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 방미 일정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정확한 사퇴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수차례 발언했던 '핵무장' 관련 발언 등 대미 외교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실상 경질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실장은 29일 "저는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 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1년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제 그러한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한다. 향후 예정된 대통령님의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서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며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사진=연합뉴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사진=연합뉴스)

다수 언론은 김 실장의 사퇴를 사실상 '경질'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이 윤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걸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협연을 제안했는데, 이에 대한 보고가 누락되면서 잡음이 일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블핑 공연 美요청' 7차례 보고 안했다…김성한 경질 내막>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가수 공연 문제로 국가안보실장까지 교체, 지나치지 않나> 사설에서 "미국 측의 이런 제안을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이 정도의 사안은 실무 책임자인 외교, 의전 비서관이 책임지는 정도로 매듭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술핵 배치, 핵잠수함 배치 등 미국 핵자산 한반도 배치를 두고 미국과 의견이 엇갈리는 등 대미외교 실패가 김 실장 사퇴의 배경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핵무장 관련 발언을 할 때마다 미국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2일 조선일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 기획-공동 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Joint nuclear exercise(공동 핵연습)를 논의하고 있느냐"는 로이터 통신 질문에 "No"라고 잘라말했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Joint nuclear exercise'를 '핵전쟁 연습'이라고 해석하며 "핵보유국들 사이에 가능한 용어"라며 "로이터 기자가 거두절미하고 핵전쟁 연습을 논의하고 있는지 물으니 당연히 'No'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2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의 'Joint nuclear exercise(공동 핵연습)' 논의 여부에 대해 'No'라고 답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지난 1월 2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의 'Joint nuclear exercise(공동 핵연습)' 논의 여부에 대해 'No'라고 답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외교부·국방부 신년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안보 이익에 있어 (한미 양국은) 공동된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며 "(북핵)문제가 심각해져서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은 한미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참여하고, 공동기획, 공동실행하는 이런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다수 언론이 앞다퉈 윤 대통령의 핵무장 관련 언급을 다뤘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한국이 현재 전개하고 있는 미국의 '확장억제'와 '핵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과거 김성한 실장이 썼던 논문과 대동소이하다. 전술핵 배치가 김 실장의 실제 경질 사유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 실장은 지난 국제관계연구 2020년 겨울호에 실린 <미국의 한반도 확장억제 평가> 논문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지난해 6월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실장은 논문에서 미국의 확장억제가 대규모 전시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북한이 전면전이 아닌 국지도발을 감행할 경우 전시가 아닌 평시로 간주되어 한국군이 군사작전을 하여 한·미 연합작전이 부재하게 되고, 그로 인해 미국의 확장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오히려 2010년 천안함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의 보복 공격이 비례성의 원칙을 벗어나 확전으로 가는 것을 주한미군이 나서서 자제시키는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전시작전통제권 이전을 '변수'로 제시하며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전될 경우 확장억제 구현 시 공군력을 통한 보복에 한정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미래사령부가 만들어지더라도 한미연합군 개념이 희박해지기 때문에 한국군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대적이고 미군 참여는 부수적"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최근 미국이 중국의 A2/AD 전략에 대응해 추진 중인 다전장영역작전(MDO)은 한반도보다는 서태평양 전구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서이 높다"며 "결국 확장억제라는 것도 동맹국의 협조와 상호이익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볼 때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도는 동맹국인 한국 정부의 성향과 기조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썼다.

김 실장은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도 보완 방향으로 ▲전술핵 배치 ▲핵 공유 등 핵무장을 거론했다. 김 실장은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해 즉각적으로 북한 핵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국에 배치된 전술핵으로 북한의 핵 위험에 즉각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보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그러나 미국은 전술핵 배치 장소가 북한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이러한 우려를 일정 부분 불식시키기 위해 전술핵을 탑재한 잠수함을 동해에 상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선 지상 배치보다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나, 북한이 잠수함 위치를 식별해 공격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전술핵 배치가 불가피하다면) 미국이 상대적으로 선호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썼다.

김 실장은 "미국 내 안보 전문가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방안에 대해 회의적"이라면서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술핵 배치와 남북한 국지적 충돌 간 상관관계를 본 것이므로 전면전을 상정한 확장억제로까지 논리를 확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한국의 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방안은 NATO식 핵 공유 방안"이라며 "유사한 방식으로 한미 간에 핵 공유협정을 체결해 북한 핵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핵을 공유하더라도 핵 사용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권은 미국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 입장에선 실효성보다 상징성이 강하다"며 "미국 입장에선 한국 내 자체 핵무장 목소리를 약화시키면서 한국 국민들을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어느 정도 안심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