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사설은 특정 사안 또는 쟁점에 관해 독자들의 생각, 신념,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공적 담론이다.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나 이념을 드러낸다. 소속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은 독자들에게 언론사의 입장이나 이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예시와 은유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일종의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특히, 신문 사설은 사회 구성원의 의식의 흐름과 행동 양식 등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담론 권력의 핵심이라 규정할 수 있다. 신문 사설은 해당 언론사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문 사설은 일반 뉴스 보도와 차원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다. '존중받는 노동과 신뢰받는 언론'을 지향하는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2024년부터 담론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이달의 나쁜 사설’을 매월 선정·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 권력 남용 의혹 외면
신문(보도)의 꽃은 사설(editorial)이다.
어떤 사안에 관한 신문 기사들을 두루 읽을 시간이 없을 때 사설만 읽어도 전체 내용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사설에는 어떤 사건에 관한 묘사(description), (인과 관계에 관한)설명(explanation), 그리고 비판, 의견, 대안 제시 등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건 우리나라 신문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나 워싱턴포스트(WP)를 비롯한 정론지(quality paper)에 해당하는 얘기다.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하려는 ‘채수근 해병 특검법’ 처리를 둘러싼 우리 족벌신문들이 5월에 내보낸 사설들은 앞서 소개한 세계적 정론지들에서 볼 수 있는 사설의 요건과 수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첫째, 사설에 핵심이 빠져 있다. ‘핵심’은 사설이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가? 채수근 해병의 희생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와 논란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알 정도로 간단명료하다. 정상적인 수사 진행과 절차를 윤석열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이 방해하거나 개입했다는 정황과 의혹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 남용 의혹이다. 대통령실 압력과 개입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족벌신문들의 사설은 본질과 핵심을 짐짓 외면하고 있다.
우선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민주 ‘채 상병 특검’ 단독처리, 지혜롭게 풀 방법 없나> 5월3일(금)
<김 여사 수사와 ‘채 상병 회견’ 만시지탄이다> 5월6일(월)
<민주당 특검안 법리 안 맞지만, 국민이 의문 가진 것도 사실> 5월22일(수)
<시작은 민주당이, 끝은 대통령·與가 망친 최악 국회> 5월29일(수)
<윤 대통령이 채 상병 문제 국민에게 설명할 때다> 5월30일(목)
핵심 비켜 가고 진실 외면한 물타기
둘째, 사설은 ‘탄식’해서는 안 된다. 사설은 무엇보다 결론이 뚜렷해야 한다. 사설은 글자 그대로 신문사의 공식 입장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탄식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과 사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처럼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할 때나 변명이 통하는 일이다.
조선일보 5월 3일 자 사설 <민주 ‘채 상병 특검’ 단독처리, 지혜롭게 풀 방법 없나>와 5월 6일 자 사설 <김 여사 수사와 ‘채 상병 회견’ 만시지탄이다>는 사안과 쟁점의 핵심을 찌르지 않고 탄식조로 비켜 가고 있다.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구호로 국민을 속여온 조선일보답게 뻔뻔하다. 그리고 비겁해 보인다. 중앙일보 5월 3일 자 사설 <채 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 굳이 이렇게 해야 했나>도 ‘탄식’에 가깝기는 마찬가지다.
셋째, 철저하게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에서 압도적인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눈치를 동시에 보고 있다. 이른바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은 사설에서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어느 쪽이 더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지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
조선일보 5월 22일 자 사설 <민주당 특검안 법리 안 맞지만, 국민이 의문 가진 것도 사실>은 전형적인 물타기와 눈치보기다. 민주당 특검법안의 법리가 맞지 않다고 조선일보가 판단했다면, 특검법안을 (재)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민주당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MBC를 비롯한 일부 언론사들이 어렵게 취재, 보도한 대통령실의 개입을 비롯한 중요 사실들은 외면한 채 엉뚱하게 ‘국민이 의문을 가진 것도 사실’이라고 갖다 붙이고 있다. 국민이 왜 의문을 갖게 됐는지, 이유와 사실을 분명하게 적시해야 한다. 5월29일(수) 사설 <시작은 민주당이, 끝은 대통령·與가 망친 최악 국회>도 전형적인 물타기와 눈치보기다.

진실 외면하고 정쟁 부추기기
넷째, ‘정쟁’이라는 용어의 오·남용도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다. 본질 흐리기와 눈치 보기의 또 다른 행태이다. 국민일보 5월 22일(수) 사설 <채 상병 죽음을 끝내 정쟁거리로 전락시킬 셈인가>는 정작 언론사가 채 상병 죽음에 관한 진상 규명에 앞장서야 함에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사실이나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신문사에서 최소 20년 이상의 기자(취재) 경력을 가진 우리나라 족벌신문 논설위원들이 사설의 요건과 기능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부끄러움도 모르고 수준 미달의 사설들을 내보내는 것일까?
이유는 ‘구조’와 ‘속성’에 있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일반)일간신문(신문법 상의 공식 용어)들 중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빼고는 전부 족벌의 소유나 지배하에 있다. 그리고 사주(社主)들은 수구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 정치권력과 재벌(경제권력)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며 소유·경영권을 대물림하고 있다. 신문사 매출의 80% 이상을 재벌과 기업이 주는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구조다.
구조에서 속성이 나온다.
호반건설이 인수한 서울신문 5월 22일(수) 사설 <채 상병 특검, 공수처 수사가 먼저다>와 같은 날짜 중앙일보 사설 <채 상병 사건, 일단 공수처 수사부터 지켜봐야>는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지배구조에 함께 몸 담고 있는 족벌신문에 종사하는 기자(논설위원)들이 비슷한 속성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과 기자(논설위원) 자신들의 이익을 동일시하고, 이런 사적인 이익을 독자와 국민의 이익에 우선하는 부끄러운 우리 족벌언론의 모습이다.
‘분석’은 대상들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종합’은 대상들 사이의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도 가족이 소유·경영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족벌신문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차이점은 미국의 두 유력 신문 사주들은 정치권력이 언론자유를 위협하거나 탄압하려 시도할 때 굴복하지 않고 언론자유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최고 권력자의 수사 외압 의혹을 밝히는 일을 외면하고 있는 족벌신문들과 달리 진상 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공영방송 MBC의 사례에서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은 ‘좋은 소유주’를 갖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