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미디어활동은 근본적으로 변동을 선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공중의 이익>은 미디어 운영상 필요에 따라서 재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송신자(사회, 주창자, 커뮤니케이터, 미디어 자체)의 이익과 수신자(수용자, 공중, 또는 사회의 하위집단)의 이익 중 어느 쪽을 위해 매스 미디어를 이용하는 결정적 선택은 아무래도 전자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것은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라기 보다는 <조작>에 가깝다는 것을 뜻한다. 매스커뮤이케이션 이론, 다니엘 멕퀘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후, 동아일보는 <“북, 자폭임무 ‘인간어뢰’ 부대 있다”>, <북 3일째 침묵중… 무관해서? 무관한 척?> 등의 기사를 쓰며 사건을 북한과 연관시키려 노력했다. 북한과 연관시켜 레드콤플렉스를 자극시키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언론사는 사회적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틀(Frame)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해석 틀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천안함 침몰’을 북한과 연관시킨 것도 자신들만의 틀짓기(Framing)를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멕퀘일이 매스미디어가 <커뮤니케이션>이라기 보다 <조작>에 가깝다고 한 것도 이러한 미디어의 틀짓기가 송신자의 이익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송신자는 대개 사회 지도적 위치에 있거나 적어도 남들보다 특정한 측면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정부(관료), 정당(정치인), 기업(사장), 군(장군), 학교(교수) 등과 같은 집단이나 개인들이다. 미디어는 이들 가운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송신자를 찾고, 이러한 송신자를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더욱 공고히 한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하기 전 무상급식은 사회적인 논쟁거리가 됐다. 지역자치단체선거와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학생들의 무상급식 문제는 매체의 다양한 틀짓는 방식을 드러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보수신문은 선거를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고 폄훼했다.

▲ 조선일보 2월 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2월 4일 사설, <’무상급식’ 공약경쟁, 선거를 앞둔 독버섯>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선거 당시 공약한 무상급식 공약이 다른 시도로 번져가는 것이 눈에 불 보듯 하다며 "아첨꾼 정치인들은 불평등과 빈부격차라는 사회의 그늘을 비집고 독버섯 돋아나듯 돋아난다"고 비난했다. 이어 “선동 정치가들에게 농락당해 세계 5위 부국에서 국가부도 사태로 밀려갔던 아르헨티나의 뒤를 밟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2월 10일, 각각의 사설 <'공짜 천국' 만들 듯한 선거 공약, 서민이 피해자다>, <무상 급식은 표만 노린 대표적 포퓰리즘이다>에서 무상급식 정책을 비판했다.

이와 같은 조중동의 무상급식 관련 보도는 포퓰리즘이라는 공통의 틀을 갖추고 있다. 포퓰리즘이기 때문에 공약의 실현성이 떨어지고, 실제로 공약이 실행되면 국가나 지자체, 지역교육청의 재정이 파탄 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나라당이 야당을 비판하는 논리와 같다.

문제는 조중동의 틀짓기가 조중동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KBS, MBC, SBS와 같은 지상파 방송사들도 조중동이 만들어 놓은 틀 내에서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시각과 무관하다.

KBS는 지난 19일, 뉴스광장 1부에서 <급식에 가린 지방선거>라는 해설 보도를 내보냈다. KBS는 “초중등학생들에게 전면 무상급식을 하기 위해서는 연간 2조 원이 넘는 엄청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무상급식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현재 전면 무상급식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스웨덴 등 소득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는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무상급식도 중요하지만 훨씬 시급한 현안들에 대한 정책 공약을 검증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공약 현실성 의문 → 재정의 문제 → 외국의 사례’로 이어지는 KBS 기사의 논리적 틀은 조선일보의 논리, ‘김상곤 경기도 지사 공약의 현실성 → 선거때 마다 나타난 아첨 정치꾼의 독버섯 → 아르헨티나와 같은 제정파탄’과 강도의 차이만 있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SBS도 <8뉴스>를 통해 무상급식의 현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재원의 문제와 포퓰리즘을 거론했다. 9일, SBS는 “만약 전면 무상급식이 초•중학교에서 실시되면 한 해 1조 7천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재원 문제를 제기했고, 18일 다른 보도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쟁점화 돼 버린 상황인 만큼 무상급식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라고 보도했다.

물론 SBS는 KBS와 같이 조중동의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하지는 않았으며 무상급식 정책에 대해 시비를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방송 보도에서 사용된 틀이 조중동의 틀이라는 것이다.

KBS와 SBS는 왜 조중동이 만들어 놓은 틀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일까? ‘무상급식’이라는 사회적 의제는 야당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만들어 냈지만, 조중동은 의제의 논의 방식을 정해 버렸다. 실현가능성, 재정의 문제, 포퓰이즘 등으로 대표되는 무상급식에 대한 부정적 논의 틀을 조중동이 정해 버렸고, 국회가 이 논의 틀안에서 치열한 논쟁을 했고, 이를 방송이 받아 그대로 중계하는 형식이 된 것이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지난 2005년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 토론회>에서 조중동의 의제설정에 대해 성토한 적이 있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조중동이 의제를 통제하거나 은폐하면서 우리나라 지도층의 생각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중동이 설정한 논의틀 안에서 맴도는 모습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언론운동을 하던 한 친구가 사회복지의 꿈을 두고 한 지역 사회복지센터에 들어갔다. 출근 첫날 놀센터장 책상 위에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자신은 ‘아직도 누가 신문을 볼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도 조중동이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진 모습을 보고 언론운동을 그만 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조중동의 힘은 이러한 곳에 있다. 멕퀘일이 말한 ‘송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을 보고 있고, 조중동이 만든 틀 안에서 논의하고 논쟁한다. 이 때문에 심지어는 조중동에 대해 반대하는 ‘송신자’들까지도 조중동을 볼 수 밖에 없다. 조중동을 비판하는 많은 야당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 책상 위에도 조중동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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