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다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날씨 때문에 내 몸은 적응할 시간이 없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약을 달고 산다. 목감기에서 기침과 콧물감기로 옮겨 다니는데 밤이 되면 으슬으슬 춥고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전기 매트를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날씨도, 몸도 이렇다 보니 집 밖에 나가는 건 큰맘 먹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한 움큼 되는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한숨을 내쉰다. 의사는 약이 정말 먹기 싫어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말했다. 꼭 끝까지 다 먹어야 합니다. 좀 나았다고 그만 먹으면 낫지 않아요.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러 번에 나누어 약을 삼키면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먹어야 해. 지겹네.’ 건강검진도 앞두고 있는데 몸은 골골대고 우울하다. 건강검진에서 경계에 있으면 별문제가 없어도 마음이 불안하다. 몸은 노화 신호를 보내고 이제 나를 사랑하며 아껴 써라, 라고 말한다. 나가서 찬바람도 맞으며 걷고, 운동도 좀 하고, 사람들 만나서 수다도 좀 떨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너무 어렵다. 찬바람만 코에 살짝 닿아도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는 건 커피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칼바람을 뚫고 목을 자라처럼 움츠리고 언덕을 내려간다. 평소에도 좋지 않은 대퇴골이 영 좋지 않다. 몇 번을 멈춰서 다리에 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골골 100년이라며 큰 병 없이 100살은 살 거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봄이 되면 봄이라 아프고, 바람 불면 영락없이 감기에 걸리고, 좀 무리하면 몸살 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프지만 여전히 잘 버티며 사는 나에게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 [사진 출처=연합뉴스]
연명의료결정제도 [사진 출처=연합뉴스]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 반 백 살을 살고 보니 골골대며 100년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이러다 노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부담으로 짐처럼 남아 수고스러운 일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자 불현듯 생각난다.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어.'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마지막 순간에 삶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시간을 끄는 건 보는 사람을 괴롭게 하고 죄책감만 안겨 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빠의 죽음이 그랬다.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었다. 아빠가 어떻게든 살기 바랐기 때문에 우린 연명을 위한 치료를 해야 했다. 지금이야 암이 흔하고 치료도 예전처럼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그때는 굉장히 어려운 병이었다. 더는 희망도 없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병원에서는 수시로 채혈을 하고 무엇인가를 했다. 그때 아빠가 실험용 쥐 같다고 느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아빠도 고통스럽지만 보고 있는 가족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마음이었다. 결국은 예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끝’을 보고 말았다. ‘끝’이라는 말에 안도했지만, 가슴에 박혀 있는 묵직한 돌덩이가 빠진 건 아니었다.

연명은 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태어나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다른 누군가의 선택과 의지가 아닌 나의 선택과 의지로 맞고 싶다.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고, 장기기증도 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차피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갈 몸인데 그전에 누군가에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나누어 준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삶이 없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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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도 받지 않고, 장기기증도 하려면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 골골대다간 기증은커녕 살아있는 동안에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걱정거리만 될 것 같았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 사는 동안 건강해야겠다 싶고, 장기기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내 몸을 사랑하며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증해야 하는 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는 엉망진창인 몸 상태가 되어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단것도 먹고 짠 것도 먹고 늦게 일어나 빈둥거리겠지만, 해 볼 생각이다. ‘작심삼일’이란 프로젝트로 사흘 만에 끝나면 다시 시작하고, 또 끝나면 다시 시작하며 나의 연명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나에게 내년 목표가 생겼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귀찮지만 걷고, 운동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열심히 일하며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질 생각이다. 건강하게 연명하는 삶을 위해.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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