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힐 때만 해도 ‘이번에는 다른가’, ‘예상이 빗나가는 걸까’ 했다. 그러나 일문일답이 시작되자마자, 그 생각은 바뀌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은 윤석열이다.
보수적 논자들은 다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보수언론은 과거 대통령의 사례를 들며 성공한 사과와 실패한 사과를 나눠 분석을 하기도 했다. 여당 내외에선 ‘금기어 리스트’까지 공유됐다. ‘불법은 아니다’, ‘인위적 개각은 안 한다’, ‘박절하지 못해서 그렇다’ 등이 그것이다. 거의 진영 전체가 이걸 망치면 정말 큰일이라는 분위기로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게 이제 국정수행 지지율 20%대 붕괴가 ‘뉴노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보수 정치는 와해되고 궤멸에 이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7일 대국민담화에 이은 기자회견을 보면, 보수 정치의 눈물겨운 노력은 아무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허리를 굽히고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통령은 ‘무엇에 대한 사과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과를 하는 사람도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식이면, 얘기는 끝난 거 아닌가?
기자회견의 핵심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였다. 세부적으로 짚어 보면 크게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특검 수용 여부다. 둘째는 국정 개입 의혹과 김건희 라인 인사 등이다. 셋째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검은 위헌적이라 수용할 수 없고, 국정 개입은 의혹 제기 자체가 근거 없어 이른바 김건희 라인 인사도 있을 수 없으며, 다만 국민들이 불쾌해하기 때문에 영부인 일정은 꼭 필요한 것만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기존의 입장에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거다.
특히 대통령이 특검에 대해서 한 발언은 국가 지도자나 법률 전문가의 입장에서 한 발언이라기보다는 특검 반대 그 자체가 목표인 변호사의 방어 전략 같아 보일 정도였다. 대통령은 미국을 예로 들며 현행 특검 제도 자체에 위헌성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야당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게 위헌이라는 취지로 쟁점을 좁혀 보더라도 삼권분립 침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판단한 바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박영수 특검팀 소속이었다.
검찰이 이미 수사한 대상을 특검이 다시 수사하는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과 같아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한 것은 궤변에 가깝다. 지금까지 도입된 대부분의 특검은 형식적으로는 검찰이 이미 수사한 사안에 대해 이뤄졌다. 검찰이 수사 중인 상황에서 정치권 타협이 이뤄질 경우, 검찰이 서둘러 수사에 속도를 내 수사를 마무리 해 특검에 넘기는 일도 있었다. 일평생 검찰에 몸담고 살아온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가 없는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 것은 ‘궤변’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히려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의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건희 여사가 선거 시기 자신의 휴대폰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답변을 아무렇지도 한 게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 주장의 취지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한 일을 모두 국정개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답변을 들은 대다수의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기이함(weird)을 느꼈을 것이다. 이게 혹시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주고 받지 말아야 할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게 들어났을 경우를 대비한 ‘빌드업’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심지어 휴대폰까지 영부인과 공유하고 있다는 진실을 무의식적으로 토로한 것인지, 그저 ‘아무말 대잔치’를 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명태균 씨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답변도 마찬가지 태도였다. 경선 기간 중에 관계를 끊었으나 언론에 공개된 대로 전화 통화한 일이 있었고, 이에 대한 해명이 사실관계가 맞지 않았던 것은 비서실과의 소통 오류였으며, 그럼에도 공천개입은 전혀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인데, 이 얘기를 하면서도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 때도 자신이 당에 인사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뭐가 문제냐’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대통령의 인식과 달리 이 역시 공천개입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 법적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얘기를 하나 하나 뜯어보면 대통령이 사과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그러면 애초에 허리를 굽힌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김건희 여사를 포함한 주변 사람 모두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장면을 연출하긴 했으나 실제 사과할 일은 없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내심이라는 게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법정에서는 이런 경우를 두고 ‘개전의 정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본인 및 배우자에 관한 여러 의혹에 대해 특검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여러 궤변을 들어 회피로 일관한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는 특검 사안인가, 아닌가? 특검 출신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묻고 싶다. 이 상황을 계속 이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당시 박영수 특검에 몸 담았던 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은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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