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힘이 의원총회에서 현재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권성동 원톱체제가 20일만에 문자파동으로 무너져내리자, 친윤계가 당권 장악에 나서는 모양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준석, 윤석열 입당 때부터 갈등 빚어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입당 때부터 미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해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30일 이 대표가 지방 일정을 소화하던 날 '기습입당'했다. 당시 이 대표는 "저랑 원래 (입당) 상의가 있었다"며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두 차례 크게 충돌했다. 먼저 지난해 11월 말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대선 선대위가 이 대표에게 일정을 공유하지 않거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을 영입하면서 처음 충돌했다. 당시 이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제주, 전남 순천 등을 순회했고 울산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찾아가며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0일 윤 대통령이 당시 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였던 신지예 씨를 영입하면서 이 대표와 관계가 재차 틀어졌고, 이 대표는 "윤석열 대선후보의 비선이 선대위를 건너뛰어 다 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종인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1월 3일 윤 대통령의 일정을 중단시킨 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후보가 자기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으면 그 말을 하면 안 된다"며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주는 대로 연기만 해달라 이렇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6일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6일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6일 이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충돌을 빚었고, 친윤 성향의 의원들이 잇따라 이 대표에게 항의하며 이준석 사퇴 결의안까지 추진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윤 대통령이 의원총회에서 "모든 게 제 책임이다. 각자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선거 승리의 대의를 위한 것이니, 오해했는지 여부는 다 잊어버리자"며 다시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다. 이 대표도 "제가 세 번째 도망가면 당대표에서 사퇴하겠다"고 화답했다.

권성동 문자파동에 딱 걸린 윤심 "내부총질이나 하는 당대표"

외관상으로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이 봉합됐고, 윤 대통령이 3·9대선에서 0.73%p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 대표에 대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제기한 사기업체 대표의 성상납과 증거인멸교사 의혹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달 7일 약 8시간에 걸친 심야 회의를 진행한 후 이 대표에게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다음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원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월 26일 오후 4시 11분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월 26일 오후 4시 11분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지난달 26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 대화를 나누는 휴대전화 화면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이 대표 징계에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윤 대통령은 권 원내대표에게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권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 징계에 대통령의 의중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8.8%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 의중이 작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는 응답자는 25.5%에 그쳤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자료=KSOI)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자료=KSOI)

친윤계, 당권 접수 나서…이준석 "당권 탐욕에 제정신 못차려"

국민의힘은 1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비대위 체제 전환을 선택했다. 이 대표와 갈등을 빚었던 배현진, 조수진 최고위원의 줄사퇴가 이어지고, 유상범, 이용 의원 등 친윤계를 중심으로 초선 의원 32명이 비대위 전환 촉구 연판장까지 돌렸다. 권성동 체제가 무너지자 친윤계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권 장악에 드러내놓고 나서는 모양새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당이 비상 상황인지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모았다"며 "비상 상황이라고 하는 의견에 극소수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 89명 가운데 비상 상황이라는 해석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의원을 1명이었다.

양 원내대변인은 "당헌당규 96조에 따르면 비상 상황일 때 비대위를 가동할 수 있다"며 "의원총회는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고, 실제 비대위 발족과 관련된 의결은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원조 윤핵관'으로 손꼽히는 장제원 의원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상황이 비상 상황이라는 데 대해 의원들 모두 합의가 된 것 같다"며 "의총에서 이 상황이 비상 상황이라는 걸 확정했다"고 밝혔다.

장제원 의원(왼쪽)과 김기현 의원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장제원 의원(왼쪽)과 김기현 의원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다음 쟁점은 비대위의 성격과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친윤계 의원들은 '관리형 비대위'와 9월 조기 전당대회 개최로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 대표의 당대표 복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김미애 의원은 "비대위 체제로 가더라도 이는 궁여지책일 뿐이고, 신속히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해진 의원은 "이 대표가 (당원권 정지가 종료되는) 1월 9일 본인이 원하면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해서 비대위를 해야 한다"고 조기 전대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태경 의원도 MBC라디오에 출연해 "직무대행 비대위로 성격을 규정하고 이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이 끝나는 시점에 비대위를 종결하는 것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 측에서는 비대위 전환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비상'이라는 수사로 국민과 당원이 부여한 정당성을 박탈하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 역행"이라고 반발했다.

이 대표는 전날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지 말라했더니, 이제 개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며 "저자들의 우선순위는 물가안정도 아니고, 제도개혁도 아니고, 정치혁신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저 각각의 이유로 당권의 탐욕에 제정신을 못차리는 나즈굴과 골룸 아닌가"라며 "국민들이 다 보는데, my precious나 외치고 다녀라"라고 비꼬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7월 31일 페이스북에 적은 글. (사진=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7월 31일 페이스북에 적은 글. (사진=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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