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좋은 날 되세요. 나는 문자를 보낼 때나 메일을 보낼 때 주로 마지막 문구로 ‘좋은 날 되세요’를 선택해서 보낸다. 상투적이지 않을까 고민하지만, 진심으로 오늘 하루만은 좋은 날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결국 좋은 날이 되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좋은 날 되세요’, 라는 문구는 ‘행복한 날 되세요’만큼이나 사무적인 인사로 많이 쓰이는 인사말이다. 사무 문자와 메일을 수도 없이 주고받는 사람 입장에선 ‘좋은 날 되세요’라는 말처럼 사무적인 인사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날 되세요’라는 문구가 참 좋다.

매일 비슷비슷한 날이 반복되지만 생각보다 좋은 날이 많지 않다. 아빠는 아침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납작하게 껴서 출근하다 보면 영혼도 납작해지는 느낌이다. 회사에 도착해 근무를 시작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회사의 위기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듣게 되고, 위기를 잘 넘기기 위해 긴장하고 희생하자는 말을 언제나처럼 듣게 된다. 요즘엔 상사 눈치만 보는 게 아니라 MZ세대인 부하 직원의 눈치까지 보아야 한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잡는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엄마의 하루도 만만치 않다. 직장 휴직하고 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엄마는 매일 아침부터 아이들과 등교 전쟁으로 진땀을 뺀다. 아이들 등교 시키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이 대기 중이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카페에 앉아 같은 학년 학부모들과 차를 한잔 마신다. 이때 학원 정보, 학교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빠지면 교육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둘째가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면 빨랫감이 엄마를 기다리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간식을 만들고, 첫째 학원 갈 준비를 한다. 쉴 틈 없이 움직이면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빠는 다시 지옥철을 타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반쯤 감긴 눈으로 아빠를 맞이한다. 아빠는 따뜻한 저녁밥을 기대하며 말한다. “오늘 저녁은 뭐지?”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우울해서 빵 샀어.” “빵? 무슨 빵? 나는 따뜻한 밥 먹고 싶은데.” “따뜻한 밥! 밥이라고!”

아빠는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엄마는 벼락처럼 화를 낸다. 엄마의 마음날씨는 먹구름 낀 흐린 날씨에서 번개와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부는 날씨로 바뀌어 버린다. 아빠는 이런 날이면 ‘마음날씨 해설 전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내 마음을 해석해주고, 너의 마음을 해석해주는 해설 전문가가 필요하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듯이 마음을 알아채는 일도 쉽지 않다.

상징, 은유, 비유가 섞인 말 사이사이에 한숨까지 더해지면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처음 듣는 외국어만큼 어려워진다.

머릿속은 이미 과부하가 걸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아빠도 지치고 힘든데 엄마는 아빠의 마음날씨를 모른다. ‘따뜻한 밥’이라는 단어가 위로될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모른다. 엄마는 식탁에 반찬 그릇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아빠는 엄마 눈치를 보며 거실에 널려 있는 장난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정리하다 보니 집 구석구석에 포장도 뜯지 않은 상자가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뜯지 않은 택배상자를 가리키며 물으면 엄마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오늘 우울해서 쇼핑했어. 아빠는 뜯지 않은 상자를 응시하며 생각한다. 아내의 마음은 저기에 있을까. 뜯지 않은 상자 속에 담긴 채 집구석 한쪽에 놓여 있는 걸까. 아빠는 마음이 점점 쓸쓸하고 슬퍼진다.

엄마에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많아지고, 정리할 수 없는 물건이 많아진다. 아빠는 버릴 건 버리고 정리를 하라고 쉽게 말한다. 엄마는 그럴 수 없다. 물건은 엄마의 마음이다. 물건을 정리하는 건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물건을 버리는 건 나의 삶 일부를 정리하는 것이다.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갓난아이일 때 입었던 옷, 첫째가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 신었던 신발.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 엄마에게 물건을 버리는 건 추억을 버리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내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마음날씨 해설 전문가가 있으면 좋겠다. “오늘 6학년 아들이 학년 평가를 망쳐 엄마 마음 지진 발생. 아빠는 쓰나미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술자리 취소 요망.” “아빠 이번에도 승진 실패함. 용기와 위로 아주 많이 필요. 따뜻한 밥이 절실함.” 이렇게 마음날씨를 알려주는 해설 전문가가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나의 친구라면 매일 비슷비슷한 날이어도 오늘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말해본다.

당신은 잘 지내야 해요. 꼭.

마음날씨 화창한 오늘, 좋은 날 되세요!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