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언론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법안이 22대 국회 개원 직후 발의돼 논란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대표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짜뉴스·허위보도 3배 손해배상'을 골자로 한다. 정 의원은 개정안에 대해 “언론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언론의 횡포는 최대한 억제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언론현업단체들은 정 의원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날개를 달아줄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법안은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이 적극 추진했으나 당시 야당과 언론노조 등 현업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 다시 언론계의 이슈로 떠오른 ‘언론 징벌적 손배제’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지난 14일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언론중재법 (PG) [이미지=연합뉴스]
언론중재법 (PG) [이미지=연합뉴스]

22대 국회 시작하자마자 언론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인데 어떻게 보세요?

“일반적인 징벌적 손배제가 없는 상태에서 언론에만 징벌적 손배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나쁜 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징벌적 손배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할 거예요. 그런데 나쁜 짓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징벌적 손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언론의 감시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반대하는 거고요.

2021년 민주당에서 비슷한 법안을 추진했을 때 저와 오픈넷에서 강하게 반대했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모셔서 미디어 브리핑도 했는데 그때도 같은 이유였거든요.”

일반적인 징벌적 손배제, 설명 부탁드려요.

“일반적 손배제는 실제 손해를 보상해 준다는 개념이잖아요. ‘징벌적’ 손배제는 비윤리적인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의도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사람에게만 적용됩니다. 재발 방지 목적이기 때문에 행위자의 소득이나 재산에 비례해서 액수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손해를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 행위자의 소득이나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게 책정해요. 왜냐하면 적게 책정하면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할 수가 있잖아요. 그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동기부여를 위해 높게 책정하게 되는 겁니다.

그게 일반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이고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언론에만 적용하게 되면 언론자유를 위축시켜서 언론의 비판 감시 기능이 대폭 약화되겠죠”

다른 영역에 징벌적 손배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일반적인 게 아니라 몇 가지 법으로 특별히 정해 놓은 사안들에 대해서만 있어요. 저는 그걸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왜요?

“왜냐하면 그 법으로 징벌적 손배제를 정해 놓지 않은 분야에서도 악행이 저질러질 수 있거든요.”

그럼 포괄적인 징벌적 손배제가 필요한 건가요?

“그렇죠. 지금 보면 하도급법에서 갑질하는 거, 또 중대 산업재해 발생했을 때 적용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악행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도 빠짐없이 적용돼야 하겠죠.”

징벌적 손배제가 포괄적으로 적용돼도 언론자유의 위축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포괄적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더라도 언론만 빼놓을 수 없는 거거든요. 언론도 의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할 수 있고, 특히 대형 언론사에서 그런 행위를 한다면 그 악행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어야겠죠. 언론자유가 다른 자유에 비해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은 언론만 딱 잡아 위축시키려고 하니까 반대할 수밖에 없는 거죠.”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누가 판단하느냐도 중요할 것 같은데?

“누가 판단하느냐는 중요한 논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짜뉴스냐 아니냐, 기사가 허위냐 아니냐에 대해서 판단되는데 결국 명예훼손 등 각종 재판에서 어떤 명제가 허위인지 아닌지 판단을 지금도 하고 있거든요. 그 판단을 법원이 하게 두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죠. 문제는 허위라고 판단했을 때 가해지는 경제적 징벌이 언론에만 가해지면 결국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2022년 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규정하는 문제가 있죠. 정부와 여당은 가짜뉴스라고 주장했어요.

“제가 판사라면 이 보도는 징벌적 손배제 대상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의도적이거나 비윤리적으로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징벌적 손배가 적용돼야 하는데, MBC에서 보도할 때 당연히 비윤리적인 면도 있었어요. 그러나 상대가 대통령이잖아요.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궁극의 공인인데 MBC가 A라고 말해도 대통령이 B라고 말하면 대통령의 영향력은 MBC의 보도를 압도할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공인에 대한 손해배상은 정말 의도적이지 않으면 징벌적 손배 대상이 아니에요. 지금 민주당이 징벌적 손배에 매달리는 게 사실 정치인들에 대한 가짜뉴스를 막으려고 하는 건데 제도가 만들어지더라도 공인에는 적용이 제한돼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21일(현지사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장을 빠져 나오는 모습 (사진=MBC 보도회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21일(현지사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장을 빠져 나오는 모습 (사진=MBC 보도회면 갈무리)

법안 발의한 정청래 의원은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쓰지 않으면 이 법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건 가짜뉴스는 사형시킨다고 해놓고 ‘가짜뉴스 안 쓰면 사형 안 당하니까 걱정하지 마’라는 것과 같은 거예요. 다양한 사법적 구제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정책적 목표를 간과하는 논리죠. 저런 식으로 얘기하면 ‘가짜뉴스 쓸 때마다 100억씩 손해배상 내’라고 해놓고 ‘가짜뉴스 안 쓰면 괜찮지 않냐’라고 얘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이 징벌적 손배제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요?

“결국 자신들이 가짜뉴스의 피해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더욱 이 제도는 추진하면 안 되죠. 왜냐하면 이 제도가 만들어져도 뉴욕타임스의 설리번 판결에 비추어 봤을 때 ‘공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는 이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었던 나라는 미국밖에 없어요. 근데 미국은 포괄적인 징벌적 손배 제도가 있어요.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하는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죠.”

미국 말고는 없나요?

“언론이 징벌적 손배를 지불한 사례는 미국 외에 보지 못했어요. 일반적 징벌적 손배 제도는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그게 활성화된 곳이 미국이고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언론자유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근데 징벌적 손배 제도가 활성화되려면 우선 민사 손배 제도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민사 손배 제도 자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제도가 많이 발전해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민사 사법제도가 발전하려면 여러 사회적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많습니다.”

언론 징벌적 손배제가 생산적인 논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에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있을 수가 있는데, 법적으로 언론 기능을 위축시켜서 가짜뉴스 막으려고 하는 것은 도리어 가짜뉴스를 더 불러와요.

아시겠지만 제가 깊이 관여했었던, 2010년도 미네르바 허위 사실 유포죄 ‘위헌’ 결정 기억하시죠? 허위가 나쁜 거라면 허위사실 유포죄를 그냥 둬야지 왜 위헌 판정했겠어요? 그런 식으로 언론을 위축시키면 도리어 진실에 도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죠.”

가짜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면 안 된다고 봐요. 예를 들어 허위사실 유포죄도 마찬가지인데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의혹을 제기하고 그 의혹에 대한 가설과 활발한 상호 검증제도를 두는 것이 중요하지, 중간에서 ‘저건 가짜뉴스니 법으로 막아야 되겠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반론이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또 반론 제기하면 되는 거고요. 명제가 허위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개입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생시키는 ‘피해’ 중심으로 사고하면 됩니다. 그런 사고 하에서는 다른 이들의 악행은 그대로 두고 언론의 악행에 대해서만 징벌적 손배를 적용하자는 결론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악행은 그 자체로 피해를 발생시키지만, 악의적인 언론보도는 소비자들이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피해 발생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흰색 롱패딩을 입은 교황?
흰색 롱패딩을 입은 교황? "AI가 제작한 가짜 사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캡처=연합뉴스]

지금은 AI로 만든 가짜뉴스 문제도 증가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게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 안 했는데 사과했다고 만든 동영상 같은 걸 텐데, 그 동영상이 어떤 피해를 줬나요? 물론 그 영상은 AI를 이용한 게 아니라 수작업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했죠. 실제 AI로 만든 이미지의 경우 최근 교황이 흰색 롱패딩 입고 있는 이미지가 돌았었죠. 그러나 그 이미지 때문에 실제로 교황이 그런 패딩 입고 다닌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도리어 그 이미지는 딥페이크 기술이 이렇게 뛰어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저는 가짜뉴스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반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사회에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교통 정리를 ‘권력’이 나서서 하려고 할 때 사회가 더 퇴보하게 돼요.

지금도 가짜뉴스가 문제니 규제해야 한다고 하는 나라들을 잘 보면 다 권위주의 국가들이에요. 러시아나 중국, 베트남, 미얀마 등에서 가짜뉴스를 권력기관이 판단하겠다고 하면서 결국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들 위축시키는 데 권력을 동원하고 있죠.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서 가짜뉴스나 의혹 제기에 대해 ‘우리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막겠다’란 시도는 배격돼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짜뉴스가 정말로 피해를 주는 경우는 정말 얼토당토않은 허위 주장의 경우겠지요. 근데 명백한 허위라는 것은 반증하기도 쉽거든요. 예를 들어, 가장 얼토당토않은 명제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죠. 근데 지구가 평평하다는 건 너무 쉽게 반증이 되고, 반증하기 쉬운 명제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요. 2018년에 지구 평평론자 세계 대회를 서울에서 했었어요. 근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제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명제가 허위라는 것만으로 공적자원을 들여 막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이고, 도리어 그것 때문에 정당한 의혹 제기 또는 가설 제시 같은 것들이 위축될 수 있어요. 가설이나 의혹을 제기하지 못하면 진실에 다다르는 건 더욱더 힘들어진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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