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한숙은 모두 알고 있다.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알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 비서가 수족이 되어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흥미롭고 중요하게 다가올 수도 있어 보인다.

무대 커튼을 사이에 두고 이설을 유혹하려는 준혁과 이를 거부하는 이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우연하게 엿듣게 된 재희의 모습은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난 다른 여자와 바람피울 테니 너는 그저 이해하라는 준혁의 오만함은 결국 재희의 분노를 표면화시키고 말았다.

재희는 준혁의 행동에 분개했고, 준혁은 어제 잘 설명했는데 그런 것 가지고 왜 그러냐는 입장이다. 그런 준혁에게 이혼하고 싶냐고 따져 묻는 재희의 발언은 강렬했다. 이 상황에서 재희가 정말 이혼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준혁의 삶은 무너진다. 대권에 대한 소망도 붕괴되고 성진그룹에서 입지도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물리적 손해만이 아니라 가식적으로 쌓아 올린 언론인으로서 입지도 사라진다.

준혁에게 재희와 이혼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행위다. 준혁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며,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재희로선 자신의 욕망만 제거될 뿐 손해 보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처럼 풍족하게 살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내던져서 준혁만큼 상처 입지는 않으니 말이다.

JTBC 수목드라마 <공작도시>

이설 역시 계산이 섰다고 볼 수 있다. 준혁이 재희와 이혼할 수는 없을 것이란 확신 말이다. 그저 자신을 하룻밤 유희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준혁에게 이혼할 수 있냐는 말은 절대 선을 넘을 수 없게 만드는 결과물이다.

이설이 손톱 경계의 살을 뜯어내며 준혁의 행동을 막은 것은 수많은 고뇌의 흔적이다. 술에 취해 준혁과 잠자리를 했고, 임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아이가 어딘가로 갔지만 그곳이 재희의 집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직 알지 못하는 이설은 과거 자신을 하룻밤 상대로만 봤던 준혁이 다시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접근하는 모습에 분노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재희가 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봐도 재희는 단호하게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부지런히 움직여 재희의 뒷모습을 봤지만 단호함에 이설은 멈춰 서야만 했다. 믿음이 큰 만큼 분노 역시 커질 수밖에 없음을 잘 아는 이설이다.

이설의 입에서 이혼을 언급하는 과정은 재희에게 배신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렇게 믿음을 줬는데 감히 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로 인식되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생각을 하다 다리가 따끔거려 멈춰 선 곳은 형산동 추모 행사장 앞이었다.

미술관에서 그곳까지 하염없이 걷다 뒤꿈치가 까진 것도 몰랐다. 마침 현장 스케치 중이던 준혁의 후배인 기자 동민이 발견하고 약까지 사와 임시방편을 할 수는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동민은 육감적인 재희의 몸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동민의 시선을 확인한 재희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웃는 얼굴로 정리한 재희는 남자들이란 동물이나 다름없다는 확신을 했을 것이다. 남편의 한심한 짓거리나 후배인 동민의 행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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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가 준혁에게 분노했던 것은 그의 바람이나 상대가 이설이기 때문은 아니다. 재희가 분노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자신을 여자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존재가치를 고민하게 한 준혁의 속마음은 재희를 경악스럽게 만들었다.

퇴근하던 길에 재희 차가 그대로 있음을 보고 이설은 전화를 하려다 자신을 부르는 남자와 마주했다. 정호는 노영주가 남긴 물건들을 건네며 재희는 그의 사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전했다. 그리고 재희가 알기 전에 떠나라 하지만 이설은 자신이 떠나기만 하면 윤 대표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냐 되묻는다.

이설 역시 재희가 상처를 입거나 피해당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설과 정호는 같은 편이 되어 이 상황과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필성은 준혁의 아이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자신의 손자인 줄 알았던 아이가 남의 아이란 생각에 준혁의 피붙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정필성의 행동은 아침 식사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준일에게 입양을 권하는 것은 자신이 찾은 준혁의 친아들을 준일의 아들로 삼아 성진그룹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이다.

집에 들어가지 않은 재희는 욕조에 몸을 눕히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의 외도에 분개해 사망한 권민선의 마지막이 떠오르며 공감하기도 했다. 물론 직접 실행에 옮길 정도는 아니지만 레드와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현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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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에도 맞지 않는 구두로 인해 뒷굽이 까졌던 재희, 당시에는 준혁이 직접 상처에 밴드를 붙여줬다. 그리고 나쁜 남자라고 이야기하는 준혁에 재희는 "온 세상이 모두 당신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이야기했다. 나빠도 상관없다는 분명한 욕심을 드러냈던 결혼식 당일이었다.

하자투성이란 사실을 알면서 선택한 존재가 바로 준혁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선택한 준혁의 행동에 분개하는 것은 역으로 그를 사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설에 대한 감정과 배신이 동시에 떠올라 벌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본가 조찬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은 재희로 인해 식사자리는 주연의 희희낙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숙에게는 게스트 섭외한다고 불참을 알렸고,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준혁은 그저 컨디션 난조라 언급했다. 가족들 앞에서 망신당한 준혁은 대선을 앞둔 논의 자리에서도 한숙에게 한 방 먹었다.

준혁 정도는 한숙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설프게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준혁의 이중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던 한숙은 정당 선택과 관련해 이견을 보이는 준혁을 몰아붙였다. 후보자는 언제든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한숙의 행동에 필성은 민 의원을 비롯한 성진그룹에 드나드는 핵심 인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아들 대선에 빨간불이 켜지지 않도록 노력 중이었다. 정필성에게 아들 준혁의 대선은 모든 것을 바꿀 최고의 카드다.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당연해 보였다.

하루가 지나고 재희는 이설과 마주했고,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내 남편만 아니었다면 무조건 이설의 편에 섰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남편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심정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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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은 준혁과 같은 무게로 평가를 언급했지만 재희의 선택은 준혁이었다. 욕망을 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준혁이 필요한 재희에게 이설을 위한 선택지는 많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이설에게 재희는 자신의 아들을 남몰래 입양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모험이다. 이설이 이를 알리는 순간 재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재희가 이설에게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이 끝났다는 의미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이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쓰임새가 많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재희 역시 자신이 증오하던 한숙과 닮아가고 있었다.

한숙이 현우 입양을 눈감아준 이유는 재희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이익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라 했다. 충분히 시아버지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희 입장에서는 누구도 반겨주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자기방어를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정필성이 양 사장을 통해 부지런히 준혁의 아들을 찾고 있음을 알고 있는 한숙은 그가 버리려 모아둔 손자 사진을 보며 웃었다. 한심한 자들의 행동에 대한 조롱이었다. 이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재희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을 고 비서가 확인했다.

준혁의 아이가 재희에게 입양되고, 그렇게 혼외자가 키워진 것이다. 정필성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준혁이 살고 있다는 것은 결국 한숙의 큰 그림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받을 충격까지 계산한 결과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한숙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일 뿐이다.

한숙의 책상에 올려진 준일의 어린 시절 사진. 서글퍼 보이는 준일에게 고 비서는 액자는 어머니가 손수 골라줬다고 한다. 모든 것을 고 비서에게 시키는 한숙이 아들 사진 담을 액자를 오랜 시간 고민해 골랐다는 것은 준일에 대한 사랑이 끔찍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고 비서에게 고마워 누나라고 말하는 준일은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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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재희가 마련한 홈파티였다. 준혁에게는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집에 이설과 동민을 초대했다. 전날에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재희가 만든 이 자리가 준혁은 불편했다. 하지만 그런 준혁의 발언은 이제 재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판을 깰 수도 없는 준혁은 그저 재희가 이끄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언행불일치의 표본인 준혁 동민의 행동과, 이설을 자기 사람으로 확신하고 과도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은 재희의 모습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무례해 보이는 행동들까지 이설은 받아들이고 있다. 이설에게 재희는 이미 특별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준혁과 관계에서 벌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재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와인 파티는 탐욕과 가식, 그리고 분노가 가득한 드라마 <공작도시>의 모든 것을 담은 풍자였다.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술자리는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동하는 자들의 민낯이 얼마나 추한지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갈수록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한숙은 이설을 제거하라 명령했다. 하지만 재희는 이설을 잃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충돌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재희에게 이설의 정체라며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 여부도 조만간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다시 바뀐 흐름을 보면 그 역시 한숙의 솜씨로 보이지만 말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파멸은 언제나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몫이다. 과연 한숙을 재희는 무너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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