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이 초국적 범죄 조직에 의해 감금과 폭행을 당한 끝에 사망한 사건이 최근 보도됐다. 범죄 조직은 고수익 일자리를 미끼로 청년들을 캄보디아로 유인한 뒤 여권을 압수하고, 보이스피싱 등 온라인 기반 범죄를 강제했다. 피해자들은 폐쇄된 공간에 구금된 상태에서 범행에 동원되었으며, 탈출을 시도하거나 저항하는 과정에서 집단 폭력을 당했다. 일부는 극심한 폭행 끝에 사망에 이르렀다는 정황도 확인되었다. 이 사망 사고 이전에도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불법 감금, 집단 폭력, 강제 노동 등에 관한 언론 보도 및 다큐멘터리가 수차례 보도 및 방영되었지만, 불행한 사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불행한 사태는 캄보디아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도 유사한 범죄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중국 내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금융 사기 및 보이스피싱 조직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SNS나 구인 광고를 활용해 피해자를 모집하고, 감금·협박을 통해 범죄 행위에 강제로 가담시키는 구조를 갖는다. 이런 범죄 조직들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현지 공권력과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보니 실제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조차 없다. 캄보디아나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는 산업화·조직화된 초국적 범죄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범죄단지에서 체포되는 중국인들 [캄보디아-차이나 타임스 캡처=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10/314863_225851_924.jpg)
이런 사건들은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글로벌 확산이 만든 현상이다. 보이스피싱, 온라인 금융 사기, 허위 투자 플랫폼, 온라인 도박 등은 모두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지리적 제약을 소거함으로써, 범죄 조직이 특정 국가의 물리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천 km 떨어진 상황에서도 실시간 통신과 통제가 가능해진 환경은, 범죄가 국경을 초월해 전개되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 디지털 기반 신종 범죄는 과거와 달리 시공간을 초월해 작동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교묘해지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은 시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범죄의 탈국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국경을 초월해 24시간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블랙머니 역시 별다른 제약 없이 국경 간 송금을 통해 신속하게 이동한다. 아니, 오히려 더 지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암호화폐의 경우 대표적 사례다. 블록체인으로 구동되는 암호화폐의 거래를 기존의 금융 시스템으로는 식별할 수 없다. 범죄 조직들은 암호화폐를 이용한 ‘합법적’ 상거래를 통해 돈세탁을 한다. 다크웹 등 새로운 기술 환경 역시 범죄의 추적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며, 국제 범죄 조직의 은닉성과 기동성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초국적 범죄에 대해 전통적인 국가 시스템이 실효성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권이 물리적 영토를 전제로 작동하는 한, 국가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해서든, 범죄자가 자국민이고 피해자 역시 자국민이라 하더라도 범죄가 외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해당 국가의 협조 없이는 수사·구조·처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캄보디아나 중국 당국에 수사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 개입이나 신속한 조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사이 피해자가 늘고 있고, 피해 금액도 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비대면 사기 [생성AI 챗GPT 제작=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10/314863_225852_938.jpg)
물론 그렇다고 해도 국가는 자국민 보호의 최종적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 해외에서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면, 국가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긴급 구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영사 보호나 외교 협력 차원은 기본이고, 중장기적으로 영사관 직원 정원 확대와 전담 조직도 만들어 대처해야 한다. 또 동일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와 경각심을 전달해 사전에 방비하는 정책적·교육적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문제 지역에 대한 여행 제한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행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주저없이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조처들이 근본적 솔루션은 되기 힘들다.
디지털 사회에서 범죄는 점점 더 복잡하고 초국적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어느 한 국가의 단독 대응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사전에 정보통신 기반 국제 공조 체계를 구축하고, 디지털 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 메커니즘을 정립해야 한다. 국가는 더 이상 국경 내부 문제만을 다루는 주권 단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글로벌 역량을 갖춘 네트워크형 주체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술이 국경을 무력화하고 있다면, 대응 또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고 여러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이제 정보사회에서 국민 주권의 개념은 기존의 영토 기반 패러다임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