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도널드 트럼프가 미합중국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달 25일, 또 하나의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정례 브리핑에서 “백악관은 수십 년간  운영되어 온 백악관 기자협회의 결정권을 넘겨받아, 어떤 뉴스 매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접촉할 수 있는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향후 대통령 집무실과 전용기 등에서 취재할 수 있는 공동 취재 기자단에 어떤 매체가 참여할지는 백악관이 직접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발표 이전까지 공동취재단에 참여할 수 있는 언론사는 백악관 기자협회(The 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 WHCA)에서 결정해 왔다. 

1914년 언론인들에 의해 설립된 WHCA는 백악관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조직이다. 공식 브리핑 장소인 백악관 브리핑 룸과 전용기 등은 장소의 제약으로 적절한 규모의 기자들만 참여할 수 있어 WHCA가 사전에 조율해 왔다. 공동취재단은 주로 메이저 언론사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기자단에서 취재한 내용은 모든 언론사가 공유하는 것이 관례였다. 트럼프는 이 100년의 전통을 깨고 향후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를 직접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캐롤라인 레빗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멋진 권한을 공유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그럴 자격이 충분한 언론사들에게도 이 특권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런뉴스] ‘트럼프의 입’이 예고한 백악관 기자실 ‘지정석’, 한달 뒤 진짜 생겼다 (2월 26일 K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이런뉴스] ‘트럼프의 입’이 예고한 백악관 기자실 ‘지정석’, 한달 뒤 진짜 생겼다 (2월 26일 K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여기서 언급된 ‘그럴 자격이 충분한 언론사’는 친트럼프 성향의 타블로이드지와 케이블채널 외에 스트리밍 플랫폼인 팟캐스트 진행자, 틱톡·유튜브 인플루언서 등을 의미한다. 캐롤라인 레빗에 따르면 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국 미디어 환경을 대변하고 있다. 백악관의 이날 발표는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광고시장 등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고, 유튜브로 대변되는 뉴미디어가 정치 경제 등 사회적 콘텐츠부터 요리, 여행, 음악 등 개인 콘텐츠까지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에서의 이런 변화는 당연히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광고 축소는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품질 좋은 콘텐츠 생산을 어렵게 한다. 살아남은 레거시 미디어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생존하고 있지만, 이미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이전과 같지 않다. 반면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수백만 구독자가 있는 인플러언서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이들을 통해 뉴스와 정보를 접하고 이들의 해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들에 대한 충성도를 강화해 실제 영향력은 단순 구독자 수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뉴스] ‘트럼프의 입’이 예고한 백악관 기자실 ‘지정석’, 한달 뒤 진짜 생겼다 (2월 26일 K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이런뉴스] ‘트럼프의 입’이 예고한 백악관 기자실 ‘지정석’, 한달 뒤 진짜 생겼다 (2월 26일 K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상황이 이런데도 그동안 레거시 미디어에 백악관을 허용했던 이유는 권력과 언론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전통적 사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유지를 위해서는 권력에 불편한 기사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것을 권력과 미디어 모두 동의했었다. 이념적 지평에 따라 보도 내용에 불만인 경우도 있었지만, 레거시 미디어가 갖고 있는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팩트에 기반한 공정한 보도를 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가 존재했다. 이런 신뢰가 뉴미디어 등장 이후에도 오랜 기간 공공영역에서는 별다른 이의 없이 지켜져 왔다. 

물론 이번 백악관의 결정은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과 관련이 깊다. 트럼프는 45대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통적 언론에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다. 레거시 미디어는 팩트체크를 통해 트럼프 발언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라고 보도했고, 트럼프는 본인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SNS를 통해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트럼프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트럼프에 우호적인 뉴미디어를 찾아 열렬한 구독자가 되었다. 47대 대통령 예측 보도에서 레거시 미디어 대부분이 경합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 결과는 트럼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것도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가 바꿔버린 백악관 취재 시스템이 트럼프 이후에도 유지될지 또는 이전으로 돌아갈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만약 이 접근 방식이 비판적 언론을 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정당을 불문하고 다음 행정부도 유사한 전략을 채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변화에 대한 레거시 미디어의 반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는 자신들의 주도권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겠지만, 뉴미디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디어 환경이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 정보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백악관의 이번 발표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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