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으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한국의 저널리즘은 계속 위기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정점에 청와대가 있고, 신문과 방송은 특정진영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역설적으로 편파성을 드러내지 않는 걸로 편파적이 된다. 공정성을 말하면서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는다. 수십년 된 언론의 생존전략이고 문법이다.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8일 한국기자협회가 <저널리즘과 혁신: 성찰적 진단 및 과제>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지난 수십년간 이 공동체에서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좋은 언론 브랜드’가 빈곤하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저널리즘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에서 뉴스가 유통되면서 종이신문과 방송, 그리고 언론사 홈페이지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독자들이 뉴스를 ‘단건’으로 소비하면서 뉴스의 맥락은 사라지고 있다. 광고주에 대한 눈치보기와 의존도는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온라인저널리즘은 실시간급상승검색어와 가십 기사들이 포털을 도배한다. 일부 언론이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실행하며 ‘차별화된 콘텐츠’를 내놓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보도자료와 주장을 검증하기보다 받아 적기 바쁘다. 이게 우리가 보는 뉴스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구글의 리차드 깅그라스 뉴스 디렉터는 “인터넷은 내재적으로 분열된 힘이지 통합의 힘이 아니다”라며 온라인저널리즘 시대 주류매체가 가졌던 통합의 힘, 주류매체가 지배했던 여론의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폐돼 있던 갈등과 주류언론이 적극적으로 발굴하지 않은 문제들이 다양한 채널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언론은 이제 자신의 독자에게 다가가야 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을 ‘지혜의 저널리즘’이든 ‘저널리즘의 혁신’이든, 그 무엇으로 부르든 말이다.

저널리즘은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처음으로’ 독자를 찾아내야 하고, ‘끝까지’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최진순 기자는 “언론과 공동체의 애착관계, 저널리즘의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언론의 혁신은 현명한 독자를 발굴하고 그들을 공감시키는 것이 전부이며 핵심이다. 디지털 문명에서도 변하지 않는 당위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성찰하고 진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스가 8일 기자협회 토론회에서 나온 ‘저널리즘 혁신을 위한 제안’을 정리했다. / 편집자주

▲한국기자협회는 4월8일 오후 서울 시민청 지하2층 태평홀에서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기자협회 연속 토론회① / 저널리즘과 혁신: 성찰적 진단 및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권영인 SBS 뉴미디어실 스브스뉴스팀장, 권호 중앙일보 디지털제작실 디지털제작팀장,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박대용 뉴스타파 뉴미디어팀장,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원용진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맡았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독자를 찾아라”

한국 주류언론의 특징 중 하나는 신문부터 지상파 방송까지 일방향적이라는 점이다. 언론사는 저마다 독자위원회, 시청자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성하고 운영 중이지만 정작 진짜 자신의 독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는 언론사조차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최진순 기자는 “무엇보다 문제는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아닌 ‘결과물로서의 뉴스’에만 치중한 것”이라며 “문법은 파격적으로 탈바꿈했지만 복제와 어뷰징 같은 부작용이 만연하고 큐레이션처럼 디지털의 옷을 입히는 데 한정됐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클릭을 붙잡기 위해서, 그리고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의 절차는 닫은채, 일방적인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는 이제 독자를 찾아나서야 한다. 독자가 있는 집단, 공동체에 들어가 ‘진지한 뉴스’를 만들어야 신뢰를 회복하고 저널리즘을 혁신할 수 있다는 게 최진순 기자의 조언이다. 최 기자는 <워싱턴포스트>는 매월 독자 커뮤니티에 참여해 소통하고, 그곳에서 기사를 발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독자, 사회운동과의 협업도 중요하다. <가디언>이 뉴스리스트를 공개하며 ‘오픈 저널리즘’을 시도하고, 사회운동단체들이 언론과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은 언론이 독자를 만들면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최진순 기자는 “기자의 전문성은 바로 이런 독자와의 만남에서 얻어진다”고 강조했다.

“독자에게 다가가라”

권영인 SBS 뉴미디어실 스브스뉴스팀장은 “디지털콘텐츠는 답이 없다. 온라인에 나오는 순간 낱개 콘텐츠가 된다. 언론사의 브랜드와 기자의 가치를 올리는 게 기여할 수 없는 게 현 실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카드뉴스, 인터랙티브뉴스, 동영상뉴스 같은 포맷은 그런 고민의 결과다. 권호 중앙일보 디지털제작실 디지털제작팀장은 기성매체의 장점은 “깊이 있는 분석과 특종”이라고 했다. 그는 “디지털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익스클루시브(exclusive, 독점적) 콘텐츠를 어떻게 눈에 띄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디지털을 활용하는 방법은 독자와의 접점에서 찾을 수도 있다. 디지털세대를 새로운 취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은 “셀카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는 청년들이 스스로 세상에 참여하고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이들은 참여 욕구가 강하다. 지금 청년들이 흙수저, 헬조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언론은 뭘 했나. YTN이 해법을 찾은 것 같다. YTN 페이스북은 독자의 동영상 제보를 분석해서 공유한다. 독자의 제보를 사회면 구석에 있는 기사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쁜 관행을 버려라”

언론은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뉴스가치를 판단한다. 그래서 기사의 대부분은 만들어지는데 나쁜 관행들로 기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익명의 취재원’과 ‘무원칙 인용보도’가 그런 것이다. 내부고발의 경우, 취재원을 익명으로 처리해야 할 사정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드러내야 할 관계자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은 “저널리즘의 혁신은 아주 작은 것들, 콘텐츠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뉴욕타임스가 익명취재원 활용규칙을 내놨듯, 이 같은 관행을 바꾸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라는 게 김익현 소장 이야기다. 또한 그는 최초보도 언론을 밝히는‘인용 보도’ 또한 저널리즘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사들이 여전히 디지털의 영역을 ‘편집국 하부조직’ 정도로 취급하고, 언론사들이 제각각 생존전략을 찾는 것도 좋지 않은 관행 중 하나다.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조직문화를 바꾸고 언론사들끼리의 협업도 중요하다는 게 최진순 기자의 제안이다. 그는 신문사의 경우, 최소 신문제작 인력의 10분의 1 이상을 디지털에 투입하고 뉴스룸을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동업자들과도 저널리즘의 미래를 숙의하고 저널리즘의 가치를 확산하는 공동의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과 피키캐스트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을 견인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진=미디어스)

“독자 끌어당길 무기는 독립성과 콘텐츠”

그러나 저널리즘의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성과 콘텐츠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독자들은 광고주에 휘둘리는 언론, 권력을 파고들지 않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의 언론이 처한 현실은 불행하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 언론은 불행하다. 권위주의적 정권과 디지털 혁신을 해야 하는 시기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신뢰도를 회복해야 하고 더 쉽게 수용자에게 접근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갖고 있다. 저널리즘의 추락속도가 빠르지만 따라가는 속도는 너무 느리다”고 말했다.

언론이 독립성을 강화하고 차별화한 콘텐츠를 내놔야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게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생각이다. 김성해 교수는 “지금 언론사는 대중의 눈높이로 이야기하는 법을 잊었다”며 결국 언론이 독립성을 키워야만 독자를 다시 되찾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에게 차별화된 콘텐츠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는 것’,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뉴스를 찾는다. 지금 언론은 트래픽에만 몰두해서 전문성, 독립성, 대중성을 모두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입처 저널리즘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서든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박대용 뉴스타파 뉴미디어팀장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대용 팀장은 “유료구독자가 줄고 광고의존도가 높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독자보다 광고주의 목소리가 크다. 뉴스타파는 광고주와 달절하면서 시작했다. 사실 광고주라는 변수를 빼면 저널리즘의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를 알리는 데 집중하는 게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최진순 기자는 “디지털 문명의 독자들이 언론에 바라는, 변함없는 요청은 ‘디지털로의 전환’이 아니라 ‘디지털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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