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2025년 9월 네팔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단순히 일시적 불만 표출이 아니라, 누적된 사회적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2008년 공화정 수립 이후 네팔 공산당을 비롯한 기성 정치세력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권력 다툼에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청년층 실업, 만연한 빈부 격차, 부정부패가 겹치면서 불만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왔지만, 이를 해소할 제도적 통로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네팔 정부가 돌연 26개의 주요 SNS를 전면 차단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억눌려 있던 민심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끓어올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실 네팔 사회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기성 정치권에 대한 날 선 비난이 존재해 왔다. 고위층 인사들의 특권 의혹과 더불어, 소위 ‘네포 키즈(Nepo Kids)’로 불린 고위층 자녀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SNS를 통해 널리 퍼지며 사회적 분노를 자극했다. 그러나 분노는 온라인상의 비난과 조롱에 머물렀을 뿐 직접적인 대규모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분노를 행동으로 전환시킬 구체적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SNS 차단이라는 조치가 분노를 집단적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불씨 역할을 했다. 정부가 원천 차단을 선택한 순간, 단순한 불만은 저항으로 성격을 바꾸며 강력한 폭발력을 얻었다.
네팔 정부가 SNS를 폐쇄한 표면적 이유는 ‘가짜 뉴스와 증오 발언 차단, 전기통신 금융사기 예방’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권 비판 여론의 확산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더 크게 작용했다. 정부는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등 글로벌 플랫폼 26곳을 일괄 차단했다. 이는 국민 보호라는 미명 아래 실질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이를 곧바로 정권 보위 조치로 받아들였고,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설득력을 잃었다. 오히려 SNS를 막으려는 시도는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키며 정당성 위기를 심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도는 정반대 효과를 낳아 대규모 시위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SNS 차단은 특히 젊은 세대의 저항을 끌어내는 결정적 도화선이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SNS를 통해 소통하고 연대하는 데 익숙하다. 접근이 막히자 차단되지 않은 틱톡을 활용했으며, 다른 이들은 디스코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시위의 장소와 시간, 행동 방식을 공유하며 참가자를 빠르게 결집시켰다. 정부가 차단 조치를 강화할수록 오히려 청년들은 더욱 창의적인 방식으로 연대를 확장했고, 이는 시위의 규모와 강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디지털 공간은 단순한 대체지가 아니라 새로운 저항의 무대가 되었고, 온라인은 오프라인 시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조직 도구로 기능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언제나 시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행동으로 폭발하기 위해서는 ‘결정적 계기’가 필요하다. 네팔의 경우 SNS 차단이 바로 그 계기였다. 디지털 시대에 SNS는 단순한 오락이나 정보 유통 수단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와 사회에 접근하고 참여하는 핵심 공론장이자 권리 그 자체다. 따라서 SNS의 일괄 폐쇄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디지털 권리 박탈’로 인식되었다. 이번 시위는 SNS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권리로 자리 잡고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정부의 통제 시도가 사회운동으로 전환된 것은, 디지털 권리를 침해받은 대중의 저항 본능이 그만큼 강력했음을 의미한다.
![시위대 방화로 불타는 네팔 대통령 관저 [AP 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9/314605_225249_4927.jpg)
이번 시위의 결과가 역사의 진보로 이어질지 또는 이전보다 더 부패한 권력의 등장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또 네팔의 사례를 일반화하기도 쉽지 않다. 미얀마의 경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이 국가비상사태 선포(2021.2.1.) 직후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접근을 신속히 차단했지만, 네팔과 같은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얀마는 네팔과 달리 군부가 오랫동안 권위적 통치를 유지해 왔고, 시민들이 국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SNS 차단이 불만을 증폭시켰지만, 곧바로 거리 저항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네팔과 미얀마의 사례는 같은 SNS 차단 조치가 전혀 다른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제도의 성숙도, 시민사회의 조직력, 권력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단 SNS가 일상화되면, SNS를 폐쇄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SNS는 레거시 미디어와 다르게 이미 우리 일상에서 기술적이고 상업적으로 이미 완벽하게 구동되고 있어 SNS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게 됐다.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SNS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대신, 가짜 뉴스 등을 만들어서라도 SNS 헤게모니를 확장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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