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쿠팡(대표 강한승·박대준)이 노동자, 언론인, 정치인 등을 취업 제한 명단에 등재해 관리했다는 '블랙리스트' 의혹에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가 100일이 넘도록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부분의 증거들이 전산자료일 수밖에 없어 노동부가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는 것은 '증거 인멸 방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래리스트 작성 주체로 의심받는 쿠팡 자회사가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증거 인멸'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쿠팡은 기자회견에서 '증거 인멸' 가능성을 거론한 노동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특별근로감독 및 압수수색 촉구 서명운동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특별근로감독 및 압수수색 촉구 서명운동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27일 공공운수노조 등은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압수수색을 촉구했다. 이들은 쿠팡에 대한 노동부의 압수수색과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서명에 노동자·시민 7870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MBC <뉴스데스크>는 쿠팡이 2017년 9월부터 약 6년 동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 1만 6450명을 재취업 제한 명단에 등재,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사업장 내 범죄와 사규위반 행위를 일삼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기위해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명단에는 범죄나 문제를 저지른 인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쿠팡의 노동환경 실태와 코로나19 방역 허점을 취재한 기자들이 리스트에 올랐다.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들, 현직 국회의원, 쿠팡 일용직으로 일한 경험을 유튜브로 공유한 대학생들까지 있었다. 노동시민사회는 쿠팡을 개인정보보호법·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경찰과 노동부에 고발했고, 특별근로감독도 요청한 상황이다.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장은 "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은 '동향, 제보, 언론보도 등을 통해 노동관계법령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장'에 대해 수시근로감독을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블랙리스트 논란이 지속됨에도 쿠팡에 대한 근로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노동·행정·사법 당국이 제대로 조사·수사하지 않고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인 양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증거자료를 수집 확보해야 할 시기를 놓쳐 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 지부장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쿠팡풀필먼트(쿠팡 자회사, 블랙리스트 작성 의심 업체)가 뜬금없이 사무실을 이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블랙리스트의 결정적 증거가 담겨 있었을 수 있는 컴퓨터와 각종 문서들을 폐기해 증거를 은폐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노동부의)눈물겨운 배려는 아니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쿠팡 노동자들에 따르면 쿠팡풀필먼트는 쿠팡과 함께 사용하던 건물에서 이사를 갔다. 

민 지부장은 "쿠팡이 정당한 인사자료라고 주장하는 블랙리스트에는 심지어 언론인도 다수 포함돼 있다. 쿠팡이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배제하기 위한 수단임이 명확하다"며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무력화하고, 사회적으로 폭로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는 것은 불법성 여부를 떠나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오른쪽)이 27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압수수색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오른쪽)이 27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압수수색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증거인멸 가능성을 얘기했다는 이유로 쿠팡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고 밝혔다. 정 지회장은 "지난 쿠팡 블랙리스트 피해 당사자 기자회견 때 이사 과정에서의 증거 인멸 가능성을 얘기했더니, 돌아온 것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압수수색이 아니었다. 쿠팡의 고소장이었다"며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고 했다. 

정 지회장은 "쿠팡은 여전히 뻔뻔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스스로도 ‘blacklist’라고 쓰면서 단순한 인사평가 자료인 것처럼, 동의 받지 않는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소유하고 활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피해자들이 퇴사한 이후에도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지 하지 않고 있는지 사찰한 결과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노조법 위반이 아닌 것처럼 법적 검토를 마친 모양"이라고 했다.

이어 정 지회장은 "그런 쿠팡 블랙리스트를 합법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근로감독과 압수수색을 안 하고 있는 노동부"라며 "대부분의 증거들이 전산자료일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지금과 같은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증거 인멸 방조다. 노동부가 역할을 안 한다고 노조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세연 쿠팡대책위 활동가는 "쿠팡은 초기부터 기업이미지 홍보와 여론관리에 특별히 공들이고 있다. 첨단 IT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혁신기업, 직원복지를 위해 애쓰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각종 경제지와 보수언론에 스폰을 하는 것은 물론, 쿠팡뉴스룸의 여러 콘텐츠를 통해서도 그렇게 한다"면서 "하지만 이미 소비자들도 쿠팡이 노동자들에게 나쁜 기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노조탄압과 언론 통제를 통해 최대한 노동문제를 이슈화하지 않으려는 쿠팡의 여론관리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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