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민감한 나라이다.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그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강제동원 배상판결 문제의 정부 해법은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요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끝내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격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하락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도 이전에 상승한 지지율분의 하락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국익’을 위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국가가 밟고 올라 서기로 한 것에 가깝다. 이것 자체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실리주의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라면 윤석열 정부가 실제로 거둘 ‘국익’의 실제 내용이 어느 정도인 것인지를 평가해 판단하려 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정부 해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국익’은 아직 확정할 수 없다. 한일정상회담으로 시작해 5월 이후까지 숨가쁜 외교일정을 소화해봐야 알 수 있다. 이 결과 ‘국익’마저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이 문제는 피해자의 피해를 대상화하고 과거사에 대한 문제의식의 실종이라는 비판에 ‘외교 무능’을 추가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둘째는 보수 유권자층이 이 문제를 단지 한일관계뿐만이 아닌 여야 간 진영논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보수정치는 ‘반일선동’, ‘죽창가’ 등을 언급하며 과거 민주당 정권 당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거나 ‘제3자 변제’와 비슷한 해법을 제시했었다거나 하는 ‘물타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보수 유권자층 상당수는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을 정부를 향해 제기하는 것은 ‘반일선동’에 이용당하는 게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가 13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문재인 정부가 반일정서로 한일관계를 망친 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반조국 정서’에 올라타 한일관계를 뒤집어 놓은 것”이라며 “누가 정치를 대일 외교에 이용하는가?”라고 반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의 지적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전 정권 탓’은 대통령 당선 1년이 지날 동안 집권세력이 기대온 주요한 인식 틀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1년은 정치를 평하는 입장에선 새롭고 놀라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그랬고, 전당대회 국면에서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를 향한 대통령의 ‘3연속 어퍼컷’이 그랬다. 이런 일들을 벌이면서도 여지껏 이 정도 수준의 지지율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반대편에 ‘민주당 정치’가 존재한 현실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로 조직화가 덜 된 보수 유권자층이 “그래도 민주당은 아니지”란 정서로 이런 무도한 정치를 떠받친 거다.

“그래도 민주당은 아니지”란 정서는 민주당의 잘못도 있지만 이 구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정치의 노력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가령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전 모 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건을 보수정치와 언론이 소화하는 태도가 그렇다. 언론은 “벌써 5명째” 등의 표현으로 이 안타까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이재명 대표에게만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민주당 지지층은 이런 구도를 염두에 두고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전 모 씨의 유서는 유족이 공개를 반대하는 가운데 조각조각 유출돼 서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유서에 등장하는 표현을 보고 생전 전 모 씨의 처지를 인간적으로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 모 씨는 대선 기간 때 ‘대장동 1타 강사’를 자처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에 의하여 여러 차례 주요 혐의의 당사자처럼 이름이 거명되었다. 이는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된 바 없는 것이었으나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또한 지난해 이뤄진 검찰 수사 이후 상황도 견디기 힘들었던 걸로 추정된다. 스스로 책임을 짊어지는 방식으로 당시 주변인들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역시 있었을 것이다.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이재명 대표 측근들에 대한 불만도 가졌을 법하다.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저속한 정치는 서로의 탓을 하느라 이런 얘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사건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태도는 민주당 내홍을 키우고 있다. 한겨레와 같은 신문도 사설에서 검찰 수사의 문제와 무책임한 정치공방의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도 “의혹 앞에 검찰 수사 탓만을 하기에 앞서 정치인으로서 이 문제를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 수사와 정치 공세의 부당함은 그것대로 지적하더라도, 정치 세력으로서 또 정치인으로서 ‘남 탓’ 구도에서 벗어나는 책임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자신들에 있다.

요즘 언론에 “민주당이 스스로 이재명 대표 문제를 정리하면 그때부터가 정말 큰일”이란 국민의힘 내 여론이 종종 인용된다. 서로가 서로의 흠에 기대 무리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는 사실 없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당장 직을 내려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상식적 수준에서는 당내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이대로 총선까지 갈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수습책 중 하나로 이재명 대표의 거취 문제까지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 변하지 않으면 거듭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못할 때,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은 현상유지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혁신의 노력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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