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저널리즘’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열렸다. 21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학계는 물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이 한자리에 모여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지상파와 종편 방송뉴스의 저널리즘 마주보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쟁점토론에는 정필모 KBS 보도위원, 심석태 SBS 뉴미디어실장, 정박문 TV조선 편집부장, 김상우 JTBC 보도국 부국장이 토론자로 나와 자신의 저널리즘 수준에 대해 고백했다.

우리는 보통 객관성, 공정성, 공공성 같은 가치를 잣대로 저널리즘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TV조선과 채널A 식의 정치토크쇼는 편향적인 패널 구성, 확인되지 않은 발언, 막말 등으로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정치권력, 광고주, 사주와 관련된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도 한다.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거나, 사실을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파편화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자격을 상실한 언론이 많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지적대로, 지금 방송사 뉴스에서 특정한 관점으로 사실을 조합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려는 ‘간주간성’(Intersubjectivity)을 찾을 수는 없다. 시민들이 대안언론과 팟캐스트를 찾아가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알리바이’로 활용하는 것이 객관주의다. ‘우리는 사실을 보도했다’는 것으로 면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주의는 저널리즘의 기준에서 이미 쫓겨났다는 것이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남 교수는 “특히 한국의 저널리즘은 객관주의의 신화를 맹신해 왔다”며 “절차적으로 객관주의를 지킨다고 한들 사회적으로 좋은 저널리즘이 되는 것은 어렵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삭제돼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짚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묵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지배적 관점이 관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5월 21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ECC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지상파와 종편 방송뉴스의 저널리즘 마주보기> 모습. 왼쪽부터 남재일 경북대 교수, 박재영 고려대 교수, 윤영철 연세대 교수(사회자), 정필모 KBS 보도위원, 심석태 SBS 뉴미디어실장, 김상우 JTBC 부국장, 정박문 TV조선 편집부장.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남재일 교수가 지적하는 사례는 숱하다. 최근 서울 강남역 주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그렇다. 언론은 남녀공용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살인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지만, 이 사건와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기저에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가 있다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남재일 교수는 “간주관적 보도는 현상과 언론을 매개하는 상위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 가치를 형성하지 않으면 강자들의 논리가 자동으로 개입된다”며 “언론은 강남역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해서 사건기사로 처리할 수 있다. 여성혐오에 관한 시각을 언론이 간과하는 이유는 ‘무엇을 어떻게 쓰라’는 자극을 주는 내부적인 규정과 관행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주요 광고주인 삼성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공식화’하고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의 입장은 ‘한줄’ 붙이는 선에서 보도를 멈춘다. 이를 두고 방희경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직업병 논쟁 과정) 1차 국면에서 언론은 침묵함으로써 소극적인 태도로 사건을 왜소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면, (보상 국면이 시작된) 2차 국면에서는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사 공론장을 형성해 보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확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지적했다. “최대 광고주로서 삼성이 언론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고, “권력으로부터의 직·간접적 압박들로 인해 언론인 스스로 사회비판 능력과 권력 감시의 책임을 잃어버렸다”고 꼬집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방송저널리즘은 여러모로 저널리즘의 기준에 미달한다. 종편이 대표적이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실장은 종편 특유의 정치토크쇼를 겨냥, “최소한의 바텀 라인(bottom line)을 지키지 않은 것들”이라고 평가절하면서 “이런 것들과 같이 저널리즘의 품질을 논의하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박문 TV조선 부장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지만 ‘비용 대비 효율성’이라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며 “새로운 정보와 관점을 주지 못하면 ‘만담’ 선에서 끝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다. 편성을 줄이려는 계획이다. 기자가 커버할 수 없는 전문성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각한 문제는 JTBC 정도를 제외한 대다수 방송사의 저널리즘이 하향평준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상파를 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고, 종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봐도 6개월이면 세뇌된다. 저널리즘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계속 나오지만 방송사 경영진은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마저 거부하고, 내부 노동조합과 직능단체의 개입을 ‘정치적’이라고 비난한다. 방송사들은 비즈니스 조직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

▲정필모 KBS 보도위원, 심석태 SBS 뉴미디어실장, 김상우 JTBC 부국장, 정박문 TV조선 편집부장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외부의 견제,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언론계 내부의 숙의가 모두 필요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남재일 교수 지적대로 누구라도 인권을 억압할 수 없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만, 언론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남재일 교수는 “언론이 시민인륜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보도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쓰지 못하더라도 인권과 차별의 문제에서 합의된 것들은 저널리즘 영역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합의를 축적해 나가고, 언론이 뉴스 아젠다를 설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저널리즘을 구현해야 하는 공영방송마저 그렇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여전히 청와대가 있고, 정치권력은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장악된 공영방송은 내부 토론과 외부 견제를 무시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의 비망록에는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개입 사례가 34건이나 기록돼 있다. 법원이 인정한 비망록의 본질은 KBS 사장이 보도국장에게 대통령 리포트를 앞으로 내보내고, 정부여당에 불리한 내용은 뒤로 빼라는 식의 보도통제를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KBS는 최근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인사이드>를 폐지하기도 했다.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줄이려는 것이다.

정필모 KBS 보도위원은 지금 KBS의 저널리즘을 이렇게 정리했다. “KBS의 집단지성은 상당히 무너져 있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을 하달해 집행하는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다 보니 그렇다. 기자와 데스크의 집단지성이 작용해야 하고, 전문성과 기자윤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기초가 서지 않으니 편향성 문제가 생기고,좋은 저널리즘에서 벗어난다. 정치뉴스의 경우, ‘공방’으로 처리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애매모호하게 (보도해) 진실을 놓치게 만들고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나쁜 뉴스를 만든다.” 정필모 위원은 BBC처럼 보도국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취재과정과 기사의 취지를 설명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상파고 다른 종편이고 JTBC 옆에만 서면 모두 오징어가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사진=미디어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방송뉴스는 JTBC다.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이 합류한 이후 극찬을 받고 있다. 김상우 보도국 부국장은 “우리는 종편으로 구분되기를 거부한다”, “저널리즘을 평가하려면 매체별로 해야 한다”, “결국 뉴스는 만드는 사람의 의지와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층 보도와 하나의 아이템 4~5꼭지로 충분히 보여주는 저널리즘의 경쟁력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런 긴 호흡의 저널리즘을 다른 방송사가 따라와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JTBC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JTBC는 지상파와 종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이고, 이 같은 저널리즘을 유지할 제도적 장치가 강력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저널리즘이 당면한 과제는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내부의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심석태 실장은 “근본적으로는 기자들의 커뮤니티가 복원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필모 보도위원은 “정보가 난무한 시대에 영향력 있는 언론, 특히 방송이라면 정보의 최종 확인자 역할로서 신뢰성을 쌓아야 한다”며 “그렇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정치적 독립성, 절차적 투명성이 중요하다. 미디어 이용자들도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언론에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널리즘 복원의 과정은 지난하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이 미래의 미디어콘텐츠를 전망한대로, 시민들은 미디어를 “패키지 단위로 소비”한다. “미디어 입장에서 보면 편집행위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럴수록 저널리즘이 강조돼야 한다. JTBC의 리포트 중 앵커브리핑의 페이스북 도달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시민들이 언론에 요구하는 저널리즘의 수준을 정확히 보여준다. 정필모 보도위원은 “진실을 추구하는 탐사보도와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해석보도가 활성화돼야 하고, 주류언론이 이런 저널리즘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와 뉴스의 양은 지금보다 많아질 것이다. 이는 사회의 여러 갈등과 이를 둘러싼 여러 관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구글의 리차드 깅그라스 뉴스 디렉터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인터넷을 통해 은폐돼 있던 갈등과 주류언론이 적극적으로 발굴하지 않은 문제들이 다양한 채널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이제 언론은 자신의 독자에게 다가가야 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지금 자문해야 한다. 지금 누구를 위해 뉴스를 만드나.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 자신의 저널리즘을 반성하고, 좋은 저널리즘을 경합하는 것 또한 언론의 몫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