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52시간 노동' 허물기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주4일 근무 국가'를 내세웠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일주일 새 2번 바뀐 셈이다.
언론에서 진보·중도·보수 등 성향을 불문하고 노동시간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입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권, 가계 소득, 기업 경쟁력 등이 걸려 있어 사회적 대타협이 필수적인 노동시간 제도를 이재명 대표가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4.5일제'를 거쳐 '주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며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갔다.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 착취로는 치열한 국가경쟁에서 생존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AI와 첨단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첨단과학기술 시대에 장시간의 억지 노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유연화를 하더라도 총노동시간을 늘리자는 소리를 누가 하겠나. 삼성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냐"고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는 이재명 대표 연설이 끝난 뒤 의원들에게 '교섭단체 대표연설 Q&A' 자료를 배포했다. 민주당은 해당 자료에서 "노동 총량은 유지하되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영을 모색하자는 것은 기업 측 제안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조차 52시간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후퇴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존재하며, 이런 상호 간 불신을 불식시키고 미래지향적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일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 제외 어떻게?'라는 정책 디베이트(토론회)를 주재하면서 "특정 산업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라고 말했다. 반도체특별법은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이 발의했으며 연구·개발 노동자의 주52시간 노동 상한제 제외가 핵심이다. 애초 민주당은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신년 들어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대표가 '얘기를 들어보자'고 말하자 토론회를 열렸다. 이재명 대표의 주장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훼손하고, 민생·혁신과도 관계없다는 지적이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이어졌다.

11일 한겨레는 사설 <‘잘사니즘’ 이재명 대표, 오락가락 우클릭 우려 새겨야>에서 "이념에 매이지 않고 실제 국민의 삶을 개선할 실용적 정책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대표가 이날 밝혔듯 성장과 분배, 기업 발전과 노동권 보호는 양자택일 관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기업 요구대로 52시간 예외를 허용할 듯하던 태도에서 물러나, ‘사회적 대화로 풀자’며 양쪽으로 여지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도 "문제는 ‘성장’을 급하게 내세우다가 다시 ‘노동권’을 강조하다 보니 전격적으로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불안감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이재명 제안한 ‘헌정수호연대’, 연합정치 큰 길 찾아야>에서 "이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회복과 성장을 강조하며 ‘공정성장’ ‘사회적 대타협’을 화두로 꺼냈다"며 "그러나 이재명표 실용정치는 과제도 산적하다. '반도체 52시간 예외' 논란에서 보듯, 장시간 노동을 벗어나겠다는 국가적 방향·원칙을 지키며 노사 접점을 만드는 리더십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주 52시간 예외 한다던 이재명, 주 4일은 또 뭔가>에서 "열흘 전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힌 게 당내외에서 논란을 빚었는데 이번에 ‘주 40시간제’ 도입을 화두로 던진 것도 느닷없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근로시간 제도는 국가 경제는 물론 가계와 기업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고, 가계 소득뿐만 아니라 노동자 건강권 문제까지 걸려있다"며 "2018년 법정노동시간을 주62시간 군무에서 주52시간으로 줄이는 타협이 이루어지기까지 기업과 정부·시민사회가 치열한 논쟁을 벌인 까닭"이라고 짚었다.
한국일보는 "차분히 논의해도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은 문제인데 이 대표가 근로시간 제도를 다루는 방식은 지나치게 가볍고 진폭도 크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정부 '주69시간 근무제' 추진에 제동을 걸고, 조기대선이 가시화하자 '몰아서 일하기'를 주장했다가 다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말을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차기 대선용 급조 정책이니, 말의 성찬이니 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사실과 논리에서 더 치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관성 부재는 국가 지도자의 자질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결단을 요구했던 보수언론은 비판 논조로 돌아섰다. 조선일보는 사설 <다시 자기 말 뒤집은 이 대표, 이게 이 대표식 일관성인가>에서 "당내 강경파와 민주노총이 반발하자 애매한 표현을 쓰며 사실상 후퇴했다"며 "성장을 24번이나 강조하면서도 ‘노동시간 단축’ ‘주 4일제’를 주장했다. 이를 모두가 잘 사는 ‘잘사니즘’이라고 포장했지만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노선일 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국민은 혼란스럽다. 이 대표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그때그때 말을 바꾸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이 호소해도 중대재해법 등 친노동·반기업 정책은 계속됐다. 말로만 성장·실용이고 실제는 이념과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李 ‘먹사니즘’ 이어 ‘잘사니즘’… 헷갈리는 우클릭 비전>에서 "문제는 ‘이재명식 실용주의’가 일관성이 부족하고 내용마저 모호하다는 데 있다"며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유연화도 하겠다는 건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이 대표는 중도층을 겨냥해 성장과 친기업의 우클릭 메시지를 냈다가 지지층이 반발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메시지를 거둬들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반도체특별법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먹사니즘’이든 ‘잘사니즘’이든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사설 <성장 내세우면서 기본사회·주 4일제 … 이재명의 이율배반>에서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더라도 총 노동시간 연장 수단이 되면 안 된다'는 대목은 주52시간 예외에 부정적 입장으로 들린다"며 "이렇게 해선 첨단산업 육성은 '연목구어'"라고 주장했다.
지난 3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발표한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에서 연구·개발 직군 90%(응답자 904명 중 814명)는 '주52시간' 적용 제외 방안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6.2%에 불과했다. 응답자 88.2%는 '주52시간' 적용 제외가 연구·개발 직군 업무 효율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3년 연속 상위고과를 받았지만 월 초과 근무시간은 평균 5시간을 거의 넘지 않았다", "52시간 초과근무를 통해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 "52시간 적용 제외 시 고과를 받기 위해 시간만 채우는 인력이 늘어날 것" 등의 서술형 응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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