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이가 들어버렸다. 나이가 들어버린다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제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했다. 삼십 년을 넘게 함께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전화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별일 없이 그냥 비슷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친구도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별일 없이 지내는 게 잘 지내는 것이라며 이야기하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건강에 대해 체크하게 되었다. 비슷하지 않으면서 비슷한 몸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별일 없이 지내는 나날인데 몸은 별일이 많았다.
“너는 갱년기 오지 않았어?” 친구가 물었다. “온 것 같아, 밤에 가슴이 너무 뛸 때가 있어.” “나는 응급실도 갔다왔어.” 내가 놀라 진짜, 라고 묻자 친구는 새벽에 택시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갔었다고 했다. 밤새 가슴이 너무 뛰고 힘들어 병원에 갔는데 아무 이상 없다는 이야기만 듣고 귀가했다고 했다.
우린 서로 그동안 몸에 있었던 이상신호에 대해 농담 반, 진담 반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30대까지만 하더라도 건강 관련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친구는 갑자기 열이 오르고,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난다고 했다. 나는 작년에 발이 너무 아팠다. 특히 발바닥과 뒤꿈치가 아파 자다가 깬 적도 많았다. 뒤꿈치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기도 했고, 땅에 발을 디디면 발바닥에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에서 끊임없이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갱년기의 시작이란 신호임을 모르고 불안해하며 위기감을 느꼈다. 살아가면서 처음 느낀, 종잡을 수 없는 위험한 위기감이었다. 이토록 불안한 위기감을 덜어낸 건 친구들을 만나는 모임에서였다. 친구들은 제각기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 상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민망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제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친구는 회의할 때 난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직책이 있는 만큼 팀원으로 함께하는 직원도 많은데 그들이 거의 20대, 30대라고 했다. 한여름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는 회의실에서 회의하는데 갑자기 덥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와중에 30대 남자 직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미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말에 모두 웃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직원이 친구를 힐끔거리더니 ‘부장님 더우세요?’라고 묻는데 ‘내가 갱년기라 그래.’라고 말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발가락 마디마디가 아파 병원에 가도 갱년기 증상이라고 하고,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어 병원에 가도 갱년기 증상이라고 한다며 친구들은 예전과 같지 않은 몸 때문에 힘들어했다. 친구들의 모든 증상이 다 갱년기 증상이라는 말에 갱년기가 엄청나게 무서운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원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머니에게 너무 쌩하게 굴지 말고, 화내지 말라고. 어머니도 갱년기일 수 있다고. 너희만 힘든 게 아니라고. 사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말했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그럼 남자의 갱년기 증상은 어떤가?”라는 말에 친구가 말했다. “글쎄. 눈물이 많아지는 정도.” 눈물! 남자의 갱년기가 어떻게 오는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지만, 눈물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흘릴 수 있다며 울 준비가 되어 있다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요즘 나는 내 나이 때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생각한다. 민소매 옷을 입고도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며, 속이 확확 달아오른다고 부채질을 하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선풍기를 껐다 켰다 하는 어머니를 보며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어머니는 갱년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때를 견뎠다. 가족 누구도 어머니의 갱년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사춘기 자식들이 말이라곤 듣지 않고, 집안 일은 줄지 않고, 몸은 몸대로 힘든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친구처럼 얼굴이 빨개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갱년기가 발바닥으로 올 줄 몰랐다. 만약, 혹시. 당신과 눈이 마주친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면. 오해하지 마세요. 그녀는 지금 갱년기를 지나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김은희 (필명 김담이) ,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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