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경제에 위기가 없던 적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저널리즘은 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호황은 있어도 저널리즘 호황이라는 말은 없다. 다른 영역이기 때문일 게다. 방금 전까지 저널리즘은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터널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널리즘 위기는 질문의 방식을 묻는다. 정해진 결론은 없다. 미디어스는 질문의 방식을 묻고 있다고 판단되는 언론에 대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의 방식은 다양하며 다양함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방송’은 언론계 지망생들의 필독서다. 미디어 전반에 대한 이슈를 한눈에 살필 수 있으며 저널리스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신뢰도 하락, 포털 문제 등에서도 심층적인 분석을 내 언론계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다. 정부 기관이 발행하는 잡지가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디어스는 최근까지 '신문과방송' 편집장을 지낸 최광범 언론재단 전문위원을 만나 '신문과방송'과 한국 언론의 방향성, 전망 등을 물었다. 최 위원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정부의 압박으로 '신문과방송'이 저널리즘 관련 문제를 폭넓게 다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최 위원은 한국 언론 신뢰도 하락과 관련해 “사주가 언론사를 돈 버는 기업으로 생각하는 순간 저널리즘 원칙이 무너진다”며 언론 스스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래는 최 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최광범 '신문과방송' 편집장

Q. 신문과 방송은 어떤 매체인가

신문과 방송은 1964년 ‘신문평론’에서 시작됐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군사 쿠데타 이후 언론에 직접적 압박을 가했다. 언론은 자유와 독립을 지키는 것이 절실해졌다. 또한 당시 저널리즘에 대한 기능과 가치가 아직 미완이었던 시기였다. 이에 송건호, 박권상, 천관우, 최석채 등 당대 이름을 날렸던 기자들이 신문연구소를 만들고 신문평론을 발행했다. 그러다 신군부 때 언론연구원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문화체육관광부로 편입됐다.

Q.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신문과방송' 필진이 다양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적 매체 기자들이 필진으로 자주 등장하고 저널리즘에 대한 기사도 늘었다

현 정부 들어서 정부는 물론 이사장도 편집에 관여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신문과 방송 편집진에게 자율권을 부여한다. 필진이 다양화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언론재단은 경영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이다. 정부 통제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신문과 방송이 저널리즘을 다루지 말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이런 기조가 이어졌다. 따옴표 저널리즘, 선정주의 등 미디어와 정치 현장이 접목되는 현상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못 하게 했다.

시작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유 전 장관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 기자에게 욕을 했다.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연말 ‘언론인이 뽑은 언론계 10대 뉴스’를 발표했는데 “유인촌 장관 국감장 발언 파문”이 7위에 올랐다. 이게 계기가 되어 통제가 가해졌다. 그때부터 저널리즘 이야기는 축소됐고 기술, 산업 중심으로 기사가 나갔다. 저널리즘관련 기사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심각하게 위축됐다. 현 정부에선 자유로운 제작이 가능해졌다.

신문과 방송 2008년 12월호 갈무리

Q. '신문과방송'은 현직 언론인뿐 아니라 언론 지망생도 읽는 잡지다.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대다수 잡지는 전문적이고 어렵지만, 신문과 방송은 쉬우면서 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문과방송'은 모든 미디어 영역을 다루고 있다. '신문과방송' 한 권으로 기술, 미디어 이슈, 저널리즘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다른 잡지들보다 쉬울 수밖에 없다. 아이템 기획에서 대중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읽힐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다. 필진들에게도 “쉽게 써달라”고 요구한다.

잡지 기획은 6명의 기획위원과 함께한다. 저널리즘, 미디어 기술 전문가 집단이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언론재단 각 부서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언론재단이 주관하는 언론인 연수, 미디어 리터러시, 국제 컨퍼런스 등 관련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사실상 언론재단 모든 구성원이 '신문과방송'에 참여한다. 일반적인 미디어전문지보다 아이템 선정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

Q. 자랑하고 싶은 기획은

‘버려야 할 관행,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기획연재를 하고 있다. 모든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기사다. ‘좋은저널리즘연구회’의 언론인 출신 학자들이 저널리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곧 연재 기사를 모아 책을 낼 건데, 한국판 ‘저널리즘의 기본원칙’(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이 저술한 저널리즘 명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 명저가 된 것은 현직 언론인과의 인터뷰가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버려야 할 관행, 지켜야 할 원칙’은 한국적 상황을 대입한 저널리즘 저서가 될 것이다.

Q. 필진이 고정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신규 필진 발굴 계획은 있는가

100% 동의한다. 개선해야 할 과제고, 앞으로 후배들이 잘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특정 아이템을 소화하고 쉽게 써주는 필진을 찾기 어렵다. 원고료가 많은 것도 아니다. 다양한 필진을 발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 2018년부터 올해 1월까지 '신문과방송' 편집장을 맡았다

언론재단에 입사한 지 33년이 됐는데 마지막 3년을 '신문과방송' 편집장으로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많은 걸 배우는 기회가 됐다.

Q. 앞으로 '신문과방송'이 주목해야 할 이슈는 무엇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계가 척박해지고 있다. 언론 전체가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문과 방송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앞으로 ‘언론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대안 제시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 기사와 관련된 기획이라면 한국 언론이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해외 사례만 가져온다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Q.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신뢰도 추락과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언론계가 가장 큰 문제다. 신뢰도 추락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언론을 보면 비전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언론 신뢰도 문제는 윤리와 연관이 있다.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의 윤리의식이 마비되면 국민적 신뢰도는 당연히 떨어지게 되어 있다.

Q.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서 한국은 언론 신뢰도 21%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4년 연속 최하위로 회복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레거시 미디어가 돈 벌 생각을 안 하면 된다. 윤리의식은 결국 돈 문제다. [단독] 남발, 어뷰징 기사 등 포털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도 결국 돈 문제에서 비롯됐다. 사주가 언론사를 돈 버는 기업으로 생각하는 순간 비전이 없어지고 신뢰도가 추락하게 된다. 언론사가 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사주는 언론사를 독립시켜야 한다. 또한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들은 스스로 퀄리티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Q. 방송사의 경우 법적으로 규제 대상이지만, 신문사는 영리 기업이다

신문사는 당연히 민간기업이다. 방송보다 자유로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신문이 태동하게 된 계기를 살펴봐야 한다. 사회와 시민이 언론의 자유를 왜 부여했나.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 알 권리를 신탁한 것이다. 언론사가 공적 기능을 수행하리라는 무언의 신뢰와 약속이 있는 거다. 언론사가 스스로 이러한 점을 저버리지 않는 게 핵심이다.

Q. 언론사가 돈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콘텐츠 유료화가 핵심일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콘텐츠 유료화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유료화를 위해선 대체재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뉴스 대체재가 지천에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언론에 돈을 낼까. 퀄리티 저널리즘을 구현해야 유료화에 성공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료화를 시도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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