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현태 칼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기후변화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술이 있다. HVDC는 전력의 장거리 전송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시스템 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처럼 직류(DC)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HVDC 기술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실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목표로 RE100 이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전력망은 교류(AC)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직류 기반의 HVDC 시스템과의 연계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HVDC 기술의 핵심 부품과 시스템 대부분을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현실은 기술적 독립성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심각한 약점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HVDC 기술의 국산화는 단순히 기술 확보를 넘어, 국가적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와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을 결정짓는 핵심 과제가 된다.

탄소중립 (PG) [연합뉴스 자료사진]
탄소중립 (PG) [연합뉴스 자료사진]

새로운 접근법으로서의 실증형 국책 R&D 

기술 국산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경로는 실증형 R&D를 통해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실증형 R&D는 단순한 연구개발을 넘어, 실제 환경에서 기술의 성능과 안정성을 검증하고 산업화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연구 결과가 시장과 단절되지 않고, 실제 산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국책 R&D로서의 실증 사업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정부가 주도하여 대규모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면 초기 투자 부담이 크고 불확실성이 높은 HVDC 기술 개발에 필요한 안정적인 자금과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민간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적, 재정적 장벽을 극복하게 한다.

 

둘째, 실증 단계에서 얻어진 데이터는 기술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상용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설계할 수 있다.

 

셋째, 실증형 R&D는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한다. 대기업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중소기업은 핵심 부품 생산을, 연구기관과 대학은 기초 연구와 인재 양성을 담당하며, 산학연 협력 체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제주시 삼양일동 한전 동제주변환소 내 초고압직류송전(HVDC) 전력 변환시설.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삼양일동 한전 동제주변환소 내 초고압직류송전(HVDC) 전력 변환시설. (제주=연합뉴스)

사업화 기대효과와 성공을 위한 조건

실증형 R&D를 통해 HVDC 기술을 국산화하면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장 큰 효과는 에너지 안보의 강화다.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기술 비용 상승과 공급망 불안정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한, HVDC 기술의 국산화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파급 효과가 크다. HVDC 기술 국산화는 전력 기자재, 엔지니어링, 시공 등 관련 산업의 성장을 이끌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한 지역이나 대규모 전력 소비 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 실증 사업을 진행하면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효율적인 사업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증형 R&D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실증 사업이 진행될 지역은 재생에너지 생산이 활발하고, 기존 전력망과의 연계가 용이한 곳이어야 하며, 정부의 미래 산업단지와 같은 정책적 계획지역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HVDC 기술이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사업화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지역 내 산학연 협력 기반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면 기술 개발과 상업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데 있어 유리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사업이 장단기적인 관점에서의 연구개발이라는 점이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10년 이상의 중장기 플랜을 통해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반면, 소규모 HVDC 실증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의 경제성과 안정성을 빠르게 검증하거나,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 산업에서 에너지 공급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과 같은 단기적인 성과를 도출하여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국정기획위원회 제공]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국정기획위원회 제공]

에너지 안보와 신산업 생태계의 초석

HVDC 기술은 단순히 재생에너지 활용을 위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 그리고 RE100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인프라다. 이 기술의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실증형 국책 R&D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이 협력하여 구체적인 로드맵을 설계하고, 적합한 지역에서 대규모 실증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나라가 에너지 전환 시대의 글로벌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초석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실증형 R&D를 통해 HVDC 기술의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우리나라의 에너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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