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국회의 이상민 행장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을 보면서 우리 정치가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되는지 새삼스러운 회의가 들었다. 이제 정국이 어디로 향할지는 뻔한 일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일 것이다.

애초에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직후 이상민 장관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했거나 이상민 장관 스스로 직을 내려놨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좀 더 일찍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를 했다면 중요한 시점에 정국이 경색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정조사에 대한 합의 직후 해임건의안 발의를 던지듯 하면서 예산안-국정조사-해임건의안이 하나로 묶여 버리는 정국이 조성됐다. 여기서 여야가 잘 절충하고 협의해 해임건의안을 표결하지 않는 경우의 수를 찾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거다. 그러나 여야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해임건의안 제출은 아무런 실효적 효력을 갖지 못하는 정치적 제스추어로 귀결되었다.

지금까지가 최악이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최악일 거라는 예단을 할 필요는 없다. 최악을 면하려면 우선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건의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상민 장관에 대한 미뤄둔(?) 인사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또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에 성실히 임해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으로서 예산안과 관련한 협상이 조속히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이러한 아름다운 결말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양당정치는 양당 내의 강경파들에 끌려가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능동적인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룬다. ‘윤핵관 중의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애초에 국정조사를 수용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주호영 원내대표를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민주당 내 강경파들은 애초에 해임건의안이 아니라 탄핵소추안을 냈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조건으로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까울 걸로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대통령이 해임건의안 불수용 의사를 밝히고 국민의힘은 국정조사를 보이콧하며 예산안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지지부진하는 끝에 민주당이 단독으로 수정안을 제출해 의결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국민의힘이 빠진 상태에서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보다는 성토대회 비슷하게 진행될 것이다. 정권과 여당은 야당들끼리 일방적으로 진행한 국정조사의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며 폄훼할 것이고 유가족 단체의 요구에 대해선 정파적 프레임을 씌우며 무시로 일관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권의 대응과 유사하게 흘러가는 거다. 권성동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괴상한 주장을 적는 것도 다 이런 결말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한 이런 구도가 정작 양당의 정치공학으로 보면 오히려 윈-윈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정치공학에 포커스를 맞춰 상황을 다시 재구성해보자. 양당이 예산안 처리와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은 각자의 정치력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기회가 됐다. 그런데 예산안 처리 이후 국정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한 합의는 민주당의 협상력을 저하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에서 ‘국정조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국회 다수당으로서 예산안 합의를 빨리 이뤄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야당인 민주당에게 있어서 이번에 예산안 관련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잖아도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개발 의혹 등 리스크 때문에 조직적 뿌리를 제대로 내리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층의 선택을 받은 배경에는 도덕적으론 불안할지 몰라도 유능하다는 평가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취임 100일이 되도록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평도 나오는 상황이 됐다. 이재명 대표로서는 예산안 협상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지역 조직에 나름의 실리를 안겨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 거다.

이런 조건 하에서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은 민주당의 협상력을 다시 복구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잖아도 대통령이 국정조사 합의를 달가워 하지 않는 판국에 국민의힘이 해임건의안을 핑계로 보이콧을 주장할 수 있는 국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당은 ‘이상민 장관을 지키고 국정조사를 파행시키기 위해 예산안도 버릴 수 있는 정부 여당’이라는 방식의 공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국정조사의 실효성’과 연계돼 있다는 예산안 협상의 성격은 중립화(neutralize)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국민의힘은 ‘대선 불복’과 ‘이재명 방탄’ 타령으로 일관하고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 반대’를 외치며 서로 대립하는 익숙하고도 쉬운 구도를 서로 반복하면 된다.

정부 여당 입장에선 민주당이 그들이 주장하는 ‘서민감세안’을 단독으로 제출해 처리하더라도 큰 걱정은 없다. 내년 초에 바로 추경안을 제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서로 손가락질 하는 지리한 예산안 협상의 줄다리기 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올해를 넘기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예산안 협상은 어떻게든 합의가 되는 방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결과로 우리 사회는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갈등을 모범적으로 해소할 기회를 잃게 된다.

앞서도 썼듯 이런 식의 정치공학은 양당에 단기적으로 윈-윈이다. 하지만 정치라는 무대에 끝은 없고 당장은 이득인 게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는 일도 허다하다. 결국은 다 평가를 받게 돼있다. 지금까지 서술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양당 모두에 치명적 손해로 돌아올 것이다. 특히 정권을 잡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은 총선에서의 성적표로 이 손해를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해임건의안 제출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선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지만, 해임건의안 자체에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먼저 매듭을 풀어야 한다. ‘정치인 윤석열’은 들이받고 역습하고 반격하는 게 장기이지만 그것만으로 국정운영이 되지는 않는다.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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