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외교부가 보도자료에서 일본 사도광산 전시물 관련 발언을 왜곡해 소개했다.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는 발언을 '한국인 노동자'를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는 발언으로 전한 것이다. 외교부는 발언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라고 해명했다. 

9일 한겨레는 기사 <[단독] 외교부, 사도광산 자료 '조작'… 일본이 안 쓴 '한국인' 써넣어>에서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도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8월 9일 기사 갈무리 (빅카인즈)
한겨레 8월 9일 기사 갈무리 (빅카인즈)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 받은 일본 수석 대표 발언문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수석대표로 나선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망하고 이들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물을 이미 현장의 설명∙전시 시설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고 기재됐다. 한겨레는 "외교부는 이런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옮기며 너무 긴 표현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전했다.  

외교부 7월 27일자 보도자료 갈무리
외교부 7월 27일자 보도자료 갈무리

한겨레는 "외교부 설명과 달리 문제의 보도자료는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축약'한 것이 아니라 발언의 주요 부분을 뽑아내 소개한 것"이라며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뉘앙스까지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외교가에서 상대국 대표의 발언 일부를 자의적으로 축약·변형해 보도자료에 소개했다는 것 역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문제가 된 발언이 한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양국 사이에 이뤄진 합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조정식 의원은 한겨레에 "이 사건은 단순 단어 왜곡을 뛰어넘어 대일 굴종외교를 감추고자 벌인 국민 기만이자 우롱“이라며 ”외교부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이 됐고, 용산 대통령실과도 소통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에 대해 '강제성'이 드러나는 표현을 요구했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으나 거짓말로 드러나 논란이 불거졌다.  

한겨레는 지난 7일 <일본, 사도광산 ‘강제’ 표기 묵살…들통난 윤 정부 굴욕외교>에서 "한국이 일본과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전시물 설치 예정지인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조선인 동원 과정의 억압성을 보여주는 ‘강제’라는 표현을 명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8월 7일 보도 갈무리 (빅카인즈)
한겨레 8월 7일 보도 갈무리 (빅카인즈)

외교부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명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 "사도광산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정부는 일본과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협상을 벌인 결과 ‘강제성이 드러나는 표현’을 일본이 수용했다며 성과를 강조했다. 반대로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우리 쪽의 어떤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며 "특히 ‘강제’(forced to work)란 표현을 명시하라고 요구했는지를 물을 때마다 '표현 문제를 일본과 협상한 것은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는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에 관해 현지 전시시설에 '강제노동'에 관한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에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외교부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며 "표현 문제를 놓고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표현을 갖고 협상력을 허비하기보다는 더 나은 이행 조치를 챙기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며 "또 하나의 결과물을 주머니에 챙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2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사 갈무리.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가 '강제노동' 관련 문구를 사용하지 않기로 사전에 협의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 7월 2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사 갈무리.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가 '강제노동' 관련 문구를 사용하지 않기로 사전에 협의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달 29일 동아일보 등의 르포기사에 따르면,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관에 '강제동원' '강제노역' 등의 문구는 없었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과 표현도 없었다. 동아일보는 사도광산에서 2km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전시관이 있다고 전했다. 가로 5.2m, 세로 4.2m 크기의 작은 방이다. 

동아일보는 "전시 공간 어디에도 '강제동원'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은 없다는 점은 앞으로도 논란이 예상된다"며 "일본 정부는 2015년 하시마섬 세계유산 등재 당시 강제노역을 시킨 것을 인정했지만 이번에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모집, 관 알선, 징용의 강제성은 인정하지만, 국제법이 규정한 '강제노동'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지난 8일 한국일보는 사설 <사도광산 '강제노동' 표현 거부 당하고 성과로 포장한 정부>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1,500명이 넘은 조선인이 사도광산에서 전쟁물자를 캐느라 피눈물을 쏟고 목숨까지 희생됐다"며 "이런 곳이 인류가 기념할 세계유산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우리 정부가 유리한 상황을 외면한 채 동의했다면, 외교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지적처럼 강제동원 피해국 정부로서 협상의 전모를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같은 날 한겨레는 사설 <사도광산 ‘외교 참사’, 윤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라>에서 "‘역사의 진실’보다 ‘일본과 협력’을 중시해온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다"며 "이 사태의 출발점은 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다. 외교부 뒤에 숨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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