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진행된 유리상자의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 음악감상회는 한국의 유일무이한 20년 남성듀엣그룹의 진정성과, 그들이 어떻게 롱런할 수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대개의 가수라면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크고 빛나는 자리였음 하는 바람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유리상자는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음감회를 갖고 동일한 장소에서 9월 1-3일 사흘 동안 콘서트를 개최한다. 왜일까.

박승화는 “1997년 9월에 유리상자가 처음으로 콘서트를 연 곳이 이곳 학전블루”라고 소개했다. 이어 “혼자 활동할 당시 꿈이 있었다면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을 가득 메우고 콘서트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 첫 콘서트를 할 당시 공연 올라가기 5-10분 전에 문틈으로 살짝 보니 스태프가 보조의자를 놓고 있었다”면서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와서 복도에서 하이파이브를 한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밝혔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진행된 유리상자의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 음악감상회 Ⓒ제이제이홀릭 미디어

유리상자가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롱런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이세준은 “‘어떤 가수가 되고 싶은 게 꿈이냐’는 질문을 인터뷰에서 받을 때 ‘공연을 많이 하는 가수가 되었으면 하고, 10년에 걸쳐 천천히 길게 사랑받았으면 한다’는 답을 한 적이 있다”면서 “당시에는 10년이 제일 긴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답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답변의 두 배인 20년 동안 활동해서 뿌듯하고 대견하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세준은 “유리상자만의 자랑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남자 듀엣 가운데서 20년 동안 멤버교체나 활동 중단, 불화 없이 이어진 팀이 없다. 1년에 한두 곡씩 발표하는 건 유리상자밖에 없다”면서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승화가 “내가 먼저 갈 수 있어”라고 할 때 이세준은 “가는 데 순서가 어딨어?”하고 응수하기도 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진행된 유리상자의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 음악감상회 Ⓒ제이제이홀릭 미디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들의 최장수 듀엣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세준은 “서로의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게 비결이다. 너무 원하지 않아 좋은 것 같다”며 “여자문제 없고, 돈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고, 박승화는 “방송할 때 20년 동안 같이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지 않은 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도 무관심하지 않은, 많은 배려와 이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탰다.

이들이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엔 하나가 더 있었다. 이세준은 “유리상자가 1집에서 5집까지, 발표하면 20만장씩 음반을 팔던 때가 있었지만 그 후 완만한 하락세를 겪어도 잘 받아들이고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 것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세준은 “하지만 인기가 많은 분인데도 활동하지 않는 분도 있다. 예전에는 몇 천 명 공연장에서 공연하다가 몇 백 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걸 못 받아들이고 ‘내가 누군데 그런 공연을 해?’하는 분이 있다. 저희는 그분과 생각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박승화 역시 “공연장이 작을수록 재미있는데 그런 재미를 포기하는 건 아쉽다”고 전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진행된 유리상자의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 음악감상회 Ⓒ제이제이홀릭 미디어

20년을 동고동락한 유리상자의 남은 바람은 무엇일까. 박승화는 “유리상자는 지난 20년 동안 공연한 게 800회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김광석 선배는 천 회를 공연했다”면서 “어떡하면 천 회 갈 수 있을까. 후배로서 볼 때 마음으로 (김광석의 천 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박수치며,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루고 싶은 건 유리상자의 천 회 공연”이라는 바람을 표명했다.

유리상자의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의 전곡은 1일 오후 6시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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