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쪽 1.8Km 해상에서 경비 활동을 하던 1200톤급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지 2일로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와 비교했을 때 정작 바뀐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실종된 46명의 생사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정확한 침몰 원인과 과정 등이 밝혀지지 않아 이를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초기 대처 뿐 아니라, 수색 작업 전반에 걸쳐 여러 미흡함을 보인 군 당국은 제한된 정보만을 언론에 제공하는가 하면, 침몰 시간을 잇달아 수정하는 등 미덥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떨까? 방송사들은 초계함 침몰 직후부터 속보, 특보 체제를 가동해 많은 방송 시간을 할애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신문사들은 연일 많은 지면을 통해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 또한 실시간으로 관련 소식을 전하며 초계함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언론은 나름 ‘열심’을 다하고 있지만, 정작 언론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심지어 실종자 가족들까지도 “언론이 너무 많은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언론은 군 당국이 발표하는 브리핑에만 의존한 채 발언을 전하는 데에만 열중하는가 하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보도해 ‘추측 보도’를 남발하는 등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군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임에도 확인되지 않은 ‘북측 공격설’을 제기하는 등 “기자들이 소설가인양 보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뿐 아니다. 언론이 ‘초계함’ 보도에 집중하면서 보도되지 않은, 언론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안들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 명진스님이 3월28일 법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봉은사
◇ 명진 스님 발언, 어디로?

서울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지난달 28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이 조계종 수장으로서 부적절하게 현 정권과 지나치게 유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자승 총무원장이 지난 대선 막바지에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봉은사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또 “자승스님이 세종시 문제에 대한 여권의 여론몰이를 거들고 나섰다”며 “지난해 12월24일 박형준 정무수석과 함께 충청도에 내려가 마곡사, 수덕사 등 지역 절 주지들을 모아놓고 세종시 문제 협조를 요청했다. 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우리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과 자승 총무원장 간 밀통과 야합이 있었다”는 이 발언은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 간의 ‘유착’을 폭로한 것이었지만 언론의 큰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MBC와 KBS는 저녁 메인뉴스를 통해 ‘단신’으로 짧게 보도했으며, SBS는 단신으로도 보도하지 않았다. 29일 조간신문도 경향신문, 한겨레는 비교적 상세히 다룬 반면, 동아일보와 조신일보는 단신 수준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명진스님의 발언을 보도하면서도,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싼 조계종 내부의 문제인 “절집 문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덕분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좌파스님’ 발언도 잠잠해졌다. 명진스님을 향해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는가”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 안상수 대표를 향해 일던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도 더불어 잠잠해졌다. 명진스님의 발언을 초계함 보도로 가려버린 언론과 이를 조계사 내부 문제로 몰고 가려는 언론 덕분에 봉은사, 한나라당, 정권 그리고 조계종을 둘러싼 진실 여부는 관심 밖으로 서서히 밀려났다.

▲ 국민일보 3월30일치 2면에 실린 사진
◇ 하루 만에 식어버린 일본 독도 교과서에 대한 언론 보도

지난달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용도서검정조사심의회를 통해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5종의 검정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내년부터 모든 일본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시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초등학생에게 시각적으로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키기 위해”라는 이유를 들어 각 출판사에 독도를 일본 영해에 포함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금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를 싣고 있는 3종과 내년부터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할 2종 등 교과서 5종 모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다.

방송3사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이 일본의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날 KBS, MBC, SBS는 메인뉴스에서 초계함 소식을 전한 뒤 뉴스 끝 부분, 독도 관련 보도를 했다. 31일 조간신문도 진보신문, 보수신문 할 것 없이 기사, 사설 등을 통해 일본의 태도를 지적함과 동시에 일본의 행보에 대해 뒤늦게 항의만 하는 한국 정부의 조용한 외교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 보도가 전부였다. 하루 만에 다시 모든 언론의 조명은 초계함으로 집중됐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끊임없이 들고 일어나는 일본의 행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요목 조목 비판한 언론은 드물었다. 청와대는 일본의 독도 교과서와 관련해 “그건 외교부가 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마저도 일부 언론을 통해서만 보도됐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그건 외교부가 할 일이다. 외교부가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외교부 입장을 정부 입장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한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과 관련해 “진실을 밝혀라”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김길태 사건에 묻혔듯, 이번 초계함 보도로 일본의 독도 교과서 문제가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밖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박지연씨의 사연도 <한겨레> <프레시안> 등 일부 매체만이 관심있게 보도했을 뿐, 다수의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에 따르면,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조혈계 암에 걸린 노동자만 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기업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주요하게 다룬 언론은 드물었다.

언론이 초계함 사건에 할애하는 시간과 지면은 늘었지만, 보도의 정확성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사건을 둘러싸고 무분별하게 여러 의혹들을 제기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언론이 여러 사회 현안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초계함에만 그저 ‘올인’하고 있는 사이,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사이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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