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독자게시판

제목

경상북도 칠곡(漆谷)은 팔거(八莒) 명칭을 환원해야

닉네임
김민수
등록일
2013-09-26 09:52:59
조회수
2736
경상북도 칠곡(漆谷)은 팔거(八莒) 명칭을 환원해야




http://blog.naver.com/msk7613




1905년 이후 왜관읍으로 부르고 있는 팔거읍(八莒邑)은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이라 하였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팔리현(八里縣)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다시 팔거현(八居縣)으로 고쳤다가 뒤에 거(居)의 음이 전하여 팔거(八莒)로 변하였다.1594년 3월 4일 비변사가 아뢰기를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이 팔거(八莒)에서 떠나 전라도로 철회했습니다.”하였다. 1640년 5월 25일 인조가 가산성(架山城)의 읍명(邑名)을 칠곡부(漆谷府)로 정하고 윤양(尹瀁)을 부사로 삼았다. 1678년 8월 13일 허적이 말하기를, “경상 감사(慶尙 監司) 이단석(李端錫)이 칠곡읍(漆谷邑)에 살면서 민원(民願)을 따라 팔거현(八莒縣)에 이설(移設)하는 일을 가지고 계문(啓聞)하였는데, 칠곡산성(漆谷山城)은 바로 인조조(仁祖朝)에 창설하였으며, 그 지세가 가장 뛰어난 요지(要地)이니, 이제 경솔하게 이거(移居)하기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1819년 5월 25일 순조가 칠곡부(漆谷府)를 팔거읍(八莒邑)의 팔거창(八莒倉)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


경상북도 칠곡(漆谷)의 왜관은 낙동강 하류에서 뱃길을 따라 올라온 왜물(倭物)을 한성에 실어가기 전에 보관해 두었던 창고인 왜물고(倭物庫)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왜인들이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던 왜관은 부산포(초량), 제포(진해), 염포(울산)에 있었다. 임진왜란 후에는 두모포, 절영도, 가배량 및 초량, 김해, 창원의 10여 개 소를 설치하였다. 1905년 일본군국주의가 대륙 침략을 위한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낙동강변의 넓은 지대에 있는 역 간판을 왜관으로 달게 되면서부터 팔거(八莒)를 왜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팔거(八莒)는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이라 하였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팔리현(八里縣)으로 고쳤다. 고려국 초기에 다시 팔거현(八居縣)으로 고쳤다가 뒤에 거(居)의 음이 전하여 팔거(八莒)로 변하였다.경상북도 칠곡(漆谷)은 일본군국주의가 대륙 침략을 위한 경부선 철도 역 이름으로 붙인 왜관을 3한국시대 이후 계속 사용한 역사 지명인 팔거(八莒)로 명칭 환원하여야 한다.
작성일:2013-09-26 09:52:59 39.118.16.7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비회원 로그인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성욱
  • 법인명 : 미디어스
  • 제호 : 미디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편집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안현우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안현우 02-734-9500 webmaster@mediaus.co.kr
  •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 미디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