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여야 공천 상황을 보도하는 언론의 시선은 비교적 일관적이다. 국민의힘은 별 잡음 없이 순항 중인데, 더불어민주당은 아수라장의 전조를 연상하게 한다. 한겨레 19일자 기사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관계자가 “이런 추세라면 120석도 못 건질 것이다”라고 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어디서 비롯된 차이인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는 여당의 경우에 적용 가능할 거 같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충돌 국면이 ‘매를 먼저 맞는’ 효과를 낳았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천 우려’를 명분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밀어내려는 시도를 하는 바람에 여당 지도부는 빌미를 잡히지 않을 만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도 온 세상이 ‘윤심 공천’ 얘기를 하는 판에 대놓고 100% 용산 위주 공천을 요구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현재까지 상황이 안정적인 이유는 그래서다.
물론 잘 뜯어보면 용산과 여당이 나름대로 서로의 사정을 조율한 흔적이 엿보인다. 밖에서 볼 때 ‘윤심 공천’을 판가름할 지표는 이원모, 주진우 전 비서관의 행보였다. 그런데 서울 강남을에 공천을 신청한 이원모 전 비서관에 대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호통을 치는 형태로 여당에 지역구 재배치의 여지를 열어줬다. 반대로 주진우 전 비서관에 대해선 아무도,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결국 주진우 전 비서관은 ‘부산의 강남’ 소리를 듣는 해운대 갑에 단수공천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를 언급하던 한동훈 비대위원장, 김경율 비대위원 등은 이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김건희 여사는 넷플릭스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공식 활동 재개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이런 정황을 보면 호사가들의 여러 평가와는 달리 윤석열-한동훈 조합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든 원래 사이가 돈독해서든 ‘원팀’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 언론은 지금까지의 공천은 연습문제 풀이에 불과하다고 본다. 조선일보는 19일 팔면봉 코너에 “與, 현역 탈락 최소화에 공천 잡음 일단 최소화.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없는 법….”이라고 썼다. ‘쌍특검’ 이탈표 관리와 개혁신당으로의 당적 이동 방지를 위해 현역 의원들의 경선을 최대한 보장하는 모양새를 갖춘 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결국 영남권 상당수 지역구 향배가 걸린 경선 과정까지 거쳐야 최종 윤곽이 드러날 거라는 거다.
역대 모든 정당이 경선 과정에선 늘 ‘공정한 경선’을 장담했다. 불공정 논란은 경선이 끝나고 나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윤심 공천’ 논란도 마찬가지일 거다. 경선 결과 ‘물갈이’의 폭이 크면 신인의 상당수에는 ‘윤심 후보’라는 딱지가 붙을 거다. 그런데 그 반대면 ‘물갈이 실패’라고 할테니 쉽지 않은 과정이 한참 남아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시점에선 여당 공천을 둘러싼 여론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그야말로 ‘빨간불’이 켜졌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거의 한 달째 논란이 되고 있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공천 문제가 ‘친명 대 친문’ 구도로 확대된 데 이어 이번에는 비선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앞다투어 ‘출처 불명의 여론조사’, ‘심야 회의’ 등을 언급하며 더불어민주당 내 공천갈등을 생중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일 [단독] 보도를 통해 당 주류가 ‘비공식 회의체’ 2곳에서 공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내 비주류 인사 일부가 주장해온 것으로 ‘심야 회의’ 등의 이전 보도 역시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주장과 보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직접적 방아쇠는 이재명 대표의 전화이다. 전현직 의원 등에 직접 전화를 걸어 불출마를 권유하는 등의 일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에 앞의 내용과 같은 보도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왜 본인이 직접 전화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정무적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언론이 ‘팩트체크’를 해야 할 정도로 무리한 주장을 많이 했다. 연동형비례제 덕에 조국 전 장관 같은 이들이 국회에 진출하기 용이해졌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앞서 짚었듯 포장지는 어떨지 몰라도 실체적으로 ‘윤석열 아바타’라는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대목을 제대로 공략한다면 싸움이 제대로 될 것 같기도 한데 불필요한 공천 갈등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공천 갈등은 곧 내부 분열이다. 지지자 위주로 잡히는 ARS조사에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국민의힘에 역전을 허용할 분위기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겨레는 19일 기사에 “주류 희생을 위한 이 대표의 결단”이나 “조기 선대위원장 선임” 등의 조치가 2월이 가기 전에 나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관계자 발언을 통해 실었다. 사실상 이재명 대표의 2선 후퇴를 언급한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이 정도도 ‘최소한’이다. 이제 전통적 지지자들은 진지하게 묻기 시작할 것이다. ‘친명 공천’을 통한 대권 재도전 초석 다지기와 과반 의석의 안정적 달성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 답할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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