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노동계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판단인지 윤석열 정권은 연일 각종 개혁을 언급하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금까지의 웃기지도 않는 논란을 넘어 한국 사회가 겪는 이념적 정책적 갈등은 이제야 비로소 본게임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집 나간 보수 유권자층 일부가 복귀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 층 상당수는 집권 이후 논란으로 지지 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전 정권 탓, 비속어 논란과 MBC와의 갈등, 배우자와 측근들에 관한 인사 태도 등은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을 ‘지도자답지 않은 것’으로 비춰지게 했다. 보수 유권자층 일부가 철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이나 연금·교육·노동개혁에 대한 이슈화 등은 찬반논란은 있을지 몰라도 ‘지도자다운’ 어젠다 설정으로 비춰진다. 특히 보수 유권자층이라면 환호할만한 주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유승민부터 황교안까지 보수 스펙트럼 거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거다.

보수 유권자층이 대개 동조하는 의제 중 하나는 '전 정권' 문제이다. 감사원이 앞장서 거의 모든 분야를 들쑤시는 이유도 이것이다. 지난주부터는 ‘통계 조작’ 의혹을 다루겠다고 하고 있는데 실체적 진실에 비추자면 무리가 있는 행보이다. 2018년 이전부터 가계동향조사의 실효성 문제는 이미 지적된 바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이 점은 책임질 사람 책임 지우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과연 그걸 ‘통계 조작’이나 ‘국정 농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감사원이 국토부와 부동산 통계를 둘러싼 의혹을 들여보겠다는 것은 ‘통계 조작’이 ‘부동산 폭등 방치’로 이어졌다는 식의 ‘양념’을 더하는 효과로 이어질 걸로 보인다.

전 정권 청산 구도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 상황이 계속 업데이트 되는 상황에서 ‘개혁 드라이브’까지 먹힌다고 판단하면 이제 윤석열 정권은 중도 공략으로 확장을 기도할 것이다. 최근 정부의 디지털콘텐츠계약법 제정 추진 소식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름이 덧붙여 나오는 것을 보라.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준석 없는 중도-MZ 공략’에 시동을 거는 거다.

여기서 걸리는 문제는 총선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중도 확장은 필요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여당 장악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딜레마이다. 어찌되었건 소위 말하는 당내 중도-온건파들(일단은 그렇게 지칭하기로 하자)은 이준석 전 대표의 축출 국면에서 용산에 등을 돌렸다. 이들을 포용하는 것은 대통령의 방침이 아닌데, 정권의 중도 확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당권경쟁의 구도에서는 ‘친윤그룹’에 불리한 요인이 된다. 집 나간 보수유권자층이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다시 복귀하면서 여론조사상 유승민 전 의원 등의 지지층 내 지지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상하고 벌인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존의 ‘7대 3 방식’으로도 당선이 쉽지 않은 유승민 전 의원 등을 견제하기 위해 ‘당원 투표 100%’로 지도부 선출 방식을 바꾸는 일은 결국 이런 어려움을 사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과정을 종합해보면 내년 한 해는 국민의힘 내의 전당대회-공천 잡음을 감수하면서 전 정권 사정과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 개혁 드라이브로 중도 지지층 유실을 막고 버티는 걸로 대통령의 여당 장악이 사실상 완성되는 기간이 될 걸로 보인다. 이 과정에 대통령의 ‘지도자답지 않은’ 비호감 요인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대통령 부부의 비호감 어젠다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는 지금 상태의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1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연합뉴스)
1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뭘 해야 할까? 정공법뿐이다. 상대가 드디어 중원으로 나왔다면 마찬가지로 중원에서 붙어야 한다. 검찰을 활용한 정치보복이라는 식의 이슈파이팅을 앞세우는 건 지지층 결집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은 윤석열 정권의 대응의 정당화해주는 퍼즐의 한 조각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과 철학과 비전을 두고 제대로 싸울 때 더 강하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온갖 개혁을 말하지만 과연 거기에 어떤 수미일관한 철학의 구현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허울뿐이라는 느낌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출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전 정권을 떠올리게 만드는 몇 가지 이미지를 기득권으로 상정하고 이를 들이받는 모습의 연출에 ‘개혁’ 담론을 활용하는 수준이다.

예산안 협의와 관련된 문제도 그렇다. 정권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고집할 이유는 냉정하게 말해 없다. 낙수효과는 증명된 바 없고, 특별히 한국이 기업에 더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 볼 근거도 없으며, 기업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만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판단한다고 볼 수도 없다. 법인세율 인하가 세계적 흐름인 것도 아니다. 영국은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다 총리가 바뀌었고 미국, 일본은 어떤 방식으로든 오히려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오히려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고 적어도 인플레이션 대응용의 긴축은 불필요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보수정치 역시 중부담-중복지를 말할 정도였다. 윤석열 정권의 부실한 미래 비전과 비교해 더불어민주당이 갖는 강점이 뭔지를 이런 차원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을 업데이트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초부자감세에 서민감세로 맞서는 등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감세 경쟁을 한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런 방식의 예산안 협상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 아닌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해서 모든 세목에 대한 증세를 반드시 주장할 필요는 없겠으나, 적어도 정부여당과 야당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근로소득 면세 구간을 늘리고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과연 더불어민주당에 미래 비전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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