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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게 해, 주오’- 만주로 갈 뻔한 수지, 소재주의인가 판타지적 해석인가[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7.09.14 18:58

KBS 총파업의 여파로 <추적 60분>이 연 2주 결방됐다. 그 빈 자리의 혜택을 입은 건 뜻밖에도 <2017 드라마 스페셜>이다. 애초 일요일 밤 10시 40분에 편성되었던 <드라마 스페셜>이 평일 수요일 밤 11시에 시청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지난주 <우리가 계절이라면>에 이어, 이번 주엔 <만나게 해, 주오>가 찾아왔다. 

1930년대 경성의 혼인정보 회사라니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 경성, 지금의 서울이다. 정치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하였고, 그 '식민지배'의 체제 아래 일본을 통한 서구 문화가 조선, 그중에서도 경성을 강타했다. 서구 문물의 상징인 백화점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나날이 새로운 문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두발과 의상, 언어, 의식에 있어서 그 이전의 젊은 세대와 다른 이른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7 드라마 스페셜> 두 번째 작품 <만나게 해, 주오>는 바로 이런 '모던 보이'가 활보하는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경성의 모던 보이들은 전통적인 관습과 풍습 대신, 서양의 문화에 매료되어 '적극적' 실천을 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실천 양식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자유연애'다. 일찍이 이광수의 소설을 통해 그 시절 젊은이들의 고뇌로 등장한 자유연애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강제된 계약 관계의 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대를 선택하고 사랑에 빠지는 '개인주의적' 삶으로의 도약(?)이었다. 

<만나게 해, 주오>는 바로 이런 '자유연애 지상주의' 경성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결혼정보회사가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으로 드라마를 연다.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만나게 해, 주오’

얼룩진 얼굴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수지(조보아 분), 아니 사실은 숙희는 '모던 보이'와의 결혼을 목표로 하는 여성이다. 그 야심찬 목표에 따라 경성 혼인정보회사 주최 쌍쌍파티에 난입한 그녀는 막춤을 추며 파티장의 수질(?)을 흐리다 대표 차주오(손호준 분)의 눈에 띤다. 10전 상점 점원인 그녀를 10전 상점 여주인으로 오해한 차주오. 그리고 그녀를 아끼는 10전 상점 여주인의 배려로 '모던 걸' 수지로 변신한 숙희는 차주오의 적극 응원에 힘입어 여러 모던 보이와의 맞선 자리에 나선다. 

1930년대 자유연애를 부르짖던 그 시대에도 결국, 결혼은 '돈과 집안과 외모에 따라 결정된다는 만고불변의 속물주의’를 내세운 결혼정보회사와 그들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선 수지를 통해 드라마는 당시 '모던 보이'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와세다 대학이란 허울 좋은 간판, 고위직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축첩의 시도 등이 매번 '헛물'을 켜게 만드는 숙희의 맞선 작전의 실체다. 

결국 맞선 자리 해프닝으로 총독부까지 끌려가, 혼인정보회사가 문을 닺게 될 위기에 빠지며 뚜쟁이와 속물 모던 걸이었던 두 사람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저 모던 걸의 결혼 작전이었던 드라마 역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춘의 고달픈 사연을 풀어놓는다.

우선 수지라고 이름조차 세련되게 바꾼 숙희는 사실 제천 출신의 가난한 아가씨이다. 아픈 어머니를 경성에 있는 큰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한 채 잃은 그녀는 아버지가 강제로 권하는 결혼에 반발하며 결혼을 통해 성공하고자 경성으로 온 사연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경성 혼인정보회사 대표 차주오는, 독립군 자금을 대주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빨간 딱지 투성이가 된 집안의 청년으로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에 반발하여 '돈'을 좇아 혼인정보회사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알고 보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은 혼인정보회사 대표와 고객이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며 가까워져 간다. 

뜻밖의 만주행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만나게 해, 주오’

그렇게 가까워지던 두 사람 사이에 장벽은 뜻밖에도 총독부 공문에서 시작된다.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국 정복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 100명의 만주행을 결정한다. 총독부 관리에게 이자를 주러 온 주오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혹시나 끌려갈까 주오의 여동생을 강제 결혼시키려 하다 동생의 가출사건으로 이어진다. 동생의 가출사건은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지만, 주오는 그 만주행 명단에 숙희가 있음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일본인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그런 주오가 섭섭한 숙희는 그녀의 로망이었던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 대신 만주행을 택하게 되는데...

달콤쌉싸름한 연애사였던 드라마는 여성 100인의 만주행 공지문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로 발을 디딘다. 부푼 꿈을 안고 만주로 향하던 숙희는 실상을 알게 되지만 강제로 기차에 태워지고, 그녀를 찾아온 주오는 쌍쌍파티를 이용하여 숙희를 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나 애초 전형적인 '로코'의 형식을 띠었던 드라마는 위기의 만주행 기차를 주오와 아버지의 화해를 도구로, 만주로 잡혀갈 뻔했던 100명의 조선 여인들의 탈출 작전으로 변모시킨다. 

결국 총독부 관리들의 실패와 실수로 만주행은 없었던 일이 되고 주오와 숙희는 행복한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로 끝나게 되는 드라마. 

시대적 고통 담아내는 진지한 접근 아쉬워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만나게 해, 주오’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 드라마는 전통적 결혼에 반발하는 여성과, 독립 운동을 하는 아버지에 반발하는 청년이라는 시대적 고통으로 일제시대라는 배경의 깊이를 더한다. 거기에 뜻밖에 숙희에게 닥친 만주행은 2017년에도 끝나지 않은 시대적 고통을 절묘하게 극적긴장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문제다. 21세기에도 끝나지 않은 민족적 고통, 일제시대 여성들의 강제동원이란 역사적 문제를 로코 형식의 드라마가 '절정'의 갈등으로 차용한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이다. 드라마에서 주오는 강제로 기차에 태워진 숙희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고, 그런 주오를 발견한 총독부 관리는 총을 든다. 그런 그를 주오의 아버지가 가격하고, 주오가 구한 여성들은 총독부 군인들을 함께 물리친다. 

바로 이 지점이 과연 역사적 비극을 '판타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라’라는 로코의 도구로 소비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 모호하다. 그 모호한 지점에서 주오가 자신의 혼인정보회사의 쌍쌍 파티를 활용하여 총독부 경무국장 요시다를 희롱하고,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만주로 갈 처녀들을 구하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억압적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조악'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의도는 알겠지만 '안이하고 편의적'인 구성이라는 생각 역시 지울 수 없다.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강제수용소를 '단체 게임'으로 속인 아버지의 거짓말은 아들을 구하지만,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는 현실성에 기대어 울림을 갖는다. 그런데 <만나게 해, 주오>에서 숙희의 위기로 등장시킨 만주행 강제 징집은 그 역사적 무게감에 비해 드라마 속 장치로 너무 가볍게 처리되었다는 점이 걸린다. 물론 시대적 비극에 상상력이 짓눌릴 필요는 없다지만, 그래도 그 방식에 있어서는 비극의 무게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려내려 애써야 하지 않았을까?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이 불편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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