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로 규정했다.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은 국민의힘을 '극우'로 가두고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한 대선 전략으로 풀이된다. 진보 세력을 대변할 정당이 쪼그라든 현 정치 지형에서 이재명 대표가 마음 놓고 우클릭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정책 우클릭을 합리화하기 위해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당의 전통을 저버렸다는 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은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되지 않고, 정책의 일관성과 정치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19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민주당이 가야할 길은 실용"이라며 "우리가 보수 정당이 되겠다는 게 아니다. 오른쪽이 비어있는 상황에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역할도 우리 몫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보수라 불러주지만 실제로는 범죄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정책 우클릭 논란에 대해 "유연하다고 봐주면 좋겠다"며 "상황이 바뀌었는데 입장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교조주의나 바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은 지난 18일 유튜브 채널 <새날> 출연에서 시작됐다. 이재명 대표는 반도체 특별법에 주52시간제 적용 제외 조항을 검토했던 일에 대해 "제가 우클릭을 한다는데 우클릭 안 했다. 우린 사실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이라며 "원래 우리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야당 발목 잡는 게 일인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20일 한국일보는 기사 <"몰역사적" "보수참칭"... '중도 보수' 깃발 든 이재명에 진보도, 보수도 뿔났다>에서 비이재명계, 국민의힘, 진보진영의 이재명 대표 비판 목소리를 전하며 "정치권에선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이 대표의 '좌우 정벌' 과욕이 정체성 논란으로 번지며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은 한국일보에 "지난 대선에서 0.7%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원인은 확장력과 결집력 부재였다"며 "좌우 양쪽을 다 공략하는 이 대표의 최근 행보는 그런 성찰의 일환 아니겠느냐"고 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 기사 <심상정·조국 없다…이재명이 '중도보수론' 꺼낸 진짜 이유>에서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지난 대선처럼 2.37%를 득표한 정의당이 이번에도 존재했다면 양대 노총에서 반발할 정책은 절대 꺼내지 못한다. 노동계 표가 정의당에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금은 왼쪽이 비어있으니 과거보다 큰 폭으로 중도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에 "결국 대선은 '진보 대 보수'의 일대일 구도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심상정도 조국도 없지 않으냐"며 "진보 쪽에서 이탈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이 대표가 마음 놓고 '합리적 보수'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기사<‘중도보수’ 승부수 던진 이재명…‘오락가락 정치’ 역풍 부를라>에서 "중산층, 주식 투자자, 한강벨트(광진·성동·용산·동작·영등포·마포 등 서울 내 집값 상승 지역)의 이재명 비토 정서를 완화시키려는 의도가 크다"는 서울 지역 민주당 의원 발언을 전했다. 한겨레는 이재명 대표에게 성남시장 시절부터 축적되어 온 '좌파 포퓰리스트' 이미지를 지워내기 위한 목적도 강하다고 분석했다. '무상 시리즈' 정책과 기본소득 공약 등으로 보수진영의 '사회주의자' '좌파' 공격 프레임을 걷어내는 것이 이번 대선의 최대 숙제라고 판단해 정체성 이슈를 띄웠다는 분석이다.
한겨레는 "하지만 이 대표의 '담대한 우경화' 전략이 중원 확보를 통한 안정적 당선을 보증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한 정치학자는 한겨레에 "유권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가치의 일관성"이라며 "자칫 믿을 수 없이 오락가락하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줄 경우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중도층은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대표가 잘못된 전략을 택한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는 "정책과 이념이 아니라, 이 대표의 거칠고 일관성 없는 듯한 언행에서 비롯된 '비호감' 정서를 걷어내는 게 우선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진보 언론 사설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공론화 과정도 없이 당의 정체성과 가치를 오락가락 행보로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20일 경향신문은 사설 <“민주당은 중도보수”라는 이재명, 정책 우회전 예고인가>에서 "민주당 역사에서 정체성 논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중도보수 정당’ ‘중도개혁 정당’ 같은 말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 당 강령 전문은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계승하고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로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 대표의 우클릭에 우려가 나온 것은 당의 기조인 '사회경제적 양극화·불평등 극복'을 위한 노동존중사회, 조세정의에 부합하냐는 문제제기였다"며 "그런데 이 대표가 당 정체성에 대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민주당을 중도보수 정당으로 규정한 것은 느닷없고, 적절치도 않다. 이 대표가 말하는 중도보수의 정체성이 뭔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현재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야권에서의 민주당 위상과 역할을 감안하면 진보적 지향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며 "이 대표는 굳이 진보세력과 민주당을 분리하는 정체성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정책이 민주당의 가치 지향과 배치돼선 안 된다는 당 안팎의 지적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이재명 “민주당 중도보수”, 혼자서 불쑥 선언할 일인가>에서 "임기가 정해진 당대표가 어떠한 토론이나 논의도 없이 당의 정체성을 임의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민주화 이후 국민의힘 계열과 민주당 계열로 사실상 양당제로 유지돼온 한국에서 민주당은 진보 쪽으로 폭을 넓혀왔다. 이런 전통을 이재명 대표가 하루아침에 흩뜨릴 수 있나"라고 했다.
한겨레는 "이 사인이 '우클릭 행보' 방어 차원으로, 이렇게 가볍게 다뤄져도 되는 건가"라며 "민주당 강령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한 기회를 갖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당명이 바뀌고 정치인은 바뀌어도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민주당의 계층 정체성은 바뀐 적이 없다"고 짚었다.
한겨레는 "현 정치 지형상 진보 정당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라며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또 국민의힘의 '극우 행보'와 맞물려 우리 사회의 우경화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며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해 민주당의 오랜 정체성을 내던지는 과오를 범해선 안 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에 대해 생뚱맞고 헷갈린다며 중요한 것은 "신뢰의 문제"라고 했다. 20일 동아일보는 사설 <李 “민주당, 진보 아닌 중도보수”… 정책과 입법으로 증명해야>에서 "이 대표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두고 중도를 넘어 보수까지 거론한 것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중도개혁정당’을 표방했지만 대체로 민주당은 진보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이 대표도 '진보개혁 진영의 맏형' '진보적 대중정당'을 내세워 왔는데, 어느 사이 '진보'는 부정해야 할 단어가 된 것인가"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념과 진영을 탈피하겠다던 이 대표의 그간 행보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도체 분야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해 '왜 안 되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며 수용 가능성을 시사하더니 국회 입법 과정에선 돌아섰다"며 "한때 재검토할 수 있다던 '기본사회' 논의도, 고집하지 않겠다던 민생회복지원금도 다시 꺼내 들었다. 최근엔 상속세 완화 주장을 들고나왔지만 논의의 핵심인 최고세율 인하는 외면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 대표는 '세상이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 게 바보다'라고 하더니 '나는 원래 제자리에 있었다'고도 한다. 정책 방향도, 이념 지향도 헷갈린다"며 "사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는 상대적인 것이고 누가 선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한다는데 그것을 믿을 수 있는지 신뢰의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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