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명승환 칼럼] 지난해 전국의 국가행정망이 마비되면서 주민등록, 여권 발급 등 기본 서비스가 중단된 일이 있었다. 북한발 해킹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최근에는 대기업(SK)의 보안 사고로 수천만 건의 개인정보가 외부에 유출됐다.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도 예외가 아니다. 충주 수해는 홍수 예측 데이터가 있었음에도 현장 대응이 늦어 피해를 키웠고, 이태원 참사에서는 수십 건의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경찰·소방·지자체 간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쳤다.
사건의 원인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다. 실시간 정보 공유의 부재, 현장 대응의 지연,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그럼에도 정부가 내놓은 소버린 AI(국가 주권형 AI) 전략은 GPU와 데이터 같은 국가 자산을 특정 기업에 집중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국가 주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간 독점’으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
AI와 GPU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자산이 소수 기업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국가는 주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추진체계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 대통령,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9/314481_224946_141.jpg)
첫째, 범정부 통합 컨트롤타워의 구축이다.
과거 우리가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범정부적 추진체계 덕분이었다.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가 모든 부처를 묶어 데이터를 공유하고, 국민 중심 서비스로 전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대통령 직속 국가 AI 전략위원회를 두되, 그 산하에 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를 설치해 전략과 집행을 분리하고, 강력한 조정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부처 간 데이터 공유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GPU와 데이터 같은 자산은 공공 인프라 위원회가 관리해 대기업·스타트업·지자체가 공동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실행도 어렵지 않다. 이미 클라우드 전환, 사이버안보 컨트롤타워, 디지털정부 특별법 추진 같은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 이 기반 위에 실시간 운영 기준—예를 들어 ‘탐지 5분, 대응 30분, 개선 30일’—을 제도화하면 현장의 즉응성이 살아난다.
둘째, 국민 총동원형 참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규모를 앞세운다. 한국이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소수 기업이 아니라 5천만 국민의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 직장 예비군처럼 AI 재교육 예비군과 사이버보안 예비군을 운영해야 한다. 학생·직장인·퇴직자 모두가 정기적으로 AI 활용과 보안 대응 훈련을 받고, 그 결과를 국가 자격제도·공공 채용·승진 평가와 연계하면 국민 누구나 참여할 동기가 생긴다.
또한 국민이 직접 AI 행정서비스의 품질을 평가하는 시민 검증단, 공공·개인 데이터 활용의 이익을 환원하는 데이터 배당제를 도입하면, 국민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동반자가 된다.
셋째, 국제 개방과 협력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AI 산업 규모를 1조 위안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AI 안전 행정명령을 통해 국제 규범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이들과 맞서려면 폐쇄적 국산주의로는 불가능하다.
국산 모델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럽의 AI 규제 기구,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고 국제 표준과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규범 형성에 참여할 수 있다.

국민 역량이 곧 주권, 추진체계가 곧 경쟁력이다
재난과 사고는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못했는가, 왜 현장에서 바로 처리하지 못했는가”. 답은 분명하다. 강력한 추진체계와 국민 참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AI 전략은 범정부 통합 컨트롤타워, 국민 총동원형 참여제도, 국제 개방과 협력이라는 세 가지 원칙 위에서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과거 전자정부 세계 1위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AI와 GPU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의 역량이 세계 최고가 될 때,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추진체계가 작동할 때,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에 뒤지지 않는 AI 강국으로 설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국가 AI 전략을 재설계할 마지막 기회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피지컬 AI 산업, 투자시장 패턴 전환이 필요하다
- AI 시대의 자본주의 정신, 그리고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하여
- 전북 '피지컬 AI', 1조원의 기회 살릴 수 있을까
- 전북의 피지컬AI, 지방에서 시작하는 기술주권의 반격
- 진정한 의미의 소버린 AI시대란
- 챗-GPT? 우리가 잘할 수 있는 AI 모델 개발하자
- "국가AI전략위 산업계 일색…이재명 정부는 'AI 민주정부' 표방"
- AI 공습 앞에 무방비, 지금 필요한 건 '사이버 전담부처'다
- AI 공유재와 전사적 대한민국호의 항해 선언
- 한국 AI, AGI의 꿈과 피지컬 AI의 현실 전략
- 경제 인프라, 이제는 ‘도로’가 아닌 ‘AI·바이오’다
- '예측'하지 못한 정부, 국부를 잃는다
- 이 대통령 "AI시대 열 내년, 새로운 100년 준비하는 출발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