읽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말을 끌어가기가 참 옹색하다. 그러나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성과 결혼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조심스럽게 이어가보도록 한다.

성(性)에 대한 문제는 결혼에 있어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직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속궁합이라는 것이 뜻하는 것이 꼭 그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잉태의 의미보다 서로에게 성적으로 잘 맞는 상대인가에 대한 의미로 더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만큼 여성의 성적 관심도가 공개적 태도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부부에게 있어서 성적 교감은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부이기 위해 필요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바람둥이 창렬이 여자가 되지 못한 개인과 결혼하기에 꺼려졌다는 고백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성적인 트러블로 인해 이혼하는 케이스를 보게 되면 혀를 차면서도 노골적으로 손가락질하기는 주저하는 것이 결혼한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이미 남녀의 운우지락을 꿰뚫고 있는 창렬에게도 결혼은 진지한 결단이었기에 개인에게서 느끼는 불안을 납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그 나이 되도록 여자가 아닌 것이 가능한 시대인가에 대한 물음도 하고 싶어진다. 여자의 마음만이 아니라 여자의 몸도 원하는 것은 짐승의 본능을 극복하지 못하는 평범한 남자들의 당연한 욕망이다. 여자는 마음을 주면 다 준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남자는 몸을 가져야 비로소 마음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단순무식하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 남자다. 그런 남자를 몰랐던 것이 개인의 불행이며 굴욕의 원인이었다.

창렬을 보내고 난 뒤, 개인은 진호에게 "여자를 만들어 달라"한다. 사실 그 말에 진호의 대답이 참 멋없다. 그 장면이 앞으로의 커다란 전환을 가져올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인데, 고작 한다는 말이 "남자에게 여자를 만들어 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남자는 고작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대단히 이지적으로 포장된 남자라면 다른 생각과 말을 하겠지만 통속적인 드라마라면 그 대답이 오히려 개연성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창렬에게 충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개인은 아직 여자가 아니기에 진호가 말하는 뜻 따위 알 턱이 없다. 그렇다면 개인이 생각하는 여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무래도 이 대답은 여자가 해주어야 할 것 같다. 20대 후반 대략 28살의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그 정도의 나이에 여자가 아닌, 그러니까 플라토닉만 꿈꾸는 여자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된다. 짐승남에 환호하는 요즘 여성들에게 개인 같은 여자는 어떻게 비쳐질까? 릴레이처럼 이 글과 연계되어도 흥미로운 일이 될 듯하다.

그렇지만 여자가 되겠다는 개인의 각오로써 분명해진 것 하나는 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개인은 그동안 고집스럽게 착용했던 머플러, 후드티 등을 벗어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스꽝스러운 개인의 패션은 향후 백조가 되기 위한 미운오리새끼의 설정이었다.

개인의 취향은 애초에 이민호의 게이 설정은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게이(로 착각하고 있는)인 동거남 진호를 통해 개인이 여자가 되기 위한 서포터즈가 되는 것 같다. 사실 조금 실망스럽다. 이렇게 되면 스토리가 단순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예진의 제대로 된 미모를 비로소 즐길 수 있다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청률 대박은 그만큼 조금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을 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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