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조선일보의 무서운 사설 제목을 보라. <‘진박’ 운운하다 망한 당에서 재발된 꼴불견 내분>. 내용은 더 섬뜩하다. 사설은 이런 문장들로 끝난다.

“찐박, 대박, 범박, 변박, 쪽박, 탈박 등 각종 파생어가 난무했던 2016년 진박 논란에 국민은 피로감을 넘어 혐오감을 느꼈다. 그 결과가 단순히 총선 참패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조선일보 입장에선 이 정도면 ‘풀스윙’한 거다. 조선일보마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자명하다. 지금 여당 주류가 주도하는 ‘나경원 왕따’는 누구의 눈으로 봐도 합리적인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적 측면에서 대립한 바 없고 노선이나 정책으로 봐도 ‘보수본색’이라 코드가 안 맞을 일도 없다. 오히려 공사 양면에서 가까울 수 있는 사이다.

국민의힘 당원 입장에서 보면 탄핵 등 어려운 시기에도 당을 떠나지 않았고 선거법 개정 등 고립 국면에서도 의원들을 이끄느라 고생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총대’ 메고 나간 선거에서 패배를 감수한 일도 적지 않은데,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바람’에 밀려 아깝게 당권을 놓쳤다.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고심중인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를 마치고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고심중인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를 마치고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바로 이런 조건이 김기현 의원을 당 대표로 만드는 데에 있어선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난리의 핵심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전 대표와는 다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경우, 김기현 의원 입장에선 왜 나경원이 아니라 김기현을 밀어야 하는지 당원들에게 당위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없는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려는 것이다.

선거 구도를 놓고 보면 이런 사정이 더 명확해진다. 김기현 의원과 ‘친윤’들은 유승민 전 의원 출마는 어렵거나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이준석 전 대표가 주도해 입당시킨 젊은 당원 표심이 변수라지만 이들이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에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같지 않다. 때문에 별다른 계기가 없다면 이들의 상당수는 투표를 사실상 포기할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출마하지 않으면 전당대회는 사실상 김기현 대 안철수 구도로 치뤄질 것인데, 윤심을 등에 업고 조직을 최대로 가동하면 결선투표 투표도 가지 않는 형태로 김기현 의원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나경원 전 의원이 출마하면 김기현 의원에 유리한 구도는 완전히 허물어진다. 3파전과 결선투표는 불가피다. 만일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상황이 되면 승패를 논할 것도 없이 ‘윤핵관’들은 정계은퇴를 해야 할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과 김기현 의원이 붙는 경우 인지도에서 앞서고 비윤 표심 일부 움직임의 수혜를 받을 나경원 전 의원이 현재로서는 조금 더 유리할 것이다. 즉, 김기현 의원과 ‘친윤’의 입장에서 보면 나경원 전 의원 출마는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볼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김장연대’에 힘을 싣는 정황이 뚜렷하다. 나경원 전 의원이 언급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포퓰리즘’으로 못박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하는 방식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을 직접 견제해 ‘김장연대’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제 ‘윤심’의 향방은 기정사실이 됐다. 여의도 호사가들은 김기현 대표 체제의 장제원 사무총장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윤심공천’을 할 수단을 마련할 거라고들 전망한다. 장제원 의원을 고리로 모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을 분리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연일 계속하면서 ‘윤핵관’은 윤석열 정권의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격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원들 중에도 ‘윤핵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계층이 꽤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기현 의원은 울산, 장제원 의원은 부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어 TK를 중심으로 한 핵심 당원층과는 거리감이 있다. 이런 여러 조건들이 과연 어떻게 작용할 것이냐, 여의도 호사가들 입장에선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국민 일반이 보기엔 지치는 얘기일 뿐이다.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의원이 대표가 되든 나경원 대표가 탄생하든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어서다. 정치인들의 일자리만 늘었다 줄었다 하는 거다. 총선이 있는 2024년이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3년차다. 임기 절반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시험으로 치면 총선은 중간고사다. 그때까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전 정권 탓, 거대야당 탓을 하며 힘을 몰아달라는 게 주된 선거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도 대통령과 여당이 모범적인, 좋은 정치를 할 의지가 있어 보여야 먹힌다. 어떤 유권자가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세력에 힘을 몰아줄 필요를 느끼겠나. 오직 권력을 잡겠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들끼리 왕따시키고 아귀다툼 벌이는 이런 정치는 퇴출 대상이다. 조선일보 말이라도 좀 들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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