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영화관이 필요없는 나라이다. 9시 뉴스가 안방극장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정치권 뉴스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국민의힘 의원총회의 ‘비대위 시즌2’ 결정에 비판적이지만 딱한 사정도 있다는 생각이다. 직무 정지로 주호영 비대위원회는 사실상 유지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도부가 법률검토를 한 대로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제외한 비대위 운영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준석 전 대표 측이 법적 대응을 재차 예고한 탓에 리스크가 없지 않다.

법원 판단의 취지대로 이준석 지도부 체제를 복구하는 게 정석이지만 이 선택지는 정치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내부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는 낙인을 직접 찍었기 때문이다. 아예 지도부를 새로 선출해 산뜻하게 다시 시작하자는 의견도 있는 것 같지만 그러면 법적으로 반드시 문제가 된다. 가처분 인용의 취지는 이준석 전 대표의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막는 것인데,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안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도 저도 안 되니 ‘비대위 시즌2’로 가야지 별 수 없다. 당헌 당규를 개정해서 법적 리스크를 줄이겠다지만 이제와서 그게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는데, 처지가 딱한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비대위원장 지명 등 비대위 구성 작업은 당 대표 또는 권한대행이 해야 한다. 법원은 직무대행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대행의 자격으로 비대위 구성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권성동 원내대표가 직을 내려놓으면 원내대표 선거부터 다시 해야 한다. 말이 쉽지 엄청난 일이다.

권성동 원내대표 입장에선 좀 억울한 사정도 있다. 이준석 전 대표 징계 직후 비대위 전환을 요구하는 다른 윤핵관들에 맞서 직무대행 체제를 고수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무리한 비대위 전환은 이준석 전 대표와는 별 관계없는 ‘체리따봉’ 메시지가 공개되고 일부 최고위원들이 사퇴하면서 이뤄졌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애초 구상대로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하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 이준석 전 대표와 관련한 처분으로 갔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일이다.

의원총회의 결론 중 가장 악독한 일은 ‘비대위 시즌 2’가 아니라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를 윤리위에 요구한 것이다. 추가 징계는 더 높은 수위로 이뤄져야 하는데 당원권 정지보다 센 징계는 사실상 제명뿐이다. 그 정도 징계를 하려면 그에 맞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국민의힘 의원총회가 거론하는 잘못이란 ‘양두구육’이니 ‘신군부’니 하는 표현이 당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거다.

국민이나 당사자에 직접적인 상처를 주는 모욕적 발언이면 몰라도, 특정 상황에 대한 이런 정치적 비유조차 용납되지 않는 당이 무슨 존재가치가 있는가? 결국 대통령 및 여당 주류와 각을 세운 것에 대한 괘씸죄가 아닌가? 이러한 징계마저도 법적 대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은 스스로 논란을 키울 수밖에 없는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기 위해선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 물론 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대해 사사건건 대통령이 손을 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파국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 간 관계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최소한 이준석 전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고 표현한 것의 진의를 밝혀야 한다. 이 대목에 대해선 이준석 전 대표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도대체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메시지를 보냈던 것인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아무튼 대통령이 스스로 갈등을 푸는 방향의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대통령이 가리키는 방향을 찾아가기 바쁜 여당 내 인사들도 이준석 전 대표와의 화해를 어떤 방식으로든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여당의 현 상황은 되돌릴 수 없다. 의원총회 결론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이 결정을 존중한다는 취지였다는 점에서 보면 이준석 전 대표와 화해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어떤 결기가 느껴진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도 29일 출근길 문답에서 “중지를 모은 결론이면 존중해야 한다”고 해 여당의 ‘비대위 시즌2’ 해법에 힘을 실었다.

여론을 우습게 여기는 이러한 행태는 결국 이준석 전 대표를 차기 대권주자의 체급을 갖춘 인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지금이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도 정권 후반기가 되면 어떤 상황일지 장담 못한다. 그냥 뒀으면 오히려 사그라들었을 변수다. 이게 도대체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지난 대선 때부터 1년째 ‘이준석 뉴스’를 보고 듣고 말해야 하는 국민은 또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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