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 일본 언론에서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피해자인 한국이 전쟁범죄를 묵인한 것이냐는 언론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매일경제는 "역사 문제와 무역 갈등이 겹쳐 냉각됐던 한일 관계는 현 정부 들어 빠른 속도로 개선됐다. 안보 협력이 긴밀해지고 경제 교류도 대폭 늘었다"면서 "사도광산 문제로 양국 관계가 첫 위기를 맞았지만 일본이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 충돌을 피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27일 세계유산위원회(WH)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유네스코 전체회의에서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세계유산 등재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표결없이 이뤄진다. 관례상 만장일치로 결정하는데, 한국 정부가 찬성하면서 '전원 동의'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할 것과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하였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사도광산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한 전시물을 이미 설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9일 동아일보 르포 기사에 따르면,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관에 '강제동원' '강제노역' 등의 문구는 없었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과 표현도 물론이다. 동아일보는 사도광산에서 2km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전시관이 있다고 전했다. 가로 5.2m, 세로 4.2m 크기의 작은 방이다.
동아일보는 "전시 공간 어디에도 '강제동원'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은 없다는 점은 앞으로도 논란이 예상된다"며 "일본 정부는 2015년 하시마섬 세계유산 등재 당시 강제노역을 시킨 것을 인정했지만 이번에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모집, 관 알선, 징용의 강제성은 인정하지만, 국제법이 규정한 '강제노동'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전시장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한 발언이 설명판으로 전시됐다"며 "하지만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물론이고 1990년 아키히토 일왕 유감 표명('통석의 염을 금할 길이 없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식민지 지배로 한국민에게 고통을 안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한다') 등 과거 사과 표현 전시도 없다"고 전했다.

2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는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에 관해 현지 전시시설에 '강제노동'에 관한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에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외교부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며 "표현 문제를 놓고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외교부는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 '강제동원' 표현 문제는 이미 정리됐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표현을 갖고 협상력을 허비하기보다는 더 나은 이행 조치를 챙기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며 "또 하나의 결과물을 주머니에 챙긴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경향신문은 사설 <‘강제동원’ 빠진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정부 제정신인가>에서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언급하며 "가해자인 일본은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인 한국이 전쟁범죄의 흑역사를 묵인해줬다는 건 충격적"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외교부의 입장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표현이 빠지는 걸 눈감아주기로 해놓고선 딴소리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게다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전시물이 설치되는 곳은 세계유산 등재 지역에서 2km가량 떨어진 소규모 향토박물관이라고 한다. 조선인 강제노동을 알린다는 게 구색일 뿐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등으로 일본의 과거사 책임에 면죄부를 줬다. 일본군 위안부, 독도 등을 둘러싼 망언이 거듭돼도 '성의 있는 조치'만 되뇌고 있다"며 "그러니 일본은 점점 안하무인이다.(중략)미래세대에 부담만 줄 이런 식의 관계 개선은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날 한겨레는 사설 <강제동원 명시도 없이 사도광산 세계유산 내준 정부>에서 "제정신이 박힌 정부라면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일본이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하는 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있을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어야 마땅하다"며 "그러기는커녕 박근혜 정부 시절 군함도 수준의 규정조차 지키지 못했다(중략)도대체 누굴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2015년 표현 문제가 정리됐다는 외교부 입장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며 "정리된 일이라면 더더구나 사안마다 표현을 바꿔선 안 된다"고 했다. 한겨레는 '또 하나의 결과물을 챙겼다'는 외교부 고위 관계자 발언에 대해 "강제동원이라는 본질적 규정을 내주고서 조선인의 희생이 희석된 생활상 전시를 약속받은 게 성과라고 우기는 것"이라며 "역사의식과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日 역사왜곡 꼼수 용인 안 된다>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에 책임을 회피하거나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일본이 2015년 하시마(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할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후속 조치를 하라'는 유네스코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또 2020년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센터에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일본의 왜곡된 주장만 가득하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과 관련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할 것'이라고 했지만, '강제동원' 표현은 없었다"며 "아픈 역사가 정확하고 제대로 기록되는 게 우리 목적이다. 하시마 사례가 재현된다면 그나마 개선 기미를 보이는 한일관계가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매일경제는 <사도광산에 '징용역사' 반영,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계기돼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매일경제는 "일본 정부는 우리 측 요구를 받아들여 현지에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에 관한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며 "일본이 향후 전시물을 없애거나 축소·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아울러 양국 정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일 관계를 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매일경제는 "한·미·일 3개국 국방장관이 28일 일본 도쿄 방위성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TSCF)' 협력각서에 서명한 것도 한일 관계 개선이 없었다면 이뤄지기 힘든 성과"라며 "3개국 국방장관은 3개국 고위급 안보회의는 물론 공동 군사훈련도 정례화·체계화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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