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상원 교수 기고] 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와 통합’을 인사, 정책 등 국정 전반의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밝혔다.

실용주의는 정책과 국정 운영의 기준을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실질적 발전에 두는 국정 기조다. 진영 논리나 특정 이념을 넘어 실질적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국정 철학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정책을 우선해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하고 있어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클 것으로 짐작한다.

진보주의 교육과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 철학을 이끈 핵심 인물인 사상가 존 듀이(John Dewey)는 ‘생각’, ‘개념’, ‘이론’ 등은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에 쓰이는 ‘도구’이며 “지식은 경험과 실천의 산물(Knowledge, in its proper sense, is the outcome of experience and practice)”이라고 강조했다. 참으로 그렇다!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론과 실제 경험에서 동떨어진 지식은 유용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 실천 효과도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미디어 분야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국가전략산업화’, ‘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한 콘트롤 타워 기능 강화’, ‘국내 미디어·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위한 통상·외교적 지원 강화’, ‘분산되어 있는 방송영상미디어 관련 거버넌스 및 법제의 통합 개선’, ‘방송미디어 규제의 형평성 및 규제체계의 선진화’ 등 ‘글로벌 미디어 강국 토대'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실질적 발전을 우선시하는 새 정부의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디어 분야 대선 공약으로 ▲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한 콘트롤 타워 기능 강화 ▲분산되어 있는 방송영상미디어 관련 거버넌스 및 법제 통합 개선 등 미디어 정부조직 개혁과 관련된 내용이 최소 2개 이상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21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21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갈무리

미디어 정부조직 개혁, 왜 지금인가 

미디어 전문가들은 지금 미디어 정부조직 혁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최근 방송미디어 한류 콘텐츠가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에 포함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성공, 화려함과 달리 많은 전문가는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이 위기 국면에 도달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GDP 대비 방송사업 매출 비율은 2015년 0.89%에서 2024년 0.74%로 감소했고, 2021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에 있다. 특히 GDP 대비 방송광고 매출은 2019년에서 5년 사이 1%나 감소했다.

이러한 방송미디어 시장 변화는 한편으로는 디지털 전환(DX) 확산과 함께 OTT 시장이 성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OTT 성장의 과실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사업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측면과도 관련된다.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은 최근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2022년 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리스크, 미국의 보호무역주의(트럼프 관세 부과), 달러화 강세, 전쟁 위기 등 복합적인 글로벌 경제 리스크가 상승작용을 하면서 국내 미디어 산업에 상당히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잠재력은 여전하다. 한국은행이 2021년 제시한 콘텐츠 산업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84로, 반도체(0.67)와 자동차(0.49)보다 높다. 국내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수출성장률은 타 산업을 크게 앞서고 있으며,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수출 승수 효과는 약 1.8에 달한다. ‘한류’라는 용어 자체의 기원도 방송미디어 드라마, 음악이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DX 확산과 함께 미디어콘텐츠 분야는 이종기술과 이종산업의 성장과 확장에도 향후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즉, 미디어콘텐츠 산업 분야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전략산업’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며 이를 위한 체계적인 접근과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적 상황과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는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번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 기회를 실제 방송미디어 분야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왜 그럴까?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탄생 이후 지난 12년 이상 지속된 미디어 정부조직 거버넌스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동안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OTT의 등장과 성장은 분산된 정부조직 거버넌스의 한계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방송미디어 시장의 주요 부문으로 등장한 OTT는 콘텐츠와 플랫폼이 통합, 관리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플랫폼 영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콘텐츠 영역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나누어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제 이슈까지 포함하면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4개 부처가 관련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조직적 측면에서 더 심각하게 만든 것은 대통령실 내 미디어 산업 분야 관련 수석비서관실이 문재인 정부 이후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실 내 수석비서관실 폐지는 국정 최고 책임자가 빠른 속도로 미디어 산업 및 정책에 관한 보고를 받기 어려운 구조와 연결되었고, 국정 최고 책임자와 신속하게 소통하고 정책을 조정 및 통제하는 기능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3개 부처로 나뉜 파편화된 기능 문제에 더해 조정과 통제의 ‘구심점’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기존 위원회 조직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적 후견주의와 최근의 1인 체제 등 운영의 황폐화는 대부분의 미디어 전문가가 지적하는 사항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의 문제점은 많은 국민들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 정부조직 개혁을 통해 미디어가 ‘공론장’으로 기능하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대한민국이 미디어 산업을 통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국가전략 산업화’를 위한 정책환경의 토대도 만들어져야 할 시점이다.

미디어 정부조직 개혁을 위한 몇 가지 질문

그렇다면 지금 국정기획위원회는 바람직한 미디어 정부조직을 위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할까? 현재 논의되고 있는 3개 이상의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최소한 다음 몇 가지 질문은 대안 평가 기준으로 포함될 필요가 있다.

첫째, 실용주의를 포함한 새 정부 국정 최고책임자의 국정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안인가? 정부조직 개혁이 국정 최고 책임자가 국민에게 앞으로 펼쳐 보일 미래 청사진의 상징적 토대라는 의미가 있다면, 실용주의 관점에서 어떤 미디어 정책에 방점을 두어야 하며,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은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고 어떻게 정책 효과성을 가져올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둘째,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 대안은 제안된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를 실현하며, 정책 효과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 대안인가? 이 부분은 개편된 정부조직이 실제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연결될 수 있는 조직적 측면에서의 대안인지에 대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제안된 정부조직 개편 대안은 앞서 언급한 여러 조직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가? 즉, 새로운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이 기능상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미디어 정책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도 정치적 후견주의를 최대한 방지하며 민주주의와 효율성을 함께 제고할 수 있는 정부조직 개편인가와 관련된 질문이다.

16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열린 미디어혁신범국민협의체(가칭) 추진을 위한 의견수렴 간담회에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초청인사들이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6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열린 미디어혁신범국민협의체(가칭) 추진을 위한 의견수렴 간담회에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초청인사들이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진정으로 민주적인 정부는 역시 효율적이다 

미디어 정책 분야의 대표 학자 중 한 사람인 필립 나폴리(Philip M. Napoli)는 그의 저서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 정책이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공공 이익과 같은 정치적 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고 주창했다. 참으로 그렇다! 그래서 공공·산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이 균형이 한쪽으로만 치우칠 때 미디어 정책은 실패에 직면한다.

이재명 정부는 실질적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국정 철학에 기반한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현재 미디어 분야가 직면한 공공성의 위기와 함께 산업의 문제도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숙고해 보면 이러한 이중적 성격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정부조직은 공적 영역 문제에 더 집중하고, 다른 하나의 조직은 산업중심적 영역 문제에 집중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물론 하나의 위원회 조직이나 하나의 독임제 정부조직이 모든 권한과 기능을 가지는 통합적인 조직에 대한 해외 정책사례들도 있지만, 우리는 여러 번 정권 및 정부 교체를 경험하면서 이미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칙(經驗則)’으로 미디어 관련 위원회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의 영향으로 실제 제도적 운영면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또 독임제 부처가 미디어의 공적 영역을 다루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용주의 사상가 존 듀이가 “지식은 경험과 실천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듯이, 우리는 정책 영역에서의 실제 상황과 정책사례라는 ‘경험’을 통해 거버넌스 정책을 위한 기반 지식과 교훈을 분명히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실용주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는 통합적인 하나의 위원회가 방송미디어 분야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 개혁보다는 그동안의 내부 조직적 문제를 최소화한 하나의 독립된 위원회 조직이 공공성과 관련된 기능을 맡으면서 ‘사회문화적 정책목표’를 중심적으로 추구하고, 다른 하나의 독임제 부처가 산업이 처한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 성장과 전략을 위한 ‘경제적 정책목표’에 더 집중하는 대안을 선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조정, 통제와 구심점 역할을 위해 대통령실에 방송·통신 및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수석실을 두어 그동안 적체된 정책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독립된 위원회 조직, 하나의 독임제 조직, 대통령실 내 조정 및 통제 기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재명 정부는 ‘미디어 국가전략 산업화’ 등 대선 공약을 실현하는 동시에 미디어 공공성 등 다양한 현실적 정책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하여 국정기획위원회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미디어 정부조직 개혁 대안의 방향을 명확히 결정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이와 같은 대안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결정되면 세부적인 사항은 각 부처의 다양한 의견과 문제점을 고려하면서 조정하면 될 것으로 판단한다. 행정학에 정통한 학자였던 드와이트 왈도(Dwight Waldo)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남겼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정부는 역시 효율적이다.

진정으로 효율적인 정부는 역시 민주적이다.

새 정부의 실용주의적 판단이 미디어 정부조직 개혁을 통해 정부조직 측면에서의 민주성과 효율성 제고와 동시에 연결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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