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영재 칼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검사의 눈물이 터졌다. 쿠팡 CFS 일용직 퇴직금 사건을 무혐의로 몰고 간 과정에 '무혐의 가이드라인'과 '핵심 증거 누락'이 있었다는 내부 증언이다. 증언 직후, 회사 측은 취업규칙을 원상복구해 퇴직금 지급으로 돌아서겠다고 밝혔다. 사건의 전모는 향후 수사·감찰로 더 밝혀져야겠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한국 검찰권의 구조적 결함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왜 지금 ‘근본 개혁’이 필요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은 ‘기소 편의주의’라는 막강한 재량을 사실상 검찰이 독점하는 구조다. 조직 내부의 승인사슬을 타고 올라갈수록 사건 기록은 정치·경제 권력의 이해에 오염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무자가 파악한 사건의 실체가 ‘윗선의 결론’에 맞춰 재구성되고, 불리한 증거는 보고서에서 증발한다. 이번 사안에서도 '무혐의 수사 가이드라인', '핵심 압수수색 결과 누락'이라는 구절이 반복됐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더 이상 개인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 실패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불공정의 제도화, 민주주의의 침식, 그리고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정상 체제에 대한 대중의 체념과 분노다. 형사사법은 권력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퇴직금 200만 원은 누군가에게 생계의 끈이다. 이 돈 앞에서조차 ‘사건 경제학’이 작동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 기능의 실패다.
해법은 추상적 “개혁” 구호가 아니다. 내부통제제도의 본뜻대로, 권한을 쪼개고 상호감시 장치를 촘촘히 박아 넣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 수사와 기소의 실질적 분리
형식적 분리가 아니다. 기소 여부 판단 조직을 수사 라인에서 완전히 떼어내고, 인사·평가 체계를 분리해 상호 종속을 끊어야 한다. 기소심의는 다수형 합의제(위원회)로 전환하고, 소수의견을 기록·공개하라.
2. 보완수사권의 ‘비밀 통로’ 폐쇄
보완수사 요구는 전자시스템으로만, 표준서식·사유코드·기한을 강제하고 자동 공개(수사종결 후)하라. 오프라인 구두지시는 금지·기록화하고, 위반 시 감찰 자동개시 트리거를 걸어라.
3. 증거관리의 독립화와 로그 불변성
압수수색물과 핵심분석 결과는 수사팀이 아닌 독립 증거관리실이 블라인드 업로드·해시값 고정으로 대검·법원·피의자 대리인에게 동시 열람되게 하라. 보고과정에서의 ‘누락’ 자체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4. 기소결정 사유서의 표준공개
불기소·약식기소 등 모든 처분에 대해 체크리스트형 사유서와 핵심증거 요약표를 공개(피해자·고소인에 우선, 일정 기간 후 일반 공개)하고, 외부위원이 무작위로 사후감사하라.
5. 이해충돌·외부접촉 실명 기록
검사-당사자·변호인·정치권 접촉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까지 전자로그로 남기고 분기별 통계를 공개하라.
6. 양심선언 보호의 실효화
내부고발자 보호를 사건단위가 아니라 직무·인사 전 과정으로 확장하고, 보복 징후(인사점수 급락, 원거리 전보 등) 탐지 시 자동구제 절차를 가동하라.
7. 시민참여의 상설화
기소심의위원회, 검찰시민감사관을 상설화하고 무작위 추출·이해충돌 배제 알고리즘을 도입하라. “우리 이름으로 한 결정”이라는 감각을 제도에 심는 것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8. AI·데이터에 의한 ‘법률 특권’ 해체
법률 지식은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다. 사건 유사도 검색, 양형·기소불균형 탐지, 보완수사권 남용 패턴 감시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 기본기능으로 돌려라. 알고리즘은 공개규격·외부검증을 의무화하라.

“검찰은 정의의 대리인”이라는 낡은 표어는 이제 증명이 필요하다. 증명은 눈물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절차에서 나온다. 수사와 기소를 떼어놓고, 기록을 남기고, 공개하고, 외부가 감시하게 하라. 권한은 쪼갤수록 투명해지고, 기록은 남길수록 권력이 두려워한다.
이번 사안의 진상은 끝까지 밝혀야 한다. 지휘라인에 실제 외압이 있었다면 형사책임과 징계를 병행하라. 동시에, 우리가 이 사건을 '또 하나의 정치 공방'으로 보내버린다면, 다음의 200만 원은 또다시 증발할 것이다. 기소 편의의 독점이 만들어낸 정치·경제 엘리트의 방탄막을 철거하는 것—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다. 국회는 감찰과 수사 촉구를 넘어, 권한 분산·기록 공개·외부 감시 3대 축을 법으로 박아 넣어야 한다. 그날, 우리는 더 이상 눈물로 정의를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눈물 쏟은 현직 검사 "쿠팡 사건 외압 있었다...검찰 잘못"
- 윤석열 정부 권익위, 2년간 공익신고자 딱 '2명' 보호
- 한국일보, 특검 파견검사 '집단 반발'에 "공직기강 문란"
- 검찰·언론의 '이프로스' 눈덩이 굴리기
- 조선일보 "검찰, 이화영 술 회유 사실이라면 '이재명 보고' 신빙성 떨어져"
- "'쌈짓돈' 검찰 특활비 전액 삭감하라" 국민청원
- '윤석열 명예훼손 수사 쇼핑' 검찰 예규 공개 판결 확정
- 조선일보 통해 특검, 검찰개혁 깎아내리기 바쁜 검사들
- '진짜 대한민국호'의 출범과 선결 개혁 과제
- 김학의 형사보상 1억…"검찰개혁 필요성 보여줘"
- 검찰, 수사 3년 끌다 대선 전 문재인 기소 "제 무덤 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